재즈 애호가라면 꼭 한 번 들러야 할 미국 여행지

[여행]by 오마이뉴스

재즈 발상지 뉴올리언스... 도시 전체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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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구시가지 프렌치쿼터 입구, 꽃 장식 베란다가 있는 게 특징이다 ⓒ 김형순

나는 1980년대 유럽 7개국, 1990년대 캐나다를 가본 적은 있지만 미국은 2015년 백남준 취재를 위해 뉴욕에 한 달 지낸 게 처음이었다. 지난해 12월 '마이애미 아트바젤' 취재로 여기에 또 한 주 머문 게 두 번째다. 마이애미에서 뉴올리언스는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간다. 돌아가는 기차보다 싸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뉴올리언스였다.


새로 단장한 뉴올리언스 공항에 들어서니 이곳 역사를 정리한 홍보용 사진이 먼저 들어온다. 관광 안내소에 프렌치쿼터를 가고 싶다고 물었더니 여기서 그곳으로 가는 전용버스(Transit)가 있단다. 차비는 2달러다.


시내로 들어서니 미국 동남부 도시의 전형적 저택이 보인다. 이곳에는 독특한 장례문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시내에 다양한 형태의 묘지가 보인다.


뉴올리언스는 1718년에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탐험가 '비엔빌(Bienville)'에 의해 발견돼 프랑스 식민지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첫 총독으로 부임한다.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관문이 된다. 1762년부터 잠시 스페인령이었다가, 1801년 나폴레옹 황제 때 다시 프랑스의 영토가 됐다. 그러나 1803년에 국내의 재정 문제로 미국에 매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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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에는 '미시시피강'이 흐른다. 멀리 다리와 화물선이 보이다. 19세기에는 증기선의 드나들었단다 ⓒ 김형순

해수면보다 낮은 이 도시에는 1910년 배수펌프가 설치됐다. 1978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니스트 모리얼'가 처음으로 시장이 됐다. 2005년 대형 쓰나미 '카트리나 허리케인'으로 도시가 80% 물에 잠겼고 1500여명 사망자를 냈다. 당시 부시정권은 늦장 대응으로 피해가 더 컸단다. 미국정부는 지금 100년 재해방지용으로 133마일의 제방을 건설 중이란다.


현재 뉴올리언스는 루이지애나 주 최대도시로 미국 동남부 최대의 상공업 및 금융의 중심지다. 멕시코 만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라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인구가 약 37만 명, 폰처트레인 호수와 미시시피 강의 사이에 축 처진 달 모양을 해 '초승달' 도시라고도 불린다.

베이슨 스트리트 '역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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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슨 스트리트 역전 박물관' 1층로비 ⓒ 김형순

뉴올리언스 시 중심가 캐널 스트리트 지나니 300년 된 구시가지가 나온다. 여길 들어서기 전 베이슨 스트리트 역전(Basin St. Station)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이곳의 문화와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여기는 과거 산업화 시대 5개 기차역이 만나는 교통 교차로였단다.


멋진 샹들리에가 높은 천장에 걸려있는 여기 1층 로비에는 커피숍과 기념품점 등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이곳은 역사를 증명해주는 옛 사진과 자료와 관련 아카이브 등을 전시해 놓았다. 높은 벽에 걸린 옛 지도를 보면 이곳 지리적 특징이 주변에 호수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가만히 보니 이곳은 페스티벌의 도시이다. 또한 재즈의 발상지임을 알 수 있다.

'프렌치 쿼터(사각형 구시가지, Vieux Carr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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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쿼터 '버번 거리(Bourbon Street)' 한 가운데 있는 '로열카페' ⓒ 김형순

여기서 길을 건너니 프랑스체취가 강하게 풍기는 프렌치 쿼터가 보인다. 마치 프랑스의 한 도시에 온 것 같다. 상점만 아니라 맛집, 유흥가, 나이트클럽 등도 즐비하다. 1.7㎢ 면적이지만 문화보호지역이다. 길을 가다 보면 귓전에 재즈 풍이 들려온다. 버번 거리(Bourbon Street)가 중심지다. 그 중에서도 밤에 더 화려한 '로열카페'가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이 도시는 미국에서도 독보적인 것이다. 예로부터 아프리카계, 스페인계, 프랑스계 등 여러 인종이 같이 살아왔다. 그래서 다문화 전통이 깊다. 그중 프랑스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만든 '크레올(Creole)' 문화가 유명하다. 70년대는 백인계 55%였는데 지금은 흑인계가 60% 넘는단다.


매년 2월에 열리는 '마르디 그라'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과 동급인 축제다. 또 '재즈' 축제와 '잔 다르크' 퍼레이드 등도 있다. 내가 본 이곳의 축제는 일상의 연장일 뿐이다. 여기에 남녀노소는 없다. 아이들까지도 길에서 비트 리듬을 즐긴다. 떼창을 부르는 재즈 홀에 들어가면 온몸에 전율이 온다. 꼭 노래를 잘할 필요도 없다. 그저 즐기는 게 중요하다.


이곳은 축제도시일 뿐만 아니라 미식과 칵테일의 도시다. 후텁지근하고 습한 아열대 기후 마치 우리가 김치찌개로 몸을 풀 듯, 양파, 피망, 새우, 게 등에 향신료가 들어간 '케이준(Cajun)' 요리가 그 역할을 한다. 또 여기 약사였던 '앙투안 페이쇼(A. Peychaud)'는 약국에서 계란노른자를 혼합해 '코크티에(coquetier)주'를 만들어 팔았다. 그게 칵테일의 기원이다.

재즈의 발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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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선구자 '버디 볼든(Buddy Bolden)'이 트럼펫 일종인 코넷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 김형순

300년 된 이 도시에는 '재즈'가 있다. 재즈는 18세기 초 노예선 안에 처참하게 갇힌 채 실려와 이곳 시장에서 팔려나갔던 흑인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거기에 흑인들 목화밭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부른 '노동요'와 교회에서 불렀던 '가스펠'과 '블루스(영가)' 그리고 흑백의 리듬과 화음이 뒤섞인 '크레올' 음악이 합쳐졌다.


1863년 노예해방 후 재즈가 더 많이 불렸고 악단도 많이 생겼다. 뉴올리언스에서 1897년부터 1917년까지 핫 플레이스로 '스토리빌(storyville)'가 있었다. 당시는 유흥가였다. 그리고 재즈에 맞춰 격이 없이 온몸을 흔들어대는 '스윙댄스(Swing dance)'도 가티 생겨났다.


재즈하면 우리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구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버디 볼든(Buddy Bolden)'이다. 암스트롱보다 14살 위다. 루이 암스트롱 공원에 가면, 미국 흑인여성 조각가 '킴벌리 덤슨(K. Dummons)'이 제작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볼든이 코넷(일종의 트럼펫) 연주하는 모습을 '연속모션'으로 형상화했다.


그럼 이제 루이 암스트롱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1901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날품팔이 노동자, 암스트롱이 걸음마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과 살림을 차려 떠났다. 어려서 너무 가난해 11살 때 학업을 그만두다. 1913년 의붓아버지의 권총을 실수로 공중에 쏘아 18개월 간 '흑인소년보호소' 생활을 했다. 근데 그곳이 그의 음악학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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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 공원에 서 있는 그의 동상 ⓒ 김형순

그는 소년원을 나와서는 운 좋게 재즈의 거목 '킹 올리버'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17세 결혼한 후 살롱에서 연주했다. 시카고와 뉴욕으로 진출하면서는 독립해 대성공을 거둔다. 1964년 비틀즈 제치고 '빌보드 팝 차트'의 정상을 누렸다. 그해 '그래미상 최우수 남자 보컬'도 수상했다. 1971년 7월 6일, 71세로 뉴욕자택에서 심근경색과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 그에게 50대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재즈뮤지션으로 당시 백인에게만 허용되던 호텔이나 식당에 출입할 수 있던 스타급 명사였다. 그래서 당시 그가 너무 백인 편이 아니냐는 빈축도 샀다. 그러나 그는 배우지 못한 한 때문인지 '흑백분리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아이크 대통령에게 항의할 정도로 입장이 분명했다. 그 이야기의 아래와 같다.


1957년 미 법정은 흑인학생 9명이 아칸소 주 '리틀록' 백인고교에 전학하는 걸 허락했다. 그러나 이곳 주지사 '오벌 포버스'은 주방위군까지 동원해 이들의 등교를 막았다. 그럼에도 미 당국은 미온적으로 나왔다. 이러자 암스트롱은 "미국은 지옥에나 가라!"며 아이크 대통령에게 이를 조속해 해결해 달라고 항의했다. 결국 흑인학생들은 이 학교에 등교하게 됐다.


화재를 바꿔, 그러면 어떻게 재즈가 전 미국과 전 세계로 전파해 나갔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1917년 제1차 대전 때 뉴올리언스에 큰 해군기지가 생겼다. 그런데 군사령부에서 이곳 군인들이 근무하기에 너무 시끄럽고 문란하다고 판단해 이곳 연주자를 시카고 등으로 쫓아냈다. 그러다보니 재즈가 자연스럽게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루이 암스트롱도 시카고에 가서 처음 레코딩도 했고, 판이 팔리나갔고 후에 뉴욕까지 진출한다. 결국 한국에까지 전해졌다.

뉴올리언스 '잭슨광장'과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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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광장'에 있는 문화유적지다. 왼쪽이 '루이지애나 주립박물관'이고. 오른쪽이 '세인트루이스대성당'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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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화려한 관광마차, 오른쪽은 이곳 문화재인 '로어 앤 어퍼 폰탈바 아파트(Lower and Upper Pontalba Apartments)'가 보인다. ⓒ 김형순

그러면 이번에는 뉴올리언스 명소를 찾아가보자. 먼저 '잭슨 광장(Jackson Square)'이 있다. 힘찬 기상을 보여주는 그의 기마상 조각도 있다.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는 아일랜드계로 상류층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민층에게 더 인기가 높았다. 1815년 영국군과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승리를 기념하는 곳이다.


또 이곳의 중심을 잡아주는 '세인트루이스(St.Louis) 대성당'이 있다. 1718년 '길베르토 길레마드(G. Guillemard)'이 설계한 것으로 1849년 한번 보수했단다. 루이 9세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유럽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이 대성당 왼쪽에 바로 '루이지애나 주립박물관'이 나란히 붙어있다. 시간이 없어 들어가 보진 못했다.


그 앞으로 화려한 장식마차 타고 지나가는 관광객이 보인다. 뒤로 초대 총독인 '비엔빌'의 수려한 동상도 돋보인다. 그밖에 거리에 나가면 온몸에 금박을 하고 조각처럼 서 있는 포퍼머, 거리 트럼프 연주자 그리고 자신이 그린 작품을 직접 파는 거리 화가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960년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문화재급 건물이 있다. 그게 바로 붉은 벽돌로 된 '로어 앤 어퍼 폰탈바 아파트(Lower and Upper Pontalba Apartments)'다. 184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미국에서 현존하는 아파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란다. 1층에는 세련된 장식품을 파는 고급 부티크가 있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도 있다.

남대문시장 같은 '프렌치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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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마켓' 입구의 모습이다 ⓒ 김형순

그리고 끝으로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프렌치 마켓'이 있다. 200년 넘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먼 과거 인디언들이 무역거래 장소였고, 흑인노예시장이 있었던 곳이었다. 공예품, 의상, 신발, 거리음식 등 없는 게 없다. 주말엔 벼룩시장도 열린단다. 이곳 명물 도넛인 '베네(Beignet)'을 커피와 함께 파는 '카페 드 몽드(Café de Monde)'는 여기서 명소다.


북미에서 캐나다 북부에 '퀘벡시'가 있다면, 미국 남부에는 '뉴올리언스'가 있다. 퀘벡시는 프랑스 탐험가 '샹플랭'이 1608년에 개발한 도시다. 이 구시가지가 역사 문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북미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여기 뉴올리언스도 오래지 않아 미국에서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형순 기자(seulsong@nate.com)

2020.02.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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