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아닌 나무 한 그루로 천연기념물이 된 동백나무

[여행]by 오마이뉴스

나주 금사정의 동백나무... 조광조 따르던 유생들의 절개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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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떨어진 동백 꽃봉오리가 노란 민들레꽃과 어우러져 더욱 빛난다. 나주 금사정 풍경이다. ⓒ 이돈삼

동백꽃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진녹색 이파리 사이에서 빨갛게 피어난 꽃이 시선을 오래 붙든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통째로 떨어지는 꽃봉오리도 매혹적이다. 어느새 동백꽃 무더기가 땅에 지천으로 깔렸다. 빨간 융단이라도 깔아놓은 것 같다. 꽃으로 깔아놓은 레드카펫이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연출한 풍경이다. 발걸음이 오래 머문다. 이내 마음도 한없이 늘어진다. 바쁜 건 동박새뿐이다. 연신 재잘거리며 포르릉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시 나뭇가지로 내려앉는다. 꽃이 달곰한 모양이다. 나무에서 핀 꽃으로, 땅에 떨어진 낙화로, 내 마음의 꽃으로, 세 번 만나는 동백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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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정 앞 들에서 한 농부가 트랙터를 이용해 논을 갈아엎고 있다. 지난 3월 21일 오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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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죽마을 주민이 농로를 따라 들판 사이를 걷고 있다. 지난 3월 21일 오후다. ⓒ 이돈삼

내 마음이 금세 금사정의 동백나무로 향한다.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금사정에 있는 나무다. 피맺힌 사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동백나무다. 꽃이 다른 데보다 더디 핀다. 남도의 동백꽃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낼 때 하나씩 피기 시작한다. 더 선명하게, 더욱 처연하게.


동백나무는 키가 6m, 뿌리 부분의 둘레가 2.4m에 이른다. 어른 두 명이 두 팔을 서로 벌려야 겨우 닿을 정도다. 나무의 근육이 울퉁불퉁 튼실하다. 폭은 동서 7.6m, 남북 6.4m로 넓다. 사방으로 가지를 고르게 펼치고 있다.


나무의 나이가 500살이 넘었다. 이파리도, 꽃도 싱싱하다.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외려 젊은 나무가 피운 꽃보다 더 낫다.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처럼 정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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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사연을 지닌 금사정과 동백나무 풍경.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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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500년 된 동백나무와 금사정. 동백나무 꽃이 다른 데보다 더디 피면서 더욱 선명하고 처연한 꽃봉오리를 피워올리고 있다. ⓒ 이돈삼

금사정의 동백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사연이 꽃보다 더 애절하다. 1519년 개혁정치를 주창하던 정암 조광조(1482∼1519)가 유배길에 오른다. 당시 정암은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벼슬아치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력과 함께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훈구세력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묘사화(己卯士禍)다.


정암을 따르던 유생들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태학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정암의 억울함을 주청했다. 죽음을 무릅쓴 호소였다. 하지만 묵살당했다. 유생들은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낭당히 맞설 수 없었다.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속에 품었던 뜻을 잠시 접고, 도성을 떠났다.


유생을 대표해 상소를 올린 임붕, 나일손, 정문손 등 11명이 그들이다. 이들은 금강십일인계를 조직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 절의만은 굳게 지키며 살자고 결의했다. 모임 장소로 영산강변을 정하고, 그 자리에 금사정(錦社亭)을 세웠다. 정자 앞에는 동백나무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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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주 금사정의 동백나무. 뿌리 부분의 둘레가 2.4m에 이른다. 나뭇가지도 사방으로 고르게 펼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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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사정 앞 동백나무. 진녹색 이파리 사이에서 빨갛게 피어난 꽃이 유난히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 이돈삼

유생들에게 동백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다른 이름이었다. 유생들은 동백꽃의 비장함에 자신들을 빗댔다. 추위가 혹독할수록 더 붉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동백을 흠모했다. 사철 짙푸른 이파리를 떨구지 않는 나무의 한결같은 생명력도 닮고 싶었다. 유생들에게 동백나무는 새로운 희망의 싹이었다.


풍진 세상을 다 겪은 금사정 동백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고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양새도 반원형으로 소담스럽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제515호)로 지정한 이유다. 군락지가 아닌, 동백나무 한 그루로 천연기념물이 된 유일한 나무다.


동백나무를 지키고 선 금사정은 나주시향토문화유산(제20호)으로 지정돼 있다. 겉보기에 건축미가 빼어난 건 아니다. 당시 유생들의 삶과 정신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가치와 격이 다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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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맺힌 절규를 간직하고 있는 금사정 동백나무를 품은 송죽마을. 영산강변에서 본 송죽마을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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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죽산보에서 본 송죽마을 전경. 나주 송죽리는 1519년 기묘사화 때 낙향한 유생들의 피맺힌 사연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다. ⓒ 이돈삼

핏빛 선연한 동백꽃을 피우고 있는 금사정은 영산강변, 죽산보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강변에 평야가 드넓다. 마을사람들은 주로 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나주특산 배, 왕곡특산 참외도 많이 재배한다. 소·젖소를 키우는 축산농가도 여럿이다. 소들에 먹일 풀을 심어놓은 풀밭도 넓다. 멀리서 보면 보리밭과 구분하기 쉽지 않다. 흠이라면, 축사에서 새나는 냄새다.


송죽리는 창촌, 방아, 죽현, 귀엽, 어성 쌍정 등 여러 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금사정은 송죽1구 창촌마을에 있다. 조선시대 제민창, 일제강점기 제창이 있었다고 '제창'으로 불렸다. 해방 뒤에 '창촌'으로 바뀌었다.


'방아'는 주민들이 방아를 찧는 도구로 다리를 놨다는 곳이다. 한때 '방아다리'로 불렸다. '죽현'에는 대나무가 많았다. '귀엽'은 주변의 지형이 거북이를 닮았다고 '구업'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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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송죽리 김효병 옛집의 초가. 헛간채와 사랑채, 안채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저마다 예스럽고 아담하게 생겼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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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송죽리에 있는 김효병 옛집 전경. 기와의 안채와 초가의 사랑채, 헛간채가 차례로 배치돼 있다. ⓒ 이돈삼

송죽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집이 김효병 옛집이다. 일제강점 때 지어졌다. 대숲으로 둘러싸인 집에 헛간채와 사랑채가 직각으로 배치돼 있다. 초가지붕이 동긋이 떠오르는 달 같다. 예스럽고 아담하게 생겼다.


높다랗게 쌓은 석축 위에 사랑채가 지어진 것도 별나다. 오래 전 서당으로 쓰였다. 한층 더 높은 윗단에 안채가 있다. 전라남도 민속자료(제11호)로 지정돼 있다. 집안에 나무도 많다. 정원이 곱다시 단화한 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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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는 김효병 가옥. 집안의 정원도 아름답다. 곱다시 단화한 옛집이다. ⓒ 이돈삼

이돈삼 기자(ds2032@korea.kr)

2020.04.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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