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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랑을 잃고 나는 읽네

by책식주의

안녕하세요, 책식주의입니다. 오늘은 '이별'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소중한 사람과 반려동물의 죽음, 계절의 끝, 노화 현상 까지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이별의 연속입니다. 이별 후 상처난 마음을 다스리기 좋은 책 4권을 소개해드릴게요.

01.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불리며 시대를 풍미한 전경린의 반가운 신작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애와 희도의 이별로 시작되는데요, 나애와 희도는 3년을 같이 산 연인입니다. 희도가 회사 구조조정 때문에 일본 본사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애에게 함께 일본으로 갈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나애가 이를 ‘쿨하게’ 거절하며,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3년이라는 역사는 허무할 만큼 쉽게 무너져버리죠. 죽고 못 살다가도 헤어지잔 한마디에 남이 되어버리는 흔한 연인들의 이별처럼 말이에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

ⓒLIKEDOJI

이야기는 나애의 과거를 추적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나애는 이전 연애에서도 결혼을 유보하며 연인과 10년을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다른 여자가 나타나자 그를 ‘쿨하게’ 보내주죠.

 

나애의 ‘쿨함’은 사실 ‘고독함’을 포장하려는 안간힘입니다. 이 고독함은 나애가 유년기에 겪은 사건들에서 기인합니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 가족보다 가까웠던 친구들로부터의 일방적인 단절. 상처로 인해 형성된 방어기제는 나애를 그 누구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철벽녀’로 만들었죠.

 

누구에게나 아주 오래 전에 일어났지만 어떤 형태로든 현재의 삶에 개입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어떤 일은 단 한 번 일어났다 해도 영원히 계속된다.’고 말합니다.

슬픔이 일어날 때면 나는 새하얀 티슈를 뽑듯 재빨리 뽑아내 아무데나 버렸다. (…)

 

하지만 여전히 이별에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것이나 다시 보는 것이나 무엇이든 희도를 떠올리게 했다. 그와 보았던 것과 그와 보고 싶은 것, 눈길을 끄는 것은 모두 그 두 가지 뿐이었다. 아마도 진짜 이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시작되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끝날 것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이별은 밤처럼 검은 우리 등 뒤에서 완성된다.

겉으로는 말끔하게 봉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나애의 상처. 나애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치유할 수는 있는 걸까요?

 

감정을 묘사하는 작가의 섬세한 필치가 인상적입니다. 먹먹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다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누군가가 혹은 어떤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저자 전경린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7.12.20.

02.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 모임

이번엔 눙물을 닦고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소개해드릴게요. 이 책을 모르더라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라는 조어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후, 동명의 모임이 여기저기서 열렸다고 하니까요.

 

이야기는 실연당한 사람들이 아침 7시에 모여 조찬을 먹고 실연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실연의 기념품을 교환하는 참신한(?) 이벤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요,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살짝 극적일지라도, 이별 후 느끼는 감정 묘사가 너무 현실감 있어서 몰입하게 됩니다.

 

이제 막 위험한 사랑을 끝낸 사강, 오랜 연인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짐을 통보 받은 지훈, 이 모임을 주최한 미도. 세 사람의 사연을 중심으로 실연의 아픔과 상실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실연이라는 다소 우울하고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처럼 거침없이 읽을 수 있는 이유는 트렌디한 문체로 서사를 풀어내는 백영옥 작가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였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p.26)

원래 이 책의 제목은 2012년 출간 당시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었는데요, 최근 재출간되며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으로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내용면에서도 시류에 맞게 상당 부분 각색이 되었다고 하니, 책을 이미 접한 분들도 다시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저자 백영옥
출판 아르테(arte)
발매 2017.07.21.

03. 애도일기

이번엔 사별을 다룬 책을 소개해드릴게요. 『애도일기』는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2년 동안 쓴 짤막한 메모를 엮은 책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죽음’에 대한 고찰, ‘애도’라는 행위에 대한 사색이 담겨있죠.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p.33)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p.78)

 

이런 말이 있다 :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뿐이다. (p.111)

소중한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애도일기』의 한 줄 한 줄에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다고 썼듯,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애초에 책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닙니다. 짧은 메모를 모아 책의 꼴로 엮은 것이라, 처음엔 페이지의 반이 넘는 여백이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죠. 하지만 문장에 깊게 밴 절망과 비통함이 그 여백을 채우고도 남는다는 것은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애도일기』를 쓴 후 롤랑 바르트는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합니다. 치료를 거부하다가 결국 사망하는데요, 이 죽음은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지만 사실상 자살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아마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겠죠.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사별한 사람들이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소중한 사람의 죽음 후 느끼는 감정이 너무도 절절하게 묘사되어 그 아픔이 그대로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란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인 사건인지에 대해, 더 나아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

애도일기
저자 롤랑 바르트
출판 이순
발매 2012.12.10.

04. 좋은 이별

이 책은 이별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건강하게 관계를 매듭 지음으로써 인생의 성장통을 이겨내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별’이라고 하면 큰 사건처럼 느껴지지만, 이별은 삶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차치하고도, 직장을 그만 두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 반려동물의 죽음 등 삶은 크고 작은 이별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

영화 '고스트 스토리' 스틸 이미지 (뜬금없는 영화 추천..)

사람마다 이별 후 보이는 행동도 각기 다른데요, 누군가는 미친 듯이 취미 생활에 전념하고, 누군가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또 누군가는 폭력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문학 작품의 사례를 인용해서 다양한 양상의 이별 징후를 분석하고, 좋은 이별을 하는 방법을 조언합니다.

이별 후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만나는 원 나이트 스탠드도 자기 성애의 표출이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거두어 온 리비도를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가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거나, 상대가 자기의 나르시시즘을 반영해 주지 않으면 곧장 그 관계를 파기하고 다른 상대를 찾아 떠난다. 상처 입은 자기애를 감당할 수 없어, 고통과 슬픔을 느끼기 힘들어서 그렇게 짧은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다. (p.136)

 

소중한 것을 잃거나 깊은 상실을 경험하면 우리는 조용한 곳,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곳으로 찾아가 혼자 머물고 싶어 한다. 그런 장소에서 무슨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한다. (p.165)

저마다 다른 이별 후유증이 어떤 기제로 인해 표출되는지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 시도가 흥미롭습니다. 책에서 인용한 다양한 문학 작품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아직 이별에 서툰, 매번 이별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책 4 - 사

좋은 이별
저자 김형경
출판 사람풍경
발매 2012.05.01.

또 좋은 북큐레이션으로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