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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최고의 공동창업자

by플래텀

상당수 벤처 투자자들은 공동창업한 회사를 선호한다. 공동창업자로 만들어진 회사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럿이며 속도감 있게 현실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난 좋은 제품을 만들었지만 잡스의 사업 수완이 없었다면 지금의 애플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 애플 창업자 워즈니악 처럼, 공동 창업자는 사업 초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여기, 공동 창업자로 일궈냈던 회사들을 소개한다.

대학시절 앙숙이 동업자로…구글의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래리와 세르게이는 1995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시절 처음 만났다. 처음부터 이들의 사이는 좋지는 않았다고 전해진다. 다만 두 사람 부모의 직업이 대학교수라는 점, 두 사람 다 컴퓨터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데이터 분석에 대한 열정으로 의기투합했고 회사에 이 정신을 담았다. 그리고 1998년 회사 설립 이후 에릭 슈미트가 합류해 지금의 구글을 만들었다. 구글의 시가총액은 5천744억 달러로 이는 우리 돈 659조6천984억 원에 해당한다.

첫 눈에 반한 사이 ‘애플’의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두 명의 스티브는 1970년 여름 처음 친구네 집에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워즈니악은 컴퓨터를 개발하느라 바빴고 스티브 잡스는 그가 개발한 컴퓨터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이들의 기술력과 사업적 감각은 비즈니스에서 시너지를 발휘했다.

 

2006년 워즈니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 잘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잡스는 그 제품에 감성적 디자인을 담아 팔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고 회고했다. 지금의 애플은 시가 총액 6천50억달러(약 713조원)의 기업이다.

친구가 원수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윙클보스 형제,숀 파커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2012년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에 등극되기도 했던 저커버그는 공동창업자와의 법적분쟁이 있었다.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2003년 10월 하버드 대학교 2학년 시절, 학교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학생들 기록을 빼서 이를 바탕으로 여학생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후 윙클보스 형제, 에두아르도 세버린, 앤드류 맥컬럼,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즈 등 대학 친구들과 함께 페이스북을 설립했다. 그러다 사업이 커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냅스터 창업자인 숀 패닝까지 합류하며 오늘날의 페이스북으로 발전시킨다.

 

이 과정에서 타일러 윙클보스와 캐머런 윙클보스는 저커버그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훔쳐 페이스북을 만들었다면서 소송을 제기, 주식과 현금 등 총 6천500만달러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송사는 2008년 윙클보스 형제에게 저커버그가 보상을 하며 마무리 된다.

 

이뿐 아니다. 초기 멤버인 에두아르도 세버린 또한 페이스북을 떠나는 등 저커버그의 공동창업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숀 파커만이 그의 곁에 남아 페이스북을 지켰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UX/UI 디자인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들이 고군분투한 결과 페이스북은 순익 36억 달러의 글로벌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제 2의 페이스북 사태? 스냅의 에반 스피겔&보비 머피,레기브라운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에반 스피겔은 현재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 몰이 중인 메시징 앱 ‘스냅챗’의 대표인 26살 청년이다. 스피겔은 공동창업자 보비 머피, 레기 브라운과 스탠포드 재학 시절 사교 클럽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다. 이들은 10초만에 메시지가 삭제되는 앱을 만든 뒤 학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스냅챗은 페이스북의 30억 달러 인수 제안 거절, 구글의 러브콜을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여전히 핫하다. 스냅챗은 지난 2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정식으로 IPO를 신청했다. 스냅챗은 기업공개를 통해 30억 달러를 조달할 계획이지만, 40억 달러를 조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스냅의 기업 가치는 최대 250억 달러에 이르게 되며, 에반 스피겔은 37억 달러(한화 약 4조 2580억 원)를 손에 넣게 된다.

 

공공창업자간 관계가 원활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스냅의 핵심 기술을 고안한 브라운이 운영 갈등으로 스냅을 떠나기도 했다. 스냅챗의 CTO이자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인 ‘스펙테이클’의 기술 총책임자인 보비 머피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반과 나는 쿨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쿨한 이미지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어려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이좋은 친구,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조 게비아, 네이선 블레차르지크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2008년 8월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체스키와 게비아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디자인 컨퍼런스 참가자들에게 자신들의 거실을 일정 요금을 받고 빌려 준 것을 계기로 숙박공유 서비스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현 CTO인 네이선 블레차르지크가 합류하면서 에어비앤비의 전신인 ‘Airbedandbreakfast.com’를 오픈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 두명으로 이뤄진 에어비앤비는 앞에 언급된 두 회사와는 다르게 공동창업자간 큰 갈등 없이 기업가치 300억 달러, 전세계 191개 국, 2백만 개의 숙박 공간을 더욱 넓히는 중이다.

 

2015년 10월 네이선 블레차르지크는 한국에서 팀 구성의 중요성과 핵심가치 유지, 서비스 핵심 사용자의 중요성 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아이디어는 바꿀 수 있으나 파트너는 변경하기 어렵다는 점, 시간을 들여도 공동창업자를 잘 선택 해야할 것, 서로 존중해 파트너십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비즈니스 파트너인 우버의 트레비스 칼라닉&개럿 캠프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연속창업가인 트레비스 칼라닉은 택시를 잡던 중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던 것에 착안해 버튼 하나만 누르면 택시가 오는 앱을 떠올렸다. 사업을 구상하며 동료 벤처사업가인 개럿 캠프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캠프는 25만 달러(한화 약 2억 8455만원)를 시드머니를 투자하며 합류했다. 그리고 라이언 그레이브스, 오스카 살라자르, 콘래드 웰런이 의기투합해 탄생한 것이 공유경제의 대표 주자 ‘우버’다.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우버는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등장한 지 7년만에 60개국이 넘는 국가에 진출했고 기업가치는 620억 달러(한화 71조2,690억 원)를 상회한다.

친구이자 라이벌, 네이버 이해진&카카오 김범수 전 의장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네이버 설립자 이해진 의장은 서울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2년 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전산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 SDS에 입사한다. 이후 사내벤처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 본격적으로 독립한 뒤 네이버컴을 설립했다.

 

이후 86학번 대학동기이자 삼성SDS 입사 동기인 김범수 당시 한게임 대표를 만나 2001년 합병했고, 사명을 NHN으로 변경한다. 이들의 협력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네이버는 지식in서비스, 블로그, 카페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국내 검색 포털 1위 업체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던 중 네이버와 NHN 엔터테인먼트 분리,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부가 연달아 실패하는 등 운영 상 여러 갈등이 생겨 김 이사는 회사를 떠난다.

 

공동 창업자간 결별 과정이 있었지만, NHN은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모바일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을 본 뒤 메신저 개발 사업에 착수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라인’이다. 라인은 전세계 점유율 3위 메신저로 도약, 뉴욕과 도쿄에서 동시 상장한다. 이를 발판으로 네이버는 현재 시가 총액 25조 원의 IT 거물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업 성공에는 그가 있었다’ 역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네이버 이해진 의장과는 대학 동문과 회사 입사 동기로 연을 맺었다. 이 의장보다는 먼저 회사를 떠나 한게임을 설립한다. 네이버와 한게임은 합병후 시너지를 냈지만, 도박성이 짙은 게임으로 사업을 운영한다는 사회적 비판 여론이 거셌고, 연이은 글로벌 사업화 실패로 두 공동창업자는 관계가 소원해 진다.

 

이후 2007년 회사를 떠난 김 의장은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메신저 앱으론 당시 ‘왓츠앱’이 있었지만 유료였음을 착안해 무료 서비스를 기획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한국 내 부동의 1위 메신저 어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의 모회사인 카카오는 앱내 카카오 게임으로 수익화 하는 방식을 채택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카카오는 네이버에 밀려 고전하던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다. 김 의장은 현재 카카오 내부에서 인공지능 사업팀을 맡아 운영할 예정이다.

 

기자 서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