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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것

byㅍㅍㅅㅅ

라이프 스타일

‘라이프 스타일’, 우리말로 옮기자면 ‘생활양식’ 정도 되겠다. 입고, 먹고, 사는 전반적인 생활의 방식 또는 콘셉트랄까, 뭐 그런 거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라이프 스타일의 종류가 지금처럼 다양하게 용어화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단어조차도 지금처럼 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 그 시절에도 분명 모두가 모두의 ‘라이프’를 살아내고 있었을 텐데.

 

‘스타일’이라는 것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말할 수는 있지만 다양한 변주와 경계의 모호성 때문에 그 실체는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즘 유행하는 ‘어글리 슈즈(Ugly Shoes)’만 해도 그렇다. 과장된 아웃솔, 투박한 외관, 촌스럽고 지저분한 디자인 등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어글리 슈즈의 대열에 합류한 여러 신발들을 보면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다 제각각의 디자인이니까. 라이프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무어라고 규정된 특징들이야 있지만, 그 라이프 스타일을 살아내는 각자의 라이프는 제각각의 모습으로 꾸려진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북유럽 스타일’이 대세이긴 하다. 도대체 북유럽은 어떤 곳일까. 가보고… 싶다…

근대 성장주의를 기반으로 산업화에만 몰두하던 시절이 저물고 2000년, 밀레니엄 이후 유행했던 ‘웰빙’이 어쩌면 지금의 라이프 스타일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었던 것 같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더불어 여가, 복지, 유기농, 슬로푸드 등등 아무튼 좋다는 건 다 들어간 종합 선물세트 같은 라이프 스타일. ‘웰빙’ 이후 10여 년이 지나, 요즘은 그 ‘웰빙’의 방식이 더 세분화 된 것 같다. 거기에 SNS 덕분에 먼 나라의 라이프 스타일도 재깍재깍 확인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여러 라이프 스타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근 각광받는(?) 3가지 라이프 스타일을 알아봤다. 궁금하기도 하고, 어쩌면 나도 트렌디한 라이프 스타일 대열에 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좋다는 것엔 대개 이유가 있더라고.

요즘 뜨는 3가지 라이프 스타일

1) 미니멀리즘

 

우선 ‘미니멀리즘’이다. 뭐, 이름 그대로다. ‘필요 최소한의 삶’이랄까. 라이프 스타일이기 이전에 예술문화 사조로 등장한 개념인데, 적용 범위가 아주 넓다. 예술, 복식, 건축, 음식 등등. 공통점은 반복성, 단순성, 절제 등등. 미니멀리즘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이 바로 ‘미니멀리스트’인데, 주로 단순성과 절제에 집중한 것 같다.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사람들이 보통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들, 예를 들면 소파, TV, 침대 같은 것들도 진짜 미니멀리스트에겐 사치다. 궁극적인 미니멀리즘의 목표는, ‘아무것도 없는 방’이다. 이 정도면 거의 법정 스님의 무소유보다 더 금욕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진정한 미니멀리스트의 방이란 이런 거겠지….

얼마 전엔 망미동 F1963의 Yes24에서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잠시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칭 ‘중도 미니멀리스트’라는 저자의 책인데도 그랬다. 특히 <제3장. 인생이 가벼워지는 비움의 기술 55> 챕터는 정말, 나로서는 뒤통수 맞기의 연속이었다. 가령 이런 식인 거다. ‘rule 01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라’ 일단 초장부터 기선제압이 대단하다.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라니.

 

또 읽다 보면 기술 간에도 서로를 배신하는 항목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rule 13 필요한 물건과 갖고 싶은 물건을 구분하라’라고 하면서 동시에 ‘rule 52 진짜 필요한 물건은 반드시 돌아온다’며 일단 버리라는 식이다. 얼핏 역설법을 활용한 잠언들 같은 비움의 기술들은, 나 같은 물욕 넘치는 속세에 찌든 사람이 익히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들이었다. 베개와 이불을 적당히 배치하면 소파가 된다는 친절한 설명이 달린 사진 앞에서,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포기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내게는 미니멀리즘과 불편함과 궁상, 그 경계를 나누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2) 휘게

 

두 번째는 ‘휘게’다. 뭔가, “휘바, 휘바”가 떠오르면서 왠지 북유럽의 청량한 느낌이 배어 있는 단어다. 휘게는 덴마크, 노르웨이어로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의미하는 명사다. 일단 여기까지만 봐선 ‘웰빙’만큼이나 추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처럼 보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 정도가 되겠다.

 

19세기 덴마크 문학에서 처음 등장했고, 덴마크의 높은 행복지수 비결로 유명해졌다. 유엔 지속가능개발연대(SDSN)가 발표한 ‘2017년 세계 행복도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으니 믿을 만한(?) 라이프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인 가구 업체 이케아(IKEA)가 지향하는 것도 바로 휘게 라이프다. 때문에 이케아 매장의 쇼룸에는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닌 생활용품 (옷, 책, 신발, 노트북 등등)을 함께 배치해서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이케아의 공간을 누리는 행복’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뭐야, 사진이 너무 안락하고 아늑하잖아..

사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다만 간절히 원해도 누릴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해태, 유니콘 같은 상상의 동물이랄까. 동물이라면 적어도 한국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1000/38, 전용면적 약 8평의 원룸에서 지내고 있다. 소박함은 있지만 안락함은 글쎄.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탓일 수도 있지만, 뭐 아주 안락하지는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어렵다. 그리운 친구들은 모두 먹고살기 바빠 1년에 겨우 한두 번도 보기가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쩌다 만나도 다들 마음이 급하다. 급하게 뭔가를 먹고, 급하게 어딘가에 가고, 급하게 마시고 취한다. 시간에 쫓기며 겨우 즐겁다. 현 상황에선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휘게 라이프는 언감생심이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뼈가되고 살이되는 조언

3) 라곰

 

그리고 세 번째 라이프 스타일, ‘라곰’ 어쩐지 귀여운 느낌이 가득한 이름이다. 라곰은 스웨덴어로 ‘적당한’, ‘충분한’, ‘딱 알맞은’을 뜻하는 단어다. 내가 처음 라곰을 알아봤을 때의 느낌은 뭔가, 미니멀리즘과 휘게가 섞인 느낌이었다. 8세기 바이킹 시절부터 사용되던 단어인 ‘라게트 옴(Laget om)’에서 유래했다.

 

‘라게트 옴’은 ‘팀을 둘러싼’이라는 뜻이다. 공동체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공동체의 평화와 존속을 해치는 급진적인 성격이 배제된 걸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무리하지 않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워서 작은 성취를 누릴 줄 아는 것. 일과 휴식의 개인적인 균형, 개인과 지역, 환경의 균형 등을 중시한다. 얘기하다 보니 뭔가 워라밸, 소확행의 냄새도 진하게 배어 있는 것 같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앞으로 뭐 먹을 때마다 명심하자. 라곰..라곰….

휘게와 마찬가지로 라곰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선 비정규직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내게는, 달리 말하면 사회적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내게는 라곰은 어쩐지 붕 뜬 개념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일과 휴식의 균형은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이 몰릴 땐 일에 치이고, 일이 없을 땐 휴식에 치이는 것이 또 프리랜서의 숙명인 것을.

 

작은 성취에 만족하는 것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이긴 한데, 매번 작은 성취에만 만족하며 살다 보니 도통 큰일을 해낼 기회가 생기질 않는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싶은 생각이 들어 불면에 시달리거나, 괴로운 꿈을 꾸기 일쑤였다. (어제는 꿈에서 내 팔이 길다고 놀리는 무리들에게 시달렸다. 실제로 나는 팔이 긴 편이긴 한데, 꿈에서 놀림을 들을 때마다 자꾸 팔이 길어져서 달리다가 내 손가락을 밟아서 잠에서 깼다.)

 

미니멀리즘도, 휘게도, 라곰도, 곧이곧대로 따라 살기가 어려웠다. 자신은 없고, 변명은 많다. 요즘 시대에, 다들 ‘라이프 스타일’ 있고 나만 없어.

‘라이프 스타일’ 이전에 ‘라이프’가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순서가 좀 잘못된 것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해서 내 라이프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라이프가 있어서 라이프 스타일이란 것도 생긴 거 아니냐는 거다. 휘게니 라곰이니 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알기 전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닮은 라이프를 살아왔을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그래, 때론 그냥 사는 거지…. 이 치열한 세상…

그리고 라이프, 인생이라는 건 누구나 알다시피 꽤 복잡하고 때론 모순덩어리이기도 하다. 라이프 스타일 측면에선 더더욱. 사람이 진보나 보수 같은 특정 정치색을 선택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이분법적이고 기계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저마다 우선순위로 두는 가치가 다르고, 내 일인지 남 일인지에 따라 입장 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장 나라는 사람의 인생만 해도 그렇다. ‘근대 남성’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나는 전자기기에 대해선 미니멀리스트이지만, 운동화나 스니커즈에 대해선 극단적인 맥시멀리스트 성향을 지녔다. (돈이 없어서 실행하진 못했다.) 또 상황에 따라서 돈이 있고 기분이 좋을 땐,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사고 싶은 물건 하나 마음 편히 못 사는 게 얼마나 서럽고 억울하던지.

 

그러니 어떤 ‘라이프 스타일’로 ‘라이프’ 전체를 규정하는 건 어폐가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라이프 스타일 이전에 라이프가 먼저 있었다. 라이프 스타일 없어도, 우리의 라이프는 치열하게 흘러간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것

괴테는 ‘당신이 자주 가는 곳, 당신이 읽는 책이 당신을 말해준다.’고 말했고, 하다못해 우리는 서로의 옷만 보고도 상대방을 지레 판단한다. 즉 우리는 우리의 선택으로 구성된 존재다. 때문에 라이프 스타일 역시 그런 책이나 옷처럼 당신을 말해줄 수 있는 포괄적인 선택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즉, ‘라이프’에게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입혀주고, 읽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라이프 스타일’에 ‘라이프’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은 필요 없다. 그건 주객이 전도된 거니까. 우리의 라이프는 때로는 미니멀리즘을 또 때로는 맥시멀리즘을 향한다. 때로는 휘게, 때로는 라곰을 지향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미니멀리즘, 휘게, 라곰 같은 용어를 모르던 순간에도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살아왔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분명히 같은 네이비인데.. 나는 왜 이렇지…?

위에서 언급한 3가지 말고도 킨포크, 워라밸, 소확행, 욜로, 비건, 그린 등등의 여러 방식 중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고, 그 라이프 스타일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게 본인에게 잘 맞아서, 그 덕에 삶의 질이 높아질 수도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없다.

 

나도 네이비와 그레이 컬러를 좋아해서 옷장의 외투나 상의 대부분이 네이비, 그레이 컬러다. 라멘을 좋아해서 거주지 근방 라멘 집은 다 가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좋아해서 이십 대 내내 10번이나 읽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생 네이비와 그레이 컬러 옷만 입고, 라멘만 먹고, 상실의 시대만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는 없다.

‘라이프 스타일’, 살다 보면 생기는

라이프 스타일은 타인에게 강요하는 교리도 아니고 법도 아니다. 단지 각자의 선호와 신념에 따라 사는 방식이다. 우리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휘게와 라곰을 실천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그린이나 비건이 될 수도 있고, 번 아웃 상태에서는 일시적인 욜로 족이 될 수도 있다.

 

라이프 스타일은 그렇게 살다 보면 생기는 거라고 믿으면서, 나는 오늘도 푸드 맥시멀리스트(과식과 폭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필자 김경빈 (블로그)

프리랜서 작가, 라디오 작가와 대입 자소서 컨설턴트를 거치며 글로 밥을 짓기 위해 애쓰고, 글 쓰는 서른. 현재 브런치에 매거진 연재 중이며 시집 『다시, 다 詩』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