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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타인의 취향을
배려하는 문화

byㅍㅍㅅㅅ

우리나라는 한민족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오랜 세월을 무언가 하나의 공통된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재단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소설 중 맨부커상이라는 세계적인 상을 받은 작품의 제목은 ‘채식주의자’이며, 소설의 초반을 이루는 에피소드는 고기를 잘 먹던 주인공이 난데없이 채식을 한다는 장면이다.

 

그리고 남편을 비롯해 엄마와 아빠, 그 외 기타 가족들은 채식을 하겠다는 주인공에게 무리하게 고기를 주입하려 하는 민망스러운 장면이 연속적으로 나열된다.

 

외국, 그중에서 상당히 많은 나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지 않다. 인구가 많은 중국이나 미국, 인도, 러시아 등은 당연하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아프리카나 중동, 그리고 유럽 및 남미의 국가들도 수많은 민족이 섞여 산다.

타인의 취향을 배려하는 문화

업무상 외국을 돌아다닐 일이 많은데, 외국에 나가서 식사를 하게 되면 대부분 처음 물어보거나 선택하는 문구가 veg/ non-veg이다. 종교의 이유던 개인 가치의 이유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채식주의자라면 그에 맞는 음식이 구비되어 있고, 그것을 주문한다 하더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물론 IS나 일부 와하비즘과 같이 자신들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부류도 있지만 대체로 중동의 이슬람 국가는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고 전도를 하지도 않는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건설회사 직원들이 중동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십여 년을 지냈어도 사내에 할랄푸드만 먹거나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헌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아마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겠다고 락앤락에서 아스파라거스를 꺼내면 단박에 셀러브리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상의 이유로 술을 한잔도 못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유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 이건 남자 비율이 상당히 높은 사회에서만 생활한 나의 편협한 경험에 기반을 둔 것이다.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결혼은 했느냐고, 이성 친구는 있느냐고 물어본다.

 

나이를 마흔 정도 먹은 솔로가 있으면 주변에서는 대놓고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물어본다. 모르긴 몰라도 집안의 어른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타인의 취향을 배려하는 문화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따름인데, 굳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아이를 낳는 게 얼마나 좋은지 강요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에서 구라파(?!)와 같이 대놓고 결혼 전 동거를 한다면 얼마나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을지 명약관화하다.

 

우리 사회 타인의 취향을 배려하지 않는 정점의 문화는 보수 기독교라 할 수 있다. 할랄푸드라고 불매운동을 하고, 수출을 위해 식품 할랄 단지를 만든다고 하면 정치권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막는다. 세상에 종교가 하나밖에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사상을 남에게도 강요하려는 이기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럴 땐 차라리 다신교를 믿는 힌두교가 더 숨통이 트이는 종교가 아닌가 싶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또 어느 유명한 목사의 성폭행 관련 뉴스가 페북에 자주 보인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절대 완벽해질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만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자기가 옳다고 도덕성을 내세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상기 언급한 사건같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태생적으로 한반도에서 하나의 민족이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인도의 경우 지폐에 표기된 공식 언어만 15개이고, 민족은 훨씬 많아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아프리카 국가도 대부분 부족들이 다양하고 그에 따른 언어도 가지각색이다.

타인의 취향을 배려하는 문화

과거에는 서로 전쟁을 하며 칼을 맞대었을 수 있지만, 현재는 상대적으로 조화롭게 지낸다. 물론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처럼 극단의 못된 짓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제국주의 국가가 지도에 자를 대고 쓱쓱 그은 영향도 없지 않아 존재한다.

 

조금은 타인을 너그럽게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내 눈에 고깝게 보인다고,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맞지 않는다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건 부당한 일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타인에 대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저 이를 싫어하는지 이유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일을 못 해서일까, 저 이가 나에게 피해 주는 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답이 나오지 않으면 나를 꾸짖고 마음을 정리하려 노력한다.

 

뭐 한없이 모나고 부족한 놈이라 그래도 가끔은 그 마음이 정리가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입을 닫고,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이가 많다고 남을 가르치려 들고, 남에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표준화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조금은 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필자 퀘벤하운 (블로그)

두 아이의 아빠이자 월급을 받는 회사원입니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다 소소한 기억들을 ‘기록’하고자 브런치를 운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