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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겨우 고양이 보러 거기까지 갔다고?

byㅍㅍㅅㅅ

그래, 나는 고양이 하나 보겠다고 그곳에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간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아니고,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맘도 아니다. 그저 랜선으로 만나는 고양이들을 애정 하며 지켜보고, 거리에서 만나는 길고양이들에게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는 내향성 애묘인일 뿐이다.

 

8박 9일의 간사이 여행을 준비하며 잡은 콘셉트는 하나였다. 복잡한 오사카 말고 한적한 소도시 여행. 나와 여행 동지는 이미 오사카, 교토, 고베 같은 곳의 이름난 곳들은 충분히 다녀왔었다. 그래서 오사카 근교의 소도시 여행을 콘셉트로 잡고, (비교적 한국 여행객에게) 이름나지 않은 작은 도시를 물색했다.

 

교통비가 살인적인 일본에서 여행하기 위해서는 교통 패스 선택이 중요하다. 대략 가고 싶은 도시를 이어주는 교통패스를 찾아보니 우리 여행에는 JR 간사이 와이드 패스가 딱이었다. 다시 가지를 넓혀 JR 간사이 와이드 패스가 닿는 흥미로운 소도시를 끼워 넣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도시 중 하나가 바로 와카야마시의 기시역이었다. 추가 요금을 들이지 않고 JR 간사이 와이드 패스만으로 갈 수 있는 기시역. 그곳에는 고양이 역장님이 계시다.

겨우 고양이 보러 거기까지 갔다고?

지난 2007년 1월 5일 와카야마 전철로부터 정식 역장 칭호를 얻은 타마는 안타깝게도 2015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당시 회사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조문객도 3000명이 넘었다고 하니 멀리 가는 그 길이 외롭지만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현재는 ‘니타마‘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2대 역장으로 부임해 활동 중이다. 폐역 위기에 처했던 시골 마을의 작은 역인 기시역을 연간 120억 원의 경제효과를 누리는 명소로 되살린 것은 가히 고양이 한 마리가 부린 마법처럼 느껴졌다.

겨우 고양이 보러 거기까지 갔다고?

와카야마역에 도착해 기시역으로 가기 위해 전철로 갈아타야 했다. 처음 오는 관광객들을 기시역으로 안내하는 것은 타마의 각종 캐릭터다. 안내판이며 벽, 바닥의 타마를 따라가면 금세 와카야마 전철 기시가와선 쪽에 도착한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오모덴이라 불리는 장난감을 테마로 한 전철이었다. 장난감 외에도 타마(고양이 역장), 이치고(딸기), 우메보시(매실) 등 와카야마를 대표하는 특산품을 테마로 만든 열차가 있다고 한다. 스토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짜내는 일본 사람들의 마케팅 능력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오모덴은 드문드문 추수를 끝낸 논과 아직 수확을 기다리는 농작물들이 가득한 밭들을 지난다. 우리는 오모덴을 타고 9시 3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각에 기시역에 도착했다. 역장님의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라고 했다. 혹시나 하고 역장님이 근무하시는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에 계셨다. 열성적(?)인 타마 역장님의 근무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우리를 비롯한 몇몇 관광객들의 뜨거운 시선과 사진 세례가 귀찮은 듯 등을 돌린 채 최대한 늘어지게 자기, 뒹굴거리기를 시전하고 계셨다. 신기한 마음에 근무하고 계신 역장님의 사무실을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3면이 유리로 막혀 있고, 뒤편은 굿즈샵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갇혀 지내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마음이 스르르 사라졌다. 역장님은 마음만 먹으면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몸이었다.

겨우 고양이 보러 거기까지 갔다고?

잠시 후, 단체 관광객이 관광버스를 타고 왔는지 역 밖이 시끌시끌하다. 아니나 다를까 역 안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밀려들었다. 대륙의 기세에 밀려 한발 물러서기로 한다. 역 밖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 앞의 작은 카페 겸 상점 한두 개를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었다.

 

뒤돌아 역을 보니 지붕이 고양이 얼굴 모양이다. 타마가 역장이 된 이후 리모델링했다더니 이런 작은 센스가 여행객을 감동케 한다. 단체 관광객들의 소음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로 한다.

겨우 고양이 보러 거기까지 갔다고?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기시역의 타마역장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가 역장으로 근무하는 역이 또 있었다. 이다키소역의 욘타마. 기시역과 같은 기시가와선에 포함된 역이다. 욘타마를 만나기 위해 와카야마역으로 돌아가기 전 중간에 내렸다.

 

이다키소역 역장 인턴을 맡던 고양이 ‘욘타마’가 올해 1월 6일 자로 이다키소역 역장 겸 기시역 역장 대행에 취임했다고 한다. 길고양이였던 욘타마는 성실한(?) 업무태도 덕분에 약 1년 만에 견습생에서 정식 역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묘생에도 적용되는 말인가 보다.

겨우 고양이 보러 거기까지 갔다고?

무인역인 기시역에 비해 역무원들이 근무하는 이다키소역은 다소 소박했다. 역무원들의 사무실을 제외하면 기시역처럼 굿즈샵이나 카페 같은 공간은 전혀 없다. 대신 이다키소역이 열차들이 정차하고 정비를 받는 역인지 다양한 열차를 볼 수 있었다. 선로에는 타마 열차, 우메보시 열차도 서 있었다. 욘타마 역장님을 만나기 위해 역사 안으로 향했다.

 

한적한 역에 어울리게 늘어지게 잠을 자는 욘타마 역장님을 뵙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기시역처럼 사람이 북적이지도 않고, 스포트라이트도 덜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니타마 역장님보다 비교적 고양이다운 삶을 잘 누린는 생각 때문이었다.

겨우 고양이 보러 거기까지 갔다고?

물론 이것 또한 추측일 뿐이다. 가끔 찾아오는 인간 친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조금 더 반짝이는 눈빛과 적극적인 몸짓으로 반겨주는(?) 욘타마 역장님의 면모를 관찰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고양이 말을 모르니 그의 심경을 제대로 알 순 없을 것이다. 맘 같아선 고양이 말을 좀 배워서 두꺼운 유리창을 열어 1:1 심화 인터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 거기서 행복하니?

호사가들의 말처럼 두 타마는 정말 묘생역전을 한 것일까? 아니면 손바닥만 한 유리 박스가 두 고양이에게는 유리 감옥인 걸까? 어쩌면 두 고양이는 이 또한 운명이라 믿고 자신의 묘생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고양이의 삶이란 나 같은 미천한 인간이 다 파악할 수 없는 차원의 세계일 것이다.

 

부디 두 역장님 모두 이 땅 위에서 사는 날까지 괴로움 없이, 아픔 없이 안녕히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짧은 눈인사를 건넸다. 두 역장님을 뒤로하고 다시 와카야마역으로 향하는 전철에 올랐다. 가을이 짙어가는 창밖을 무심하게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은 많은 생각이 나를 할퀴었다.

필자 호사 (블로그)

혼신의 깨춤 전문가. 여행하고 먹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