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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생계형’ 노점의 기준이
재산 4억이라는데 말이죠

byㅍㅍㅅㅅ

얼마 전, 집 근처의 7차선 대로 횡단보도 앞 인도에 노점 컨테이너 두 개가 떡 하니 들어섰어요.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이 바로 연결되는 곳이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고, 두 개나 되는 노점 컨테이너는 자연히 보행자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죠.

 

전 구청이 대체 왜 거기에 노점 컨테이너를 박아놓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얼마 후 바로 옆에서 서명운동을 하더라고요. ‘횡단보도 앞 불법 노점을 철거하라’는 내용으로 말이죠. 그리고 얼마 후에는 노점상 단체(?)에서 봉고를 한 대 몰고 나타나 ‘구청은 약속을 이행하라’ ‘생존권 보장’ 등의 시위를 하다 사라졌고요. 그 노점은 가방과 전통과자류를 잠시 팔다가 컨테이너째로 사라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횡단보도 ‘옆’도 아니고, 보행자들이 대기하는 횡단보도 바로 ‘앞’에 컨테이너를 박아버리는 패기도 그랬지만, 그게 구청에서 설치한 게 아니라 그냥 불법이란 것도 놀라웠고, 그걸 두고 시위를 하러 단체가 올라온 것도 뜨악했고.

‘생계형’ 노점의 기준이 재산 4억이

불법 노점 철거 하루 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보행로의 한산한 모습 / 출처: 세계일보

얼마 전 영등포구에서 영등포역 앞 영중로 노점을 대대적으로 철거, 정리했죠. 노점을 대대적으로 철거하고 정비하여, 유효 인도 폭을 1.5m~2m로 만들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 사례는 ‘행정이 열일한 모범적 사례’로 길이 남겨도 좋을 것 같아요. 생계형과 기업형을 구분하기 위해 상인들의 자산 조회에 나섰고, 그 동의를 얻기 위해 발로 뛰었죠.

 

상인들에게 ‘생계형 노점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끊임없이 설득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상인들과 술도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하고, 상인들과 싸우기도 하고… 그야말로 지난한 ‘소통’의 과정을 거친 거예요. 말로 하자면 간단해 보이는데, 실제론… 정말 엄두가 나지 않는 과업이죠. 처음에는 58개로 정리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30개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해요. 굉장한 일을 한 거죠.

 

그럼에도 여전히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계형’ 노점의 기준인데요. 본인재산 3억 5,000만 원, 부부합산 4억 원. 이게 ‘생계형’ 노점을 가르는 기준이었어요. 이것도 처음에 비해 많이 낮춘 거라고 하고, 사실 노점상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타협선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숫자에 동의할 수 없을 거고요. 임금 노동자 중위소득이 대략 241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연봉 3,000으로 3억 5,000을 모으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년은 걸릴 거예요. 그걸 생계가 너무 어려워서 불법적으로 노점을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고 정해준 거예요. 온정을 베풀어 노점을 남겨줘야만 하는 수준이라고요. 이건 대체 누가 누구에게 온정을 베푸는 건지…

 

불법 노점상은 이미 생계형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고, 특히 저런 노점 특화 거리는 웬만한 자영업자들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수준이라는 ‘썰’이 많았는데… 사실 그걸 숫자로 확인해 준 셈이기도 하고요. 서울 자영업 월 소득 중앙값이 172만 원이에요. 세금 내고 임대료 내고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만 호구 되는 상황이죠.

‘생계형’ 노점의 기준이 재산 4억이

출처: 경향신문

‘불법 노점 다 철거해야 한다’는 말을 신자유주의(…)에 물든 자낳괴적 사고(…)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사실 이쪽이 차라리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주변 상권에 영향이 미미할 정도로 극히 소규모이거나, 상권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거나, 아이템 또한 거의 겹치지 않는 경우 정도만 예외적으로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해요.

 

설령 노점상이 정말로 불쌍하다 해도, 노점상들이 경제의 규칙을 깨는 걸 방관하면 피해를 보는 건 규칙을 성실하게 지키는 보통 자영업자들일 수밖에 없고요. 누군 횡단보도 앞에 가게 차리기가 너무 싫어서 유동인구 없는 골목으로 밀려나나요.

 

하물며 매정한 가게 주인과 불쌍한 노점상, 이 도식적인 구도는 이미 의미가 없지 않은가 싶어요. 노점상 정리를 두고 꼭 ‘영업권’과 ‘생존권’의 대립이라는 식으로 구도를 짜는 진보언론의 게으름도 그렇고. 단기 노점상 체험(?) 같은 걸 근거로 노점상이 이렇게 힘드니 노점상을 보호하자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고. 그 노점상 옆 자영업자들에게는 영업권이 곧 생존권인데 말이죠. 이제부터라도 그런 도식적인 구도는 좀 안 봤으면 싶어요. 4억, 4억이라니. 참 당황스럽고도 분명한 숫자가 제시된 이상요.

필자 임예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노동자의 세상을 꿈꾸는 (전 편집장 겸) ㅍㅍㅅㅅ 노조위원장. 그러나 과업에는 태만하고 두목에게 술이나 뜯어먹고 다닌다는 첩보가 입수된 바 있다. 경쟁매체 슬로우뉴스에서도 세작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