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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진짜 워라밸을 하려면
‘워크’를 이렇게 하면 됩니다

byㅍㅍㅅㅅ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저자 박소연 인터뷰

 

최: 이 책을 왜 쓰신 거예요?

 

박소연: 운이 좋게도 소위 ‘일 잘하는 0.1%의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언론, 국회, 정부 등등 여러 분야별로 일 잘하는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죠. 그런데 이렇게 일 잘하는 분들은 책을 쓸 시간이 없어요. 지금 한창 팀장이고 임원이라 너무 바쁘시거든요. 그래서 결국 언제 책을 쓰시게 되냐면 은퇴하시면서 후학을 위해 쓰게 된단 말이에요. 근데 막상 그런 글은 신입, 3년 차, 7년 차, 팀장급에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나이 지긋한 경영진이나 임원이 쓰는 ‘인재를 포용하는 법’,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점’ 같은 건 실무자에게 필요가 없거든요. 너무 먼 얘기니까요. 신입사원부터 7~8년 차에게 필요한 건, 팀장급에서 일 정말 잘한 사람들이 좀 더 짧은 시간에 안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저도 일을 잘하는 편이었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말해줄 수 있을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콘텐츠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최: 무슨 일 하셨어요?

 

박소연: 산업 연구와 국제 업무였어요. 산업 연구는 우리나라 미래 산업을 찾고 기획해서 사업이 실제로 운영되도록 제언하는 역할이었어요. 또 하나는 국제 업무인데, 국제업무라고 하면 대통령 경제사절단 순방이라든지, 아니면 조지 부시나 후진타오 주석 같은 분들을 초청한 경제인 회의들이 있어요. 그런 걸 실무 총괄했어요. 프로젝트 규모로는 보통 직장인들이 해 볼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했다고 자평합니다. (웃음)

경영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업무 방식을 익힌 저자 박소연 씨.

최: 윗분들이 보시는 시선은 좀 다른가요?

 

박소연: 그럼요. 임원 회의에서 나오는 말은 정말 적나라해요. 혼나는 것도 세게 혼나고, 사원에게는 인자하던 경영진이 본부장급에게는 무척 엄격합니다. 위에서 보는 프레임은 완전히 달라요. 일 잘한다는 것은 올림픽 선수처럼 포인트제가 아니에요. 얘는 A고과 받았고 쟤는 B고과 받았으니까 A고과 받은 사람은 무조건 승진하겠지, 해외 연수 가겠지 이렇게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최: 팀장 하셨을 때 팀 이름이 뭐였어요?

 

박소연: 미래산업팀이요.

 

최: 주로 어떤 프로젝트를 했어요?

 

박소연: 우리 나라에 유망한 ‘미래 산업’을 찾는 일이요. 예를 들어 식품산업이나 바이오산업, 항공기 MRO 등은 유망한 분야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죠. 예를 들어, 식품 산업을 얘기해볼게요. 최근 CJ가 굉장히 잘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네슬레 같은 기업은 없잖아요. 그러면 식품 산업으로 세계적인 입지를 가진 국가와 기업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떻게 벤치마킹할 수 있을지 연구해 보는 거예요. 인프라는 어떻고, 어떤 제도가 있고, 우리가 못 따라가는 건 무엇인지 조사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 산업의 약점과 경쟁력을 파악해서 이슈레이징을 하고, 이렇게 제도와 인프라를 바꾸면 좋겠다는 자료를 만들어 건의했어요.

 

최: 건의를 위해 어떤 활동을 했나요?

 

박소연: 제도와 인프라가 바뀌려면 공감대가 널리 이뤄져야 하거든요. 그러니 언론과 협업해서 기획 시리즈를 맺어서 ‘네덜란드는 이렇게 식품 회사를 키웠다’, ‘미국은 어떻게 바이오산업을 키웠다’ 식의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어요. 필요하다면 기자들 끌고 같이 현장 조사도 가고요. 또한 관심 있는 지자체와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토론회도 하고, 고민하는 등의 역할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잘하려면 이슈를 찾는 기획력과 PM(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능력이 제일 중요해요. 또한 멀티플레이어여야 하고요.

상위 0.1%의 ‘일 잘하는 방식’과 최연소 팀장으로서의 ‘경험적 지식’이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한 권에 녹아 있는 셈이다.

‘똑똑한 팀장’이 후임을 다루는 방식은?

최: 근데 누구나 10년 일한다고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굉장히 일 많이 하신 느낌이 나거든요. 워라밸이 없었을 것 같은데?

 

박소연: 없었죠. 궤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시간을 많이 투입했어요.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그 시간이 짧았어요. 제가 기획실과 비서실에 있으면서 경영자가 어떻게 사업을 평가하는지, 어떤 사람이 핵심 인재가 되는지 많이 봤잖아요. 그러니 시행착오가 거의 없었죠. 보통은 처음 팀장이 되면 막막함과 초조함으로 무작정 일의 양을 늘려요. 그러니 본인도 고생이고 부서원은 더 고생이죠. 성과 내는 법을 정확히 모르니까 일단 일의 양을 늘리긴 하는데, 정작 그 많은 일을 하느라 핵심 업무가 하나도 없다 보니 제대로 된 실적이 안 나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근데 저는 기획실과 비서실에서 배운 게 있으니 시행착오가 별로인 편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운이 좋았죠.

 

최: 저는 최근에 워라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정말로 일을 더 잘하고 싶다면 주니어일수록 더 빡세게 일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소연: 빡세게 일하는 게 어떤 방식인지에 따라 다르겠죠. 소모성으로 빡세게 일하는 건지, 제대로 일하는 법을 배우느라 빡센 건지. 예전 제 팀원들도 어렸어요. 요즘 유행하는 ‘90년대생이 온다’의 1990년생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 모인 팀이었죠. 그런데 제가 그 친구들을 관찰하다가 깨달은 게 있어요. 소위 빡세게 일하는 것에 주니어들이 무조건 거부감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자기 실력이 느는 계기가 되거나 회사에서 인정받는 업무라는 확신이 들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요. 그러니까 1990년대생들이 일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고 얼른 퇴근하기만을 바란다는 기성세대의 생각은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시키는 일이 자신의 커리어에 하등 도움이 안 되거나, 중간 관리자의 잘못으로 그저 쓸데없이 소모하는 일이니까 하기 싫어하는 거죠. 예를 들어, 열 장 보고서를 써오라고 하는데 팀장이 가이드 없이 알아서 써오라고 해요. 그래서 써가면 이게 아니라고 짜증 내고, 몇 번을 고쳐서 팀장이 본부장에게 가지고 가면 또 전면 재수정해요. 실무자가 누구냐, 라는 욕은 덤으로 듣고요. 이걸 세 번쯤 반복하면 회사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또 요즘 주니어는 공평하지 않은 것, 호구가 되는 것을 진짜 싫어합니다. 직장 선배니까 실적을 양보하고 이런 건 상상할 수 없죠. 그런데 팀장이 어떤 프로젝트를 맡길 때 사수, 부사수로 나누어서 부사수 역할을 하는 1990년대 생에는 티도 안 나는 보조 업무만 맡기면 부당하고 생각해요. 결국 이력서나 연말 실적에 제대로 쓸 수도 없고, 프로젝트가 잘 되어 봤자 좋은 고과를 사수가 죄다 챙겨 가잖아요. 그런데 경력도, 고과 실적도 안 되는 보조 업무를 하기 위해 밤 10~11시까지 근무하는 일이 반복되면 의욕이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이런 문제가 메인이지, 1990년대생이 언제나 일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고 퇴근하는 시간만 초조하게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세대 경향이 그렇다면 취업을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스펙을 쌓던 모습과, 1인 창업가가 되어 열정적으로 시간을 쏟아 붓는 많은 청년들은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최: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업무를 배분하는 게 좋을까요?

 

박소연: 업무를 정확하게 나눠 주면 돼요. 예를 들어 상반기 세미나 준비를 한다고 해요. 그러면 업무를 여러 가지 덩어리로 나눌 수 있겠죠. 참석자 모집, 홍보, 강사 섭외, 행사장 예약 및 제반 준비 등으로요. 그걸 5년차에게 3개 주고 2년차에게 2개 주고 이런 식으로 나눠줘요. 그러면 셋이서 회의를 하더라도 3개에 대해서는 얘한테 보고받고 2개에 대해서는 쟤한테 보고받잖아요. 그렇게 뚜렷한 자기 성과가 드러나면 괜찮아해요. 팀장이나 본부장이 정확하게 자기 역할을 지정해주고, 잘할 경우 성과도 뚜렷하게 보이면 훨씬 재미있게 일하는 거죠.

 

최: 그러니까 매니저들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는 거군요.

 

박소연: 맞아요.

그 어렵다는 ‘90년대생 신입사원’을 다루는 노하우

‘똑똑한 팀장’이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방식은?

최: 초반에 어떤 걸 많이 지적받으셨어요? 저는 한눈에 안 들어온다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단순하게 이야기하라는 지적을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박소연: 사실 저는 그런 소리를 들으며 혼나는 분들을 매일 봤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거의 없었어요(웃음). 상사, 특히 경영진에게 혼나는 분야를 몇 개만 얘기해 볼게요. 정말 싫어하는 게 ‘재탕 사업’이에요. 이미 했던 걸 복사+붙여넣기 해서 사용하는 용어만 바꿔서 들고 오는 거죠. 또는 왜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작년에 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도 자주 혼나는 레퍼토리죠. 예를 들어 1/4분기 채용현황을 보고한다고 해봐요. 그러면 이유(WHY)는 없고 온통 방법(HOW)만 나열되어 있어요. 언제 하고, 몇 명 하고, 교육 스케줄은 뭐고, 이런 식으로 쓰여 있어요. 경영진이 바쁜 경우는 그냥 넘어가요. 그분들도 다 지적하고 고칠 에너지가 없으니까(웃음). 그런데 이 채용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유를 꼼꼼하게 물어봐요. 왜 올해 300명 채용해야 해? 왜 이 전공을 뽑아야 해? 어떤 인재를 찾길래 채용 방식은 왜 이런 식이냐?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따져 묻죠. 이렇게 묻기 시작하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예요. ‘지금까지 늘 그렇게 해왔잖아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더듬더듬 변명처럼 설명하다가 경영진의 화를 돋우고는 입을 다물죠. 사실 왜 해야 하는지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거든요. 정기 채용이 업무 분장에 있으니까 한 거죠. 이런 습성을 알고 있으니 많은 경영진은 새로 임명된 팀장이나 임원은 일부러 더 이유를 꼬치꼬치 물어봐요. 혼나기도 많이 혼납니다. 실무자가 아니라 리더는 시간과 돈, 인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왜 해야 하는지 뚜렷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거든요.

 

최: 그렇다면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대답하나요?

 

박소연: 현재 업무를 왜 해야 하는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안 갖고 있는 사람은 물어봤을 때 반응이 전혀 달라요. 왜 200명을 채용해야 하는데? 라고 물어봤을 때 이렇게 대답하는 거죠. 저희 회사가 지금 빅데이터에 기반한 의료 분석 소프트웨어를 신산업으로 선정해서 투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재 직원 중에 빅데이터 전문가는 150명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꿈꾸는 신산업이 궤도에 오르려면 적어도 700명은 있어야 합니다. 350명은 기존 직원 가르친다 치고, 나머지 200명은 신규 직원을 뽑아서 키워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경영진은 ‘어라, 이 녀석이 뭔가 생각이 있나 보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또 물어봐요. 왜 채용박람회를 안 하겠다는 거야? 이렇게 물어보면 일 잘하는 사람은 이유(빅데이터에 기반한 의료 분석 소프트웨어 인재가 필요)가 분명하니 대답에 막힘이 없습니다. 사실 빅데이터 전문가를 채용박람회에서 뽑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교수 추천이나 관련 전공의 대학원 맞춤형 설명회 등의 방법을 채택해야겠죠. 어떤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방법도 명쾌해요. 물론 경영진이 그 이유에 찬성 안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어… 저희가 작년에도 한 250명 뽑았는데… 부서별로 필요하다고 해서…”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과는 마음속에 평가가 아예 다릅니다.

보고할 때 할 수 있는 말이 달라진다.

최: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뭔가 자료를 갖고 오라고 했을 때는 왜 이걸 들고 오라고 하는지 감을 잡고 있으라는 것이고, 그러면 대안까지도 바로바로 나와야 한다는 거죠. 근데 많은 사람은 그걸 잘 모르고 곧이곧대로 들었던 것 같아요.

 

박소연: 맞아요. 그래서 책에서도 ‘최종고객을 찾으라’는 얘기를 했지요. 최종고객이 원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 이게 보고의 핵심이에요. 만약에 올해 교육 프로그램 현황 보고서를 쓴다고 할 때, 그 자료의 대상인 고객이 누구인지에 따라 완전히 자료 방향이 달라져야죠. 예를 들어 재무팀이 요구하는 자료라면 얼마나 비용을 절감했는지, 얼마나 기존 비용 대비 효율적인 프로그램인지를 강조해야 해요. 노조위원회에 보낸다고 하면 얼마나 다양하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지 강조해서 써야 해요. 경영진에 보고하는 자료라면 적은 비용으로도 직원들이 만족하는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짜서, 회사가 필요한 핵심 역량 등을 충실히 교육하고 있다고 써야죠. 이렇게 상대에 따라 보고서의 강조점과 방향은 달라집니다. 모든 상황에 맞는 보고서라는 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쓰면 결국 일을 두 번 하게 되죠.

‘똑똑하게 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4가지 요소

최: 파트를 5개로 나누신 이유가 있나요?

 

박소연: 책의 기본적인 톤은 제가 주니어들을 정말 사심 없이, 열정적으로 가르친다면 어떤 걸 가르칠까? 하는 걸 기준으로 잡았어요. 사실 자신의 팀장이나 그 조직에서 일 잘하기로 유명한 옆 부서의 팀장이 종일 붙들고 가르쳐준다면 최고죠. 하지만 정작 자기 직원은 그렇게까지 가르치지 않아요. 첫 번째는 바빠서고, 두 번째는 왠지 꼰대 잔소리로 들을 것 같아서. 책의 첫 번째 파트는 인트로예요. 왜 단순하게 일해야 하는가? 나머지는 제가 일 잘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기초 과목, 제가 아끼는 후배를 종일 교육할 때 꼭 가르치고 싶은 4개의 주제를 풀어 썼어요. 기획, 비즈니스 글쓰기, 언어 커뮤니케이션, 관계 맺기, 이렇게 4개입니다.

 

최: 그중에서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보세요?

 

박소연: 기획과 말(언어 커뮤니케이션)이요. 글은 연습하면 늘거든요. 글쓰기 수업 좀 듣고, 주어 먼저 쓰고, 비문 안 쓰는 연습 2~3달만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늘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건 기술적인 부분이고, 글쓰기를 잘하는 핵심은 말과 연결되어 있어요. 글이 왜 엉망이냐면, 생각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뭐 하자는 거야? 했을 때 명쾌하지 않은 거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고, 말로 설명 안 되는 걸 쓰면 더 혼란스럽기만 하죠.

글도 연습하면 늘 수 있다.

최: 호오… 그래서 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박소연: 네. 게다가 승진해서 올라갈수록 말은 더 중요해져요. 주니어 때는 글이 중요하고요. 주니어는 팀장에게 보고하는 것 말고는 말로 할 일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 팀장이 위에 말로 보고할 수 있도록 글로 써주죠. 그런데 만일 팀장이, 또는 본부장이 자기 부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왜 하는지, 이게 얼마나 어렵고 뜻깊은 성과인지 명쾌하게 말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보세요. 부서 직원들은 엄청 고생하는데 임원회의에서 딜리버리를 제대로 못해서 잘한 프로젝트인데 욕만 바가지로 먹고 끝나는 경우도 많아요.

말하기도 연습하면 늘 수 있다.

최: 기획은 왜 중요해요?

 

박소연: 회사는 여러 덩어리의 기획이 합쳐져서 굴러가는 조직이니까요. 기획을 잘한다는 건 What, Why, How, If 이걸 잘 쓴다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맡은 업무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떤 목표가 있으며, 가장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는 걸 잘한다는 의미이죠. 실행할 구체적 계획도 짜는 법을 알고, 실제로 그 조감도 대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은 어느 조직이나, 어느 부서에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역량입니다.

 

최: 기획, 글, 말, 관계 이 부분들이 공부한다고 느는 걸까요?

 

박소연: 네. 늘어요. 왜냐면 일은 타고난 것과 키워지는 부분이 3:7 정도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영역인 거죠. 프로젝트 한 번 하고 나면 쑥 커 있잖아요. 실장님도 실무 교육을 여러 번 담당하시니 데이터가 쌓이신 것처럼, 일하는 프레임이 머릿속에 들어간 분들은 당연히 일을 잘할 수밖에 없어요. 똑같이 하는 업무를 매년 똑같이 하면 실력이 안 늘겠지만, 계속 다르게 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실력이 늘죠. 글도 쓰면 늘고 말도 하다 보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은 못 하겠지만 당연히 늘어요.

 

최: 기획은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요? 자원은 한정되어 있을 텐데.

 

박소연: 본인이 기획할 때 가지고 있는 자원에서 10%, 20% 늘리려고만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요. 자원은 어디서 안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을 10% 더 늘리면 죽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찾아보면 공짜인 자원이 많아요. 예를 들어 지자체는 항상 운영 비용이 부족해요. 그래서 기획할 때마다 “지금 돈도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하고 이러저러해서 못합니다”라고 해요. 그런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과 골드만삭스가 협업해서 ‘독거노인 지키기 프로젝트’라는 걸 했어요. 배달부는 매일 배달 하잖아요. 그런데 신문이나 우유가 너무 많이 쌓여 있으면 그 안에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그러면 배달원이 지자체나 담당자에게 연락하는 거예요. 여기 좀 문제 있는 것 같다. 이러면 딜리버리 업체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거고, 지자체도 추가 비용이 없죠. 일일이 독거노인을 찾아다니려 하면 인력을 몇십 명 고용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물론 자기들도 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렇게 이중으로 같이 찾는다면 더 좋겠죠. 이런 식으로 기획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출처: 중앙일보

최: 기획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소연: 가장 최적의 행동을 찾아내는 거죠.

 

최: 최적의 행동이요?

 

박소연: 기획의 정의를 보면 ‘가장 원하는 열망, 가장 원하는 미래’를 찾아내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해요. 미래는 뭐 찾았다 치고, 그걸 이루기 위한 가장 적합한 행동을 찾아내서 기획서에 적어야 해요. 왜 많은 기획서가 시시해 보일까요? 원하는 미래를 달성하기 위해 세 개의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고 써 있는데, 왜 꼭 세 개의 방법인지 납득도 안 되고 마음이 흥분되지도 않거든요. 예를 들어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 이라는 기획서를 생각해볼게요. 기획서에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했어요. 교육을 강화하고, 공영 홈쇼핑에 노출 놀리고, 대형마트에 입점시킨 뒤 일정 기간 홍보하겠다고 합니다. 와, 얼마나 좋은 의견이에요. 그런데 왜 하필 그 세 개야? 라고 물어보면 궁색해져요. 만약 사람들에게 “우리가 교육해주고 대형마트에 일정 기간 입점시켜주고 공영 홈쇼핑에서 1주일에 1번씩 노출해 줄게, 창업할래?”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백 명 중에 한 명도 창업 안 할걸요. 그 방법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걸로는 창업 활성화가 안 되잖아요. 우리의 기획은 틀려서 반려되는 게 아니라 야심 차게 제시한 제안들이 시시해서 반려되는 거예요. 그 제안을 적용했을 때 원하는 미래가 도무지 달성될 것 같지 않아서요. 책에는 ‘좌뇌를 통한 기획하기’ 부문에 로지컬 씽킹으로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최: 호오…

 

박소연: 기획을 할 때 실무자들이나 일 못 하는 팀장들이 하는 실수가 뭐냐면, 너무 방대한 목표를 세운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세계 평화’로는 누구도 좋은 기획서를 쓸 수 없어요. ‘자연보호’도 안 돼요. 원하는 목표 범위가 너무 넓거든요. 움베르토 에코가 쓴 『논문 잘 쓰는 법』에서 조언하는 게 ‘주제를 좁게 잡아라’ 거든요. 기획서도 주제가 좁아야 해요. 예를 들어 「2019년 직원교육 기획서」를 써 가면 칭찬받기가 진짜 힘들어요. 그런데 「3대 신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기획서」라고 하면 좀 더 성공하기 쉽죠.

 

아까 자연보호가 어렵다고 했지만, 자연보호 중에서도 “우리는 나무 심기가 자연 보호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 1,000명의 멤버를 모아 몽골에 매년 10그루의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라고 하면 이건 성공할 가능성이 좀 더 높죠.

 

그리고 소소한 팁을 드리자면 기획하실 때는 기존에 안 해 본 영역을 하는 게 좀 더 쉽고 가산점도 높아요. 전교 10등에서 1등으로 가기는 정말 어렵지만 반에서 50등이었다가 30등 하기는 상대적으로 쉽거든요. 마찬가지로 이미 잘해오던 프로젝트를 좀 더 노력해서 더 낫게 한다고 해도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쉽지 않아요. 원래 잘하던 거고, 원래 당연히 해야 하는 업무이니까. 그러니 남는 에너지가 있다면 원래 잘하던 프로젝트보다는 안 해 봤던 분야를 시도하는 게 가산점이 높아요. 중간 이상만 해도 평가를 좋게 받고요.

“왜 일을 잘해야 하나요?” 진짜 워라밸을 하려고요

최: 이직이 참 희한한 것 같아요. 다른 걸 해 보고 싶어서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국 비슷한 데로 취업하게 되죠. 반대로 조직 내에서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어, 라고 말할 때는 다른 팀에서 끌어가야 되는 거잖아요. 다른 팀이 나를 데려가겠다고 마음먹는 건 지금 일을 잘하고 있어야 가능한 거고요. 결국 주어진 일을 잘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죠.

 

박소연: 제가 책에서 ‘일하는 시간이 불행하면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얘기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분이 회사에서 여러 문제로 어려워하시는데 사실 일을 잘하면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문제가 사라지거나 좀 덜 중요해져요. 윗사람이 나를 무시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 나에게 잡무만 맡겨, 이런 일은 일을 잘하면 대부분 해결되잖아요. 그렇다고 일을 잘하는 게 만사는 아니죠. 어느 조직이나 또라이는 있으니까요.

회사의 많은 문제 중 일을 잘하게 되면 저절로 해결되는 분야가 많다.

최: 일을 못한다는 건 뭘까요?

 

박소연: 일은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해서, 어쨌든 남을 위해 내 시간과 재능을 쓰겠다고 하고 경제적인 대가를 얻는 거잖아요. 일을 못한다는 건 단지 회사에 헌신을 안 했다, 현란하게 기획서를 만들지 못했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해서 상대방이 만족할 정도의 수준에 못 가 있는 걸 말해요. 자기가 맡은 미션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결국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식당을 갔는데 식재료 관리를 못 해서 비릿하고 상한 음식이 나와서 장염에 걸렸다, 그러면 그 식당의 식재료 담당분은 일을 못하는 거죠. 아기가 열이 펄펄 끓어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가 채혈을 제대로 못 해서 아기를 20분 동안 바늘로 쑤시고 있어서 아기가 악을 쓰며 우느라 탈진 상태이다, 이러면 그 간호사 분은 일을 정말 못하는 거죠. 일을 못한다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아기 혈관을 20분째 찌르고 있는데 상사인 수간호사나 부모가 ‘그래도 당신은 참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야’ 이러긴 어렵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부모는 열을 내면서 분통을 터트릴 거고, 상사인 수간호사는 화를 내겠죠. 그러니 일을 잘한다, 혹은 일을 못한다, 이런 말에 너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 반대로 일을 잘한다는 말에 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낄까요?

 

박소연: 일을 잘하면 회사 노예가 되어야 할 것 같고, 일이 늘어서 삶이 없어질 것처럼 들리잖아요(웃음). 하지만 일을 잘한다는 건 결국 자기 역할을 잘한다는 거예요. 일 잘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저기에서 데려가려고 할 거예요. 하지만 못하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여기저기로 밀려나게 되겠죠. 그런 걸 생각하면 일 잘하는 게 나아요. 정말 안 맞는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얼른 나오는 게 맞고요. 평생 그렇게 구박 덩어리로 살 수는 없잖아요. 남에게도 피해가 되지만 자신의 자존감도 바닥에 떨어지게 될 테니까요.

 

최: 강의 때는 어떤 말씀을 하실 예정이신가요?

 

박소연: 이걸 모두 다룰 예정이에요(웃음). 1시간 20분 지나면 집중도가 급격히 떨어지니까, 70분 정도는 강연하고 나머지는 다들 고민하시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해드리려고 해요.

필자 최기영

알기 위해 씁니다. IT/스타트업 전문 에디터. (저서: 한국의 스타트업 부자들, 스타트업 코리아, 왜 지금 드론인가)(연재: 동아비즈니스 리뷰 스타트업 케이스 스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