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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법원, 이해범 전 삼성전자 전무의 기술 유출 혐의에 '무죄' 선고

삼성전자 전무는 왜 '기술 유출' 누명을 썼나

by프레시안

"삼성전자 이 모 전무가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넘기려다 적발됐다. 이 전무는 구속 기소됐다."

지난 2016년 9월, 쏟아진 기사 내용이다. 이들 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국가정보원은 같은 해 초부터 이 전무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했다. 그리고 "국가 핵심 기술" 관련 자료를 이 전무가 회사 프린터로 출력하자, 경찰에 제보해서 체포했다.

 

기사 내용은 대부분 여기까지다. 이후 이 전무는 어떻게 됐을까. 검찰은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그를 구속 기소했다. 회사에선 쫓겨났다. 구속 상태에선 곧 풀려났지만, 이 전(前) 전무는 지금껏 실업 상태다. 

"삼성 전무가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넘겼다"라는 기사, 오보였다 

그리고 12일 오전, 수원지방법원은 이 전 전무의 기술 유출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무는 회사 일을 집에서 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출력했을 뿐이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한 적도 없으며, 자료를 유출한 정황도 없다.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을 위협할 수 있는, 중국 기업과 접촉한 정황은 아예 없다.

 

요컨대 2016년 9월에 쏟아진 관련 보도는 모두 오보였다. 아울러 삼성전자와 국가정보원의 조사 및 제보 역시 근거가 없었다. 누명을 썼던 그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공학 박사를 받고 인텔에서 일하다 2009년 삼성전자 상무로 스카우트됐던 이해범 전 전무다.

병으로 쉬는 동안 공부하려 자료 출력, '기술 유출' 누명 빌미 

이 전 전무는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 부문에서 일하면서, 실적을 인정받았다. 그가 지휘하던 팀의 구성원이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비(非)메모리 영역인 시스템LSI 사업부 전무로 승진했다. 세계 1위 수준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이끈 인재들이 비(非)메모리 영역 경쟁력을 끌어올리게 한다는, 회사 방침 때문이었다. 전무 승진 이후, 격무에 시달리던 이 전 전무는 갑작스레 건강을 해쳤다. 한동안은 건강 이상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2016년 초 삼성 미래전략실 회의 참석 직후 주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잠시 쓰러졌다. 결국 몸이 아프다는 게 드러났고, 병가를 신청했다.

 

기술 자료를 종이에 출력해서 보는 게 그의 버릇이었다. 그는 종이 위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읽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쉬는 동안에도 관련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자료를 대량으로 출력했는데, 그게 '기술 유출' 누명을 쓰는 빌미가 됐다. 출력한 자료를 갖고 회사에서 나오다 체포될 때만해도, 그는 가벼운 오해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후 쏟아진 언론 보도를 본 뒤엔 경악했다. 삼성전자와 언론은 그를 중국 기업에 반도체 기술을 빼돌린 범죄자로 못 박은 상태였다.

 

2016년 당시는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이 한국의 반도체 전문가들을 스카우트 하려 애쓰던 시절이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수준인 삼성전자의 엔지니어들은 고액 연봉에 스카우트될 가능성이 컸다. 이 전 전무가 갑작스레 구속되고, 관련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삼성전자 측은 엔지니어들을 단속하는 효과를 누렸다. '중국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다 자칫하면 구속될 수 있다'라는 신호를 보냈던 셈. 아울러 고위 임원에 대해선 느슨했던 보안 통제 역시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성공의 주역을 쳐내는 삼성, 추악한 면을 봤다"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검찰은 삼성전자 측 입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리고 검찰 공소장에 담긴 삼성전자 측 입장은 그가 경험한 삼성과 완전히 달랐다. 반도체 수율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던 재직 시절 평가는 흔적도 없었다. 대신, 회사법인 카드를 엉뚱한 용도로 썼다는 등의 내용만 담겼다. 대학 동창과의 사적인 식사비용을 회사법인 카드로 결제했다는 것.

 

12일 수원지방법원은 이 전 전무의 기술 유출 관련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회사법인 카드를 사적으로 쓴 점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이 전 전무는 자신에게 '기술 유출' 누명을 씌운 이들과 싸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남긴 말.

 

"삼성전자에 다닐 때 정말 열심히 일했다. 팀원들과 늘 한마음이었다. 나를 포함한 동료 엔지니어들이 삼성전자의 성공을 이끈 주역이라고 믿는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성공에 기여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삼성은 회사의 성공에 기여한 주역을 매몰차게 쳐냈다. (기술 유출 누명을 쓴 뒤), 삼성과 사회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 추악한 면을 봤다."

 

기자 : 성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