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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혐오스러움의 매혹

by예술의전당

연극 <리차드 3세>

2.6(화) - 3.4(일) CJ 토월극장

혐오스러움의 매혹

황정민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관객의 마음을 사기에 원고지 수백 매의 장황한 글보다 저 세 글자 이름의 힘이 훨씬 막강할 것이다. 심지어 셰익스피어나 리차드 3세도 지금의 한국에서라면 황정민 앞에서는 맥을 못 출 일이다. 형사면 형사, 폭력배면 폭력배, 무당이면 무당,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게 아니라, 아예 그 인물을 살아내는 경지로 관객 1억 명을 동원한 배우 황정민이 이번에 선택한 인물은 희대의 악당 리차드 3세다.

나는 악당이 되기로 결심했다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으로 분류되는 <리차드 3세>는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첫 희곡. 주인공은 물론 리차드 3세다. 재위 기간은 겨우 2년에 불과했지만, 요크 가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악명 높은 왕이다. 그를 두고 오랫동안 사가에서는 ‘곱사등이, 절름발이의 신체적 결함을 가졌던 괴물’, ‘친족을 살해하고, 아내까지 독살한 악마’로 평가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쩌면 이런 평가가 정설처럼 굳어진 데에 셰익스피어의 지분이 상당할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에서 묘사한 리차드 3세가 딱 저런 모양새다.

 

셰익스피어는 리차드 3세가 악당이 된 이유를 그의 신체적 결함에서 찾았다. 이는 <리차드 3세>의 맨 첫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세 한탄을 하며 등장한 리차드 3세는 이렇게 말한다. “간드러진 말이나 주고받는 이 시절에 어울리는 구애로 사랑을 쟁취하기는 다 틀렸다. 나는 악당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세상 부질없는 쾌락일랑 저주할 것이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그가 선천적 기형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며 성장한 탓에 평범한 인간성을 잃어버린 채, 잔인한 권모술수와 비틀린 욕망에 집착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랑이나 명예 대신 권력을 택한 리차드 3세는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조카를 런던탑에 유폐하고 형제를 살해한다. 사실 왕위 찬탈을 위해 친족들을 숙청한 사례는 어느 나라 역사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리차드 3세가 악명이 높은 이유가 있다. 그는 야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척살한 정적의 아내 앤에게 구애를 하는 파렴치한인가 하면, 그렇게 혼인한 앤이 또 다른 정략결혼에 장애가 되자, 독살하도록 명령하는 냉혈한이기도 하다. 세상 이보다 극악무도한 인물이 있을까.

증오하거나 동정하거나

마주보기는커녕, 마주치기조차 싫은 이런 인물을,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꾸만 보려 하는 걸까? (<리차드 3세>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사극 중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의 ‘혐오스러움의 매혹The Fascination of the Abomination’이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혐오스러움의 매혹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어떤 이들은 리차드 3세의 사악한 행위에서 불쾌감을 느껴 그의 파국을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반대로 그의 혐오스러운 외모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외모에서 비롯된 그의 불행한 운명에 연민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꾸미는 음모에 공모자가 되어 그를 응원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저 모든 이유로,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리차드 3세에게 ‘혐오스러움의 매혹’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리차드 3세>의 매력 아니겠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황정민이 무대 위에서 어떤 리차드 3세를 살아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그것은 황정민 혼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관록의 배우들이 그와 호흡을 맞춘다. 배우 정웅인은 리차드 3세의 형 에드워드 4세로 출연하고, 배우 김여진은 리차드 3세와 권력 쟁탈전을 벌이는 에드워드 4세의 부인 엘리자베스 왕비로 분해 황정민과 일합을 겨룬다. 이외에도 이색적인 캐스팅으로 극의 재미를 더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히로인이자 그동안 뮤지컬에서만 볼 수 있었던 박지연은 리차드 3세에게 구애를 받는 앤으로, 국립창극단 출신의 소리꾼 정은혜는 몰락한 가문의 수장인 마가렛 왕비로 등장한다. 한아름이 쓰고, 서재형이 연출하는 연극 <리차드 3세>는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글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샘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