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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가슴 속 빛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by예술의전당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4.18(수) - 5.6(일) 자유소극장

가슴 속 빛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이야

시작은 천문대였다. 딸 아이와 함께 천문대에 갔다가 별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생동하는 심장을 느꼈다. 김민정 작가가 별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였다. 어떤 순간이든 밤 하늘의 별은 가슴을 뛰게 하니까, 별처럼 반짝이지만 자기 안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타인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담았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다.

 

2007년 김 작가와 함께 연극 <해무>로 제26회 전국연극제 은상, 한국연극 선정 ‘2007 한국연극베스트 7’ 등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안경모 연출이 관객들의 가슴 속 별을 밝혀보기로 했다. 세상을 밝히는 이야기의 힘은 원로배우 최불암을 25년만에 연극 무대로 이끌었다.

 

‘우주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눈물과 웃음, 아픔을 지닌 지구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안에 펼쳐 보이겠다는 김민정 작가와 안경모 연출을 만났다.

 

김민정 작가는 <해무>, <하나코> 등 전작을 보면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어디에서 출발했나

 

김민정 - 이번 작품의 모태는 2016년작 <아인슈타인의 별>이다. 딸 아이가 한 달에 한 번씩 천문대를 다녔다. 몇 차례 아이 수업에 동행하며 별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별이든 늘 처음엔 짝이 있다는 동반성 이야기, 너무 센 중력에 동반성을 깨뜨리고 빛을 밝히는 가스마저 잃어가는 벨라트릭스 별 이야기도 그때 듣게 됐다. 이야기를 듣고 별을 봤더니 소녀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후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공부했다. 특히 책 머리에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永劫(영원한 세월)에서 행성 하나의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라며 평생의 연구 동료이자 아내인 앤 드루얀에게 바친 헌사가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자 선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별 이야기, 별이 된 사람들에 대해 에피소드 형식으로 여러 개 썼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안경모 연출과 함께 수정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시 쓰고 인물 관계도 대폭 바꿨으니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사실상 재창작한 작품이다.

 

안경모 연출의 꿈이 천문학자였다고 들었다. 극중 인물인 준호도 천문학자인데

 

안경모 - 대학시절 천문학도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천문학 강좌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그 공부가 아니었다. 나는 별을 노래하며 시를 쓰고 싶었는데 별 사진을 보며 지구와의 거리를 측량하더라. 단숨에 꿈을 접었다. 그러다가 김 작가 권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예술과 천문학’ 강의를 들었다. 당시 천문학자들이 와서 가르쳤는데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저런 공부를 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분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별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스스로 질문해보기도 했다. 이 교육이 작품의 인물 구축에 큰 도움이 됐다.

가슴 속 빛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이야

(좌) 안경모 연출 (우) 김민정 작가

<해무>로 두 분은 리얼리즘의 대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낯선 노인,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웜홀을 찾는 남자 같은 판타지 요소가 강해 보인다

 

안경모 - 우리가 늘 동경하는 우주의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본다면 색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곁에 있으면서 사랑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모든 존재는 그저 희미하게 빛나는 점일 뿐이다. 우주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삶, 그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당신의 삶은 어떠합니까? 사소하고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하나하나의 점들이 모인 것이 바로 우주이니, 당신의 삶이 곧 우주가 아닐까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술 아닌 마술 같은 것을 담아보고 싶었다.

 

별은 무엇을 의미하나

 

안경모 - 천문학적 의미의 별도 있지만 작품 속 별은 ‘존재의 존엄’을 상징한다. 별이 있기에 우리는 사랑도 하고 갈망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극에서 무수한 별들을 보게 될 거다. 각자가 가치 있는 존재로서, 병수발 드는 아내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병든 남편도, 보험 사기에 휘말린 진석을 몰아치는 부장도 각자 존엄으로서 무대에 등장할 것이다.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라는 제목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안경모 - 현대인은 평소에는 ‘나’를 잃어버리고 산다. 그러다가 절망의 늪에 빠지거나, 갈망하고 분투할 때처럼 수 없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야 비로소 자존을 확인한다. 우리는 숱한 바람에 흔들리는 존재다. 하지만 빛을 내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주의 존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두들 자기 안의 빛을 보지 못할 뿐 우리 모두는 빛으로 가득한 존재들이다. 연극의 메시지가 제대로 닿는다면 모두들 자기를, 타인을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배우 최불암은 1993년 「세일즈맨의 죽음」을 원작으로 한 <어느 아버지의 죽음> 이후 25년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다

 

김민정 - 이 작품은 최불암 선생님 덕분에 다시 숨 쉬게 됐다. 모작인 <아인슈타인의 별>을 우연찮게 최불암 선생님이 운영하는 홍대 더 스텀프 극장에서 공연했고 그때 선생님이 작품을 눈여겨보게 됐다. 선생님은 언제든 연극을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20년도 더 돼서 연극 무대에 돌아올 때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작품,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의 별> 속 노인이라면 내가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하셨다. 특히 “이 부분을 다듬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할 때마다 놀란 적이 많다. 끊임없이 작품과 인물을 연구한 흔적이 묻어났다. 연극 무대에 선지 25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최불암 선생님은 쉰 게 아니었다. 늘 무대를 사랑했고 연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무대에서 빛을 낼 거다.

 

안경모 - 한마디로 최불암이 아니었으면 시작될 수 없었던 프로덕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불암이 연기하는 ‘미지의 노인, 어쩌면 천사’ 역役을 설명한다면

 

김민정 - 모든 사람은 상실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죽거나 헤어지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가족을 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살아있던 윤희를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준호의 바람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꿈만 꾸지만 연극속에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안경모 - 우리가 시간여행을 거쳐 지금 한국에 툭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세상이 이상하고 귀하게 보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호기심이 들 거다. 노인이 아내를 만났을 때 던지는 질문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아내가 걸어온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노인은 질문하는 존재다. 극중 인물에게도, 우리에게도.

가슴 속 빛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이야

대본 리딩 연습 장면

사랑하는 연인 윤희를 잃은 준호, 보험 사기에 휘말린 진석, 하반신이 마비된 남편을 수발하는 아내 등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각 에피소드가 상징하는 키워드가 있나

 

안경모 - 준호의 삶은 윤희가 있어야 가능하다. 윤희가 죽고 난 다음 준호를 존재하게 하는 건 그리움, 갈망이다. 진석과 아내는 반대로 존재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모멸을 상징한다. 진석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모멸감을 느낀다면 아내는 가족이라는 밀착된 관계에서 느끼는 모멸로 존엄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김민정 - 세 사람 모두 가정, 사람, 회사라는 관계 속에서 부서지고 상처받는다. 각기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회복하고 싶은 관계’다.

 

<해무> 작업 당시 두 분 다 새내기 연출과 작가였지만 이제는 중견급 연극인이다. 서로를 평가해본다면

 

안경모 - 김 작가는 ‘대본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모습은 예전 그대로다. 그래서 김 작가와 늘 함께 작업하고 싶고 함께하는 연극이 가치 있다고 느낀다.

 

김민정 - 안 연출과 <해무> 작업을 하던 당시가 떠오른다. 8차 수정본을 보내고 ‘이제는 끝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또 전화가 왔다. 결국 15차 수정까지 갔다. 안 연출의 능력은 이렇게 숱한 수정작업을 해도 ‘작품도 성장하고 나도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거다. 신뢰가 없다면 일 시키는 부장님과 다를 바가 없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특히 감동받은 것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다. 직접 천문대도 가고 ‘예술과 천문학’ 강좌도 듣고 배우들에게도 배운 내용을 전수하기 바쁘시더라. 그런 걸 보고나니 방금 친 탁구공이 튕겨져 나오듯 반복되는 작업도 즐거운 분투가 된다.

 

관객들이 꼭 눈여겨봤으면 하는 장면이 있나

 

안경모 - 끝에는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여러분 가슴 속에 박힐 거다. 더 이상의 얘기는 비밀이다.(웃음)

 

글 서은영 서울경제신문 문화레저부 기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4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