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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빛바랜 액자 속에서
솟아오른 눈부신 댄서들

by예술의전당

볼쇼이발레단 <백조의 호수>

5.27 (일) - 29(화) 오페라극장

 

5월 말 예술의전당이 잠시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으로 탈바꿈한다. 볼쇼이발레단과 볼쇼이오케스트라의 <백조의 호수>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볼쇼이발레단은 1990년 이래 총 다섯 번의 공식 내한공연을 가졌지만 볼쇼이오케스트라와의 합동 내한은 무려 23년 만이다. 로컬 악단과 잠깐 손발을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발레단과 오케스트라의 숙련된 파트너십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런 점에서 볼쇼이발레단을 총체적으로 체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가 될 것이다.

빛바랜 액자 속에서 솟아오른 눈부신

볼쇼이오케스트라

<백조의 호수>는 발레 무용수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다. 아름답지만 지겹다. 가녀린 팔목을 꺾어 세우고 비스듬히 기울여 붙인 머리는 백조의 고아한 자태를 숨막히게 표현해낸다. 하지만 주역 무용수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동안 땀범벅이 되어 병풍처럼 서 있는 코르 드 발레(군무 무용수)는 무대를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백조의 호수>는 발레 애호가들에게도 애증의 대상이다. 많은 발레단이 보유한 작품이자 끊임없이 재해석되기에 다양한 버전을 비교하는 즐거움은 크지만 새로운 안무작을 볼 기회가 번번 이 미뤄지는 것은 안타깝다. 이번 볼쇼이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내한 소식에 국내 발레 팬들이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쏟아낸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볼쇼이발레단이 최근 세계적인 안무가들과의 잇단 작업으로 혁신적인 안무의 메카로 떠올랐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크다. 그래도 옅은 김빠짐 후에는 슬며시 기대가 차오른다. 그래, 백조. 볼쇼이의 백조.

 

발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볼쇼이발레단과 <백조의 호수>쯤은 안다. 발레 하면 <백조의 호수>이고, <백조의 호수>라 하면 러시아고, 러시아 발레 하면 볼쇼이발레단이라는 자동연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백조의 호수>가 볼쇼이발레단에서 탄생했다는 점은 볼쇼이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 역사적인 권위를 실어준다.

 

1877년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작곡, 율리우스 라이징거의 안무로 볼쇼이발레단이 초연한 <백조의 호수>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이후 개작을 거듭하다가 1895년 마리우스 프티파와 그의 조수 레프 이바노프가 안무한 버전이 성공을 거두었다. 궁궐의 화려한 볼거리(프티파 안무)와 몽환적인 호숫가(이바노프 안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프티파-이바노프의 버전은 숱한 개작에도 기본 골조를 충실히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파격적으로 재해석되는 고전이 되었다.

텅 빈 기호가 되어버린 <백조의 호수>

빛바랜 액자 속에서 솟아오른 눈부신

이번 내한에서 볼쇼이발레단이 선보일 <백조의 호수>는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1969년도 버전을 2001년에 개작한 것이다. 1964년부터 1995년까지 볼쇼이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군림한 그는 <스파르타쿠스>와 같이 드라마틱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볼쇼이발레단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그리고로비치의 <백조의 호수>는 이야기의 설정에서 프티파-이바노프 버전과 구별되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다. 우선, 놀랍게도 <백조의 호수>에 ‘호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로비치는 실제 공간으로서의 호수를 왕자의 내면심리로 대체한다. 이러한 선택은 작품의 개연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호수가 없다는 것은 진짜 백조도 없고, 백조 사냥도 없고, 백조 사냥을 떠날 이유인 선물 받은 화살도 없음을 뜻한다. 백조가 백조일 이유조차 희미해진다. 자연히 궁궐 장면은 지그프리트 왕자와 오데트가 만날 근거를 제공하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 흐르고, 그들의 만남 역시 모두 왕자의 내적 혼란(“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이 빚어낸 몽상이기에 허무하다. 둘째, 그리고로비치는 로트발트를 ‘천재 악마Genius Evil’로 개명하고 지그프 리트의 또 다른 자아로 처리한다. 지그프리트와 동일한 동작을 수행하며 주변을 맴도는 천재 악마는 지그프리트를 혼란스럽게 한다. 악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으며, 이는 또 다른 나일 뿐이라는 설정은 다분히 정신분석학적이고 허무주의적이다. 셋째, 지그프리트의 1인칭 시점으로 바뀐 이야기는 결론마저 바꾸어놓았다. <백조의 호수>의 엔딩은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되어왔는데, 그리고로비치의 버전에서 오데트는 악마의 품에서 죽고 지그프리트는 혼란 속에 남겨진다. 소비에트 시절의 과도한 전체주의적 해피엔딩을 상쇄라도 하려는 듯 이번 버전은 철저히 비극적이고 개인적인 해석으로 처리된다.

 

이러한 개작의 초점은 결국 춤이다. 드라마의 개연성은 납작해지다 못해 사라져버리고, 결국 모든 것은 다채로운 춤을 나열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해진다. 로트발트를 마임 캐릭터에서 춤추는 캐릭터로 바꾸고, 민속적 색채가 강하던 각국의 공주들(왕자의 약혼녀 후보)에게 토슈즈를 신긴 결정은 그리고로비치의 관심사가 온통 무용수의 페르소나와 기량을 과시하는 데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드라마의 설정이 개운하지 않아도 이를 증명해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들 <백조의 호수> 알 만큼 알잖아!” 그리고 볼쇼이 발레단 특유의 자신만만한 무용수들은 피상적으로 처리된 이야기따윈 아랑곳없이 춤춘다. “봐, 우린 볼쇼이잖아!”

 

그렇다. 그리고로비치의 <백조의 호수>는 오직 무용수들을 감상하기 위한 메타-텍스트이다.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는 이야기를 몰라서 또 보는가? 그리고로비치의 버전은 마치 순수한 기호처럼 텅 비어 있지만 볼쇼이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이 낡아빠진 액자 속에서 용솟음친다.

볼쇼이발레단의 현재와 미래

볼쇼이발레단의 무용수들은 빠르고 발산적이며 과감하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의 자신만만함과 여유, 자유로움과 매너를 갖췄다. 이번 내한의 주역을 맡은 율리아 스테파노바-아르템 아브차렌코(5월 28일), 알료나 코발료바-자코포티시(5월 29일)의 캐스팅은 볼쇼이발레단 무용수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준다. 스테파노바-아브차렌코 커플은 현재 볼쇼이발레단 수석 무용수의 수준과 정체성을 보여주고, 코발료바-티시 커플은 급속히 떠오르는 신예 스타라는 점에서 볼쇼이의 미래를 상징한다.

 

율리아 스테파노바는 흠잡을 데 없는 기량과 풍부한 상체 표현이 돋보이는 발레리나다. 바가노바 스타일로 정련된 테크닉은 볼쇼이발레단의 발산적인 에너지와 만나면서 그녀를 더욱 원숙하고 매력적인 무용수로 탈바꿈시켰다. 아르템 아브차렌코는 볼쇼이발레단의 대표적인 프리모 발레리노로서 안정적인 동작 수행과 기품있는 무대 매너를 지녔다. 야성적인 눈빛과 튀어나온 광대뼈까지 누레예프를 빼닮은 그는 2015년 영국의 국영방송국 채널 BBC2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드라마인 <루돌프 누레예프: 자유를 위한 춤Rudolf Nureyev – Dance to Freedom>에서 누레예프 역을 맡아 연기력을 입증한 바 있다. 한편 올해 겨우 스무 살이 된 알료나 코발료바는 볼쇼이발레단의 마하르 바지예프 감독이 발탁한 슈퍼 루키다. 마치 발레 교본에서 튀어나온 듯 170센티미터의 큰 키에 긴 팔다리, 인형같이 오목조목한 얼굴을 지닌 코발료바는 작년 9월에 오데트/오딜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데뷔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자코포 티시 역시 바지예프 감독이 라 스칼라발레단에서 발탁한 이탈리아 무용수다. 훤칠한 키와 고전적인 외모, 기품 있는 춤은 비러시아 출신의 무용수가 드문 볼쇼이발레단에서 그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를 납득시킨다. 그런데 스테파노바와 코발료바가 모두 볼쇼이발레단(모스크바국립무용학교)이 아닌 마린스키 발레단 계통의 발레학교(바가노바발레아카데미)를 졸업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스테파노바는 마린스키발레단에서 5년간 코리페(코르 드 발레의 리더)에 머물렀으며, 코발료바는 큰 키로 인해 아예 입단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5년 볼쇼이발레단에 솔리스트로 합류한 스테파노바는 2단계나 뛰어넘어 프리마 발레리나로 승급했고, 2016년 발레학교 졸업 후 코르 드 발레로 입단한 코발료바는 이듬해 오데트/오딜 역을 맡았다. 볼쇼이발레단 계통으로 구성된 대규모 단체이자 무용수의 승급이 유난히 느린 볼쇼이발레단에서 이런 파격적인 입단과 승급은 바지예프 감독의 개혁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들의 즉각적인 성공은 마린스키발레단에겐 뼈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볼쇼이발레단은 2013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산테러 사건을 비롯하여 각종 내부 갈등과 재정적 위기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2016년에 취임한 마하르 바지예프 감독은 마린스키발레단과 라스칼라발레단에서 감독을 역임했으며, 새로이 거듭나려는 볼쇼이발레단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존 노이마이어나 이리 킬리안 등 20세기 주요 안무가들의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하면서도 소비에트 시대의 유산과 그리고로비치의 영향력을 쉽게 씻어내지 않는다. 특히 마린스키발레단을 13년간 지휘한 그가 볼쇼이발레단에 마린스키발레단 계통의 무용수들을 이식했다는 점은 마린스키발레단의 정제된 테크닉과 볼쇼이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일으킬 핵융합에 볼쇼이발레단의 미래를 걸고 있음을 암시한다. 볼쇼이발레단의 빛나는 무용수들은 결국 고전이라는 무게 속에서도, 그리고 신선함이 메말라버린 안무 속에서도, 다시금 새로운 숨결과 감흥을 빚어내는 존재들인 것이다.

빛바랜 액자 속에서 솟아오른 눈부신

율리야 스테파노바, 아르템 아브차렌코, 알료나 코발료바, 자코포 티시(좌측부터)

글 정옥희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 초빙교수 사진 빈체로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5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