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예술적 랑데부

[컬처]by 예술의전당

7.31(금) - 11.1(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오마주, 예술적 랑데부

호안 미로 '가우디를 위한 원화 Ⅲ' 1975

혁명과 표절 사이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옛것을 익혀서 저술했을 뿐, 창작하지 않았다” 는 뜻이다.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등장하는 구절로, 공자가 자신의 저술에 대해 겸양하는 마음으로 내놓았던 말이다. 이 구절은 옛 유산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아무리 새롭고 뛰어난 창작물일지라도 동시대의 문화적 환경 위에서 탄생하며, 예술가들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그러한 지평 위에 서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거기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때만이 의미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위대한 사상가들은 서로 교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한 사상적 공명이자 예술적 랑데부이다. 특별한 거장의 독자적인 사상, 독특한 예술적 영감, 새로운 감각에 깊이 경도된 한 작가의 영혼과 예술관은 새롭게 변모된다.

오마주, 예술적 랑데부

베첼리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오마주, 예술적 랑데부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32

예컨대 미술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또 다른 작품으로 참조하는 예가 종종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참조했으나 전통적인 도상, 형식, 주제에서 벗어난 현대미술의 새로운 출발점이며 혁명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앵그르의 인체 도상들에 깊이 매료된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신의 스튜디오 바닥에 놓인 앵그르의 찢어진 화집에서 발견한 파편적인 인체에서 영감을 받아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을 창조하였다. 이렇게 전통을 추종하든 위반하든지 간에, 창작이 본업인 예술가들도 직접적으로 서로 영감과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와 동등하게, 새로움을 지향하려는 의지는 앞선 작품이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고갱이 “예술은 혁명 아니면 표절”이라고 언급했 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거장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 존경을 드러내는 독특한 예술적 표현 방식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오마주다.

예술적 헌사, 오마주란?

오마주는 프랑스어 ‘hommage’를 그대로 독음한 낱말로 ‘존경’ 또는 ‘경의’를 뜻한다. 중세 라틴어 hominaticum에서 유래되었는데 라틴어 homin 또는 homo는 man을 의미하고, 접미사인 aticum은 어떤 ‘행동’이나 ‘상태’의 접미사 age로부터 파생되었다. 그 본래의 의 미는 중세 봉건시대 신하된 자가 그의 영주에게 행하던 의례, 다시 말해서 신하의 예를 표현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오마주는 동사적 의미에서, 작가의 영감의 원천이자 영향을 준 거장 과의 정신적 교감, 소통, 공감, 예술적 업적에 대한 존경, 경의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헌사tribute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오마주하는 방식은 인용하듯 작품의 일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거장의 예술적 시각을 깊이 통찰하고 자신의 것으로 적극 수용해서 새롭게 재구성할 때 예술적 의미가 있다. 동시에 오마주는 작품의 위대한 장면, 이미지, 스타일을 그대로 모 방할 수도 있지만 원작이 있음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확연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표절과 구분된다. 표절plagiarism 은 원본 작품의 일부를 재현하되 그 의도를 숨기고 자신이 새롭게 창작했음을 공공연히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창작자의 윤리적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저작권 침해와 같은 법률적 문제와 관련될 수도 있다. 한편으로, 동시대 예술의 표현 방식인 패러디parody는 원작을 차용하고 모방하지만 본래 익살, 조롱, 풍자를 통해 원작의 가치를 비판적으로 전환하려는 목적이 있으며, 그것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위조는 현존하지 않는 것을 거짓으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일상에서는 심각한 범죄 행위이지만 현대미술에서 위조 또는 허위는 거짓을 이용해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할 때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현재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바르셀로나를 꿈꾸다. 안토니 가우디 展>에서 가우디와 미로의 관계를 통해서 오마주를 좀더 구 체적으로 살펴보자.

미로, 가우디를 오마주하다 : 가우디 시리즈

오마주, 예술적 랑데부

호안 미로 '가우디를 위한 원화 ⅩⅢ' 1975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1852~1926)와 호안 미로Joan miró(1893~1983)는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 태생이다. 두 거장의 고향인 카탈루냐 지방은 피레네 산맥과 지중해와 인접 해 있어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풍부한 풍물이 어우러져 스페인 내에서도 지방색이 짙은 지역이다. 이곳은 다른 유럽과 맞닿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잦은 외침을 경험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때문에 19세기부터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외부 문화를 수용하면서 많은 예술가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던 만큼 수준 높은 예술문화를 꽃피웠다. 가우디와 미로에게 카탈루냐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가장 토착적으로 뿌리내린 지역적인 예술가로 카탈루냐의 가우디와 미로를 꼽아도 과언이 아니며, 특히 가우디는 전 생애를 카탈루냐에 머물면서 독보적으로 예술적 건축물을 구축했다. 예컨대 가우디의 건축적 특징인 독특하고 유기적인 곡면과 곡선은 일반적인 건축 양식을 초월해서 자유주의와 자연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은 카탈루냐의 역동적인 자연환경에 서 비롯된 영감을 예술적으로 실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시인’이라는 칭송답게 대담성, 직관력, 상상력의 결정체로 이 루어진 가우디의 건축은 이후 카탈루냐인의 긍지이자 상징이 되었 고, 후배 예술가들에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현재 카탈루냐 광장을 중심으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과 카사 밀라Casa Mila, 구엘 공원Parc Güell 등이 집중되어 있다. 특히 ‘신은 서두 르지 않는다’라는 그의 말을 입증하듯, 1882년 착공한 이후 미완의 상태로 현재진행으로 건설 중인 파밀리아 성당은 신비하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장엄함을 내뿜고 있다. 또한 구엘 공원을 장식하고 있는 트렌카디스Trencadis(모자이크 타일)는 지중해의 햇살을 받아 다채롭게 빛난다. 여기서 카탈루냐의 향토색과 어우러진 천재적이며 혁신적인 건축물과 감각적인 심미안은 청년 미로의 예술적인 잠재의식을 일깨우고 상상력과 직관력을 기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미로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데 세 가지 중요한 요 소로서 카탈루냐의 대지와 가우디, 앙드레 마송과 미셸 레리스 등 시인과의 교류,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를 언급한다면, 무엇 보다 선행하는 첫 번째 요소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가우디 시리즈The Gaudí Series는 미로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가우디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21점의 원판과 원본 디자인, 판화로 구성되었는데, 1976년 원본 디자인과 원판을 만들기 시작해서 1979년에 처음으로 50점을 찍어내었다. 독특한 점은 판화 위에 파편적인 종이를 콜라주하는 기법을 토대로, 전통적 기법부터 새로운 기법까지 자신이 상상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다양성을 추구했다. 색채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자유분방한 원색과 절제된 검정 색조를 대비시키고, 그 색채들은 고유한 상징적 기호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상으로 드러난다. 미로의 초현실적인 상징적 기호들은 많은 부분 카탈루냐의 자연, 해, 달, 별, 나무, 새, 곤충, 동물,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형상들은 무의식적인 층위로부터 끌어올린 원형들이며, 신화적이고 원시적인 모티프들이다. 또한 각각의 형상들은 건축적인 공간을 갖지만 이차원의 평면으로 전환되어 배치되었고, 평면이 고르지 않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왜곡된 그리드를 활용한 변화무쌍하고 불규칙한 모자이크를 연상시킨다. 요컨대 가우디 시리즈는 가우디 건축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원시적인 생명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곡선과 곡면, 상징적 이미지와 색채를 미로는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상징화한 것이다. 이것으로 미로가 안내하는 가우디를 함께 공감할 수 있으며 더불어 그 속에서 가우디는 새롭게 재조명된다.

다양한 양상으로 진화하는 오마주

현대미술에서 오마주의 몇몇 사례를 살펴보자. ‘멀티플 다이얼로그 展’에 출품된 강익중의 <삼라만상>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오마주하고 있다. 작품의 의미를 더욱 깊고 다양하 게 확장하는 동시에 회화와 비디오 설치 작품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한 공간에 놓았다. 사 실상 두 작품은 독립된 작품이지만, 이 전시에서는 두 작품이 결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 된다. 또한 양혜규의 <서울의 근성>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상징적으로 오마주한다. 거장의 예술작품 대신에 작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서울의 다층적인 단상들이 일상적인 소품들을 통 해서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형식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관객들의 공감과 소통을 이끌 어낸다는 점에서 오마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전시를 헌사함으로써 오마주하 는 경우도 있다. 바르부르크의 ‘아틀라스 므네모시네 프로젝트’를 오마주한 ‘New ghosts stories’와 같은 전시다. 비단 일부 예이지 만, 오마주는 시공을 초월해서 위대한 업적 을 찬양하고 거기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 려는 예술적인 행위로써, 다양한 방식을 활 용해서 과거의 거장을 새롭게 불러내거나 어떤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지금 전시 중인 ‘바르셀로나를 꿈 꾸다. 안토니 가우디 展’의 미로와 대구미 술관에서 전시 중인 오트마 회얼의 <뒤러 를 위한 오마주>도 물론 그러하다. 덧붙여 이미 오마주는 일정한 예술적 위상을 지니 며 나날이 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 일 그것이 문제될 때에는 특수한 경우이며 보편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글 이지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강) 사진 CCOC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9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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