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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클래식 음악으로도 청중의 열광을 끌어낼 수 있어요"

by예술의전당

테너 정호윤·소프라노 이명주 인터뷰

'2018 예술의전당 클래식 스타 시리즈' 7 . 1 2 ( 목 ) IBK챔버홀

"클래식 음악으로도 청중의 열광을 끌

© 주효상

두 사람을 무대에서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의 <한국 오페라 70주년 기념 오페라 갈라>였다. 한 사람은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바람둥이의 전형이자 리골레토를 비극 속으로 빠트리는 악역 ‘만토바 공작’을 연기했다. 보는 내내 저런 나쁜 인간이 또 있을까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그랬던 그가 20여 분 후 이어진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파리의 고급 사교계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던 ‘비올레타’를 사랑한 순수 청년 알프레도로 변신했다. 작품 속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를 짧은 시간 동안 연이어 만나면서 잠시 혼란에 빠졌다. ‘뭐가 진짜지?’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사람, 테너 정호윤이다. 그리고 ‘알프레도’를 끝없는 사랑에 빠트린 여자, 비올레타 역시 궁금했다. 어쩌면 저리 처절해질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하나뿐인 여자에게 세상은 어떻게 저리 외면만할까.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을 만든 또 다른 한 사람 소프라노 이명주였다. 서로 다른 베르디의 오페라 속 두 주인공을 보면서 잠시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

 

두 디바와 디보가 한 무대에서 같이 노래한다면? 꿈은 불과 며칠 만에 현실이 됐다.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2018 예술의전당 클래식 스타 시리즈>에 두 사람이 첫 주자로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이 한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모습은 과연 어떨까.

이들의 인생작, <리골레토> 그리고 <라 트라비아타>

테너 정호윤을 보자마자 시원하고 호탕한 상남자의 느낌을 받았다. <리골레토> 속 만토바 백작의 모습이 머릿속에 또 다시 그려졌다. 실제로 그랬다. 정호윤은 <리골레토>와 깊은 인연이 있다. 한국인 테너 중 최초로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인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오페라하우스 전속 가수로 무대에 섰다. 주연인 만토바 공작으로 말이다. “2006년에 우연히 비엔나에서 오디션을 봤어요. 한두 곡 정도만 부를 줄 알았는데 연속으로 여섯 곡을 시키더라고요. 왜 이러지 싶었죠. 극장장이 제 뇌 구성을 본 거예요. 원래는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로 그해 10월 데뷔할 줄 알았는데 한 달 빠른 9월 <리골레토> 만토바 공작이 맡겨졌어요. 그렇게 <리골레토>는 제 인생 작품이 됐습니다.” 함께 만난 소프라노 이명주 역시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라 트라비아타> 속 비올레타를 떠올리게 했다. 이명주는 자신을 성장시킨 작품을 꼽아달라는 말에 주저 없이 <라 트라비아타>라고 답했다. “한 여자의 인생을 긴 스펙트럼으로 보여주는 오페라예요. 극을 끌고 가는 비올레타가 화려한 사교계에서 시작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굴곡진 모습을 기교로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죠. 음악에 대한 공부도, 인생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그의 말과 달리 진짜 그를 있게 만든 것은 <라 보엠>의 ‘미미’ 역할이었다. <라 보엠>은 그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시절 동경예술대학와의 교류행사에서 선보였던 작품이다. 그 이후 독일 뮌헨음악대학에 진학할 당시 치른 입학시험도 이 역할로 합격했다. 묘한 인연이다. “제가 그 오페라를 고른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제 목소리를 듣고 미미와 잘 어울린다며 추천해주셨어요. 계속 부르다 보니 저 스스로도 미미와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미미가 된 거죠.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클래식 음악으로도 청중의 열광을 끌

Hoyoon Jung 정 호 윤 © 주효상

이들의 인생스승, 조수미 그리고 정명훈

세계적인 무대로 꼽히는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는 두 성악가의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 준 음악가는 누구였을까. 정호윤은 단번에 소프라노 ‘조수미’를 꼽았다. 그가 처음 조수미를 만난 것은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2001년 12월 31일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에서였다. “당시 많은 분들이 일개 성악과 학생과 조수미 선생님을 같은 무대에 세우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반대했죠. 하지만 선생님이 마다하지 않고 저와 무대에 오르겠다고 했어요. 전체 12곡 중 10곡을 함께 불렀죠.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능력치보다 더 잘했던 것 같아요. 범접할 수 없는 스타와 상상할 수 없는 무대에 섰으니 자신감도 생기고 확 발전했던 거죠. 그 공연 이후 조수미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다녔어요. 잊지 못합니다.”

 

이명주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언급했다. 그는 정명훈이 지휘했던 2008년 8월의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특별연주회>에서 또다시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 역으로 출연했다. “제 스타일이 절대 무대에서 떨지 않는 건데 평소 정명훈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그 위압감은 엄청났어요. 당시 뮌헨음악대학 재학 시절이었는데 그동안 많이 해봤던 역할이었는데도 떨려서 공연 전 악보를 수차례 들춰보고 공부했어요. 말씀이 없으신 걸로 유명한 분이었지만 틈틈이 주셨던 음악적 팁들은 지금도 놓치지 않고 있어요.”

 

최근 ‘소프라노 이명주’ 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세계적인 팝 밴드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과의 만남이다. 지난해 내한한 마틴은 공연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17 교향악축제>의 대구시립교향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이날 무대에 올랐던 사람이 바로 이명주였다. 공연 직후 마틴이 이명주를 직접 찾아왔고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마틴과 짧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클래식 음악의 광팬이더라고요. 제가 불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를 아냐고 물으니 그중 네 번째인 ‘저녁노을’을 그 자리에서 직접 부르더군요. 그러곤 제게 노래할 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워밍업은 어떻게 하는지,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엄청난 질문들을 던졌어요. 제 공연을 너무 감명 깊게 들었다며 바로 자기 내한공연에 초대를 해줬죠. 그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외국 팝가수 공연에 가보게 됐어요.” 그를 보면서 이명주는 ‘왜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는 저런 열광이 없을까. 과연 관객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하는 생각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예술적 경지에 다다른 음악으로 관객이 감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그렇다고 여느 성악가들처럼 일탈을 통해 대중과 좀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뮤지컬 같은 장르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한번 정도 꿈은 꿔봤고 대학 시절 시도도 해봤지만 제 길이 아니었어요. 그 분야에 있어선 저보다 더 뛰어난 분들이 있고 전 오페라 가수로서 제가 가진 성악적 장점을 발휘하고 최고를 보여주겠다는 사명이 있죠.”

"클래식 음악으로도 청중의 열광을 끌

Myungju Lee 이 명 주 © 주효상

“재미있는 오페라를 만들어야 대중화도 따라오겠죠”

정호윤은 오페라의 대중화에 대해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오페라를 대중화해야 한다는 말 대신 진짜 재밌는 오페라, 감동 있는 오페라를 만들면 관객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것이다. “멕시코 출신의 테너 비야손이라는 성악가가 있어요. 모든 공연을 자신의 마지막 노래인 듯 열창을 해요. 그래서인지 그의 공연은 티켓 값이 안 아깝죠. 오페라를 보고 즐겁고 재미있으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오거든요. 이분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없으면 모두 제 책임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선후배 사이지만, 학교에서 만난 적은 없다. 그랬던 그들은 타국에서 안면을 트고 친해졌다고 한다. 독일 뮌헨에 있는 이명주가 음악적으로 고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주저 없이 오스트리아에 있는 선배 정호윤에게 연락을 했다. 이명주는 “제가 신입생일 때 이미 정호윤 선배는 훨씬 높은 위치에 있었죠. 공교롭게도 오스트리아에서 만났다”며 “바로 옆 도시에 선배님이 계시니 역할에 대한 이야기, 극장장과의 관계 등에 대한 고민도 많이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 성사와 관련해 정호윤은 “2006년부터 만날 때마다 같이 공연하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12년 만에 이뤄졌다”며 “같이 공연하면 어떤 곡을 부를지에 대해 하도 많이 얘기를 해놔서 명주 씨와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곡들을 다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에서 오페라 <토스카>와 <라 보엠> 중 듀엣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 등을 선보인다. 과연 두 사람의 음악적 합은 어떨지 궁금했다. 정호윤은 “유럽에서 각종 콘서트는 많이 했지만 함께 무대에 서거나 같은 무대의 오페라에서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았다”며 “가끔 만나보면 우리 둘의 소리는 잘 맞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둘이서 한 무대를 끌고 가본 적은 없지만 우리 두 사람의 호흡이나 목소리 색이 섞였을 때 탁해지기보단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글 은정진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7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