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게 웃는 이 남자 마음은 울고 있다네

[컬처]by 예술의전당

대본·연출 로버트 요한슨 인터뷰

뮤지컬 <웃는 남자> 7.8(일) - 8.26 (일) 오페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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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 shin Park, Kanghyun Park, Suho

“와, 이건 완벽한 뮤지컬 스토리야!”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이 프랑스 영화 <웃는 남자>를 본 건, 2014년 국내에서 뮤지컬 <레베카>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빅토르 위고가 쓴 원작 소설도 몰랐고, 읽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운명처럼 그를 끌어당겼다. “캐릭터가 돌진하는 자동차처럼 마음을 파고들었어요. 정말 특별했죠. 무대로 옮겨진 모습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같았어요.” 미국 집에 도착해서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에게 전화를 했다. “프랭크, 이거 꼭 봐야 돼!” 이것이 7월 8일 개막하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시작이었다. 제작비 175억 원 규모의 대작이자,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는 올해의 유일한 대극장 창작뮤지컬이다. 연습이 한창인 5월 말, 로버트 요한슨을 만났다.

 

어떤 점이 그렇게 끌리던가?

 

뮤지컬에 딱 맞는 이야기였다. 인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 다른 대하소설과 달리 여섯 명의 주요 캐릭터가 단단하게 이야기를 붙잡고 있었다. 예측을 깨는 플롯 전개도 매력적이었고. 프랭크도 당장 영화를 몇 번 반복해 본 뒤 전화를 걸어왔다. “세상에 로버트, 영화 보며 머릿속으로 벌써 네 곡을 썼어!” 바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처음이지만, 미국에선 <위대한 유산>, <제인에어> 등의 뮤지컬과 연극 각색도 많이 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어릴 때 인신매매단에 납치돼 광대처럼 웃는 모양의 얼굴 기형을 강요당한 남자 ‘그윈플렌’, 그리고 그와 남매처럼 자란 여자 ‘데아’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간다. 사랑과 배신, 인간 존엄과 평등에 관해 말하는 격정적 서사다. 길게 찢어진 웃는 입을 가진 그윈플렌의 캐릭터는 1926년작 무성영화로 유명해져,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모티브가 됐다.

 

제작 결정도 안 났는데 대본부터 쓴 건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감동적이었다. 주인공이 강요된 얼굴 기형을 가진 남자라는 것부터 일반적 기대를 배반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편견을 작동시키는 상징이다. 사실 비극적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여주인공 데아는 앞을 보지 못해서 그윈플렌의 기괴한 외모가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만 본다. 남자는 여자의 눈이 돼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해준다. 독특하고 특별하다.

<지킬 앤 하이드> 프랭크 와일드혼 음악으로 얼굴 기형 남자와 눈 먼 여자의 사랑 그려

무척 거대한 이야기다.

 

시각적 스펙터클로 표현하기 좋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 속엔 대비되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부자의 세상도 엄청난 스펙터클이지만, 가난한 사람의 세상 역시 스펙터클만큼은 가난하지 않다. 가난해도 사람들은 비범하고, 카니발은 다채롭고 화려하다. <레미제라블>하고는 다르다. 방대한 원작 소설도 시대상에 관한 긴 설명 같은 부분을 덜어내니 이야기 자체는 훨씬 쫀쫀했다. 창작자로서 운신할 수 있는 폭도 넓었다.

 

로맨스와 사회 드라마 사이의 균형이 중요했을 텐데?

 

중심은 사랑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이 뮤지컬은 서로 사랑하는 그윈플렌과 데아, 그들을 어려서 거둬 기른 아버지적 존재 ‘우르수스’의 이야기다. 우르수스는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살아남는 것뿐’이라고 여긴다. 그 역시 그윈플렌, 데아와 함께 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혈연은 아니지만 서로 깊이 사랑하며 더불어 세상에 맞서 싸우는 세 사람은 분명 가족이다.

 

당시 영국이 현재의 세계와 묘하게 유사하다.

 

원작 소설에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 위에 세워진 것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소설을 쓸 때 위고는 공화정을 옹호하다 추방돼 영국으로 망명한 66세의 노인이었다. 야심찬 청년작가일 때 조국 프랑스에서 쓴 레미제라블에 비하면 이야기도 캐릭터도 더 깊이가 있다. 당시 영국은 400여 명의 고위 귀족이 모든 것을 통제했다. 권력과 부를 독점한 ‘1퍼센트’다. 주인공 그윈플렌은 부조리를 묵인하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려 한다. 가진 것을 나누고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세상은 보다 살 만해질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더 큰 공동선善을 추구할 책임이 있다.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부자와 빈자貧者의 대립. 이 두 가지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기괴하게 웃는 이 남자 마음은 울고

© 주효상

나누고 도우면 세상은 보다 살 만해질 것. 인간은 누구나 공동선 추구할 책임 있어

부자의 낙원과 빈자의 지옥이라니,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부자여서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 작품의 바탕엔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이들이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균열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세상엔 이미 필요한 것이 다 있는데, 서로 돕지 않는 탓에 굶주리고 고통 받는다면 그게 더 큰 비극 아닐까.

 

요즘은 배트맨처럼 선악이 모호한 반反영웅이 인기다. 선·악, 미·추, 지배·피지배 같은 대립구도는 좀 구식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윈플렌은 단순한 영웅, 평면적 ‘좋은 남자’가 아니다. 어리석고 흠도 많다. 유혹도 받는다. 데아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비웃지 않고 관심 가져준 귀족 여인 ‘조시아나’를 만나 불꽃이 튀듯 끌린다.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거다. ‘조시아나’ 역시 남자를 타락시키는 단순한 악녀가 아니다. 그윈플렌을 만나 새로운 운명을 찾으려 애쓰며 성숙해진다. 모든 캐릭터가 다층적이다. 순수 그 자체인 인물은 데아뿐이다.

 

그윈플렌은 얼굴이 괴물이고, 귀족들은 영혼이 괴물인 걸까?

 

그래서 그윈플렌의 무대 위 모습이 중요하다. 관객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흉측하면 안 된다. 어떤 비극을 겪어도 그는 항상 웃고 있다. 얼굴은 웃지만 내면은 우는 모습에 시대를 뛰어넘는 메타포가 있다. 정말 시적詩的이다. 그는 자신이 데아와 함께 있는 모습 조차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감춘다. 데아가 자기처럼 배척받고 소외당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선 이상적인 남성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다.

 

귀 기울일 만한 넘버가 있다면?

 

그윈플렌이 귀족들로 꽉 찬 영국 상원에서 부르는 ‘눈을 떠요 Open Your Eyes’는 최고다. 그는 귀족들이 눈을 떠서 세상을 바로 보길 원한다. 데아가 눈을 떠서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보면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무대 위 귀족들, 객석의 관객들에게 영혼을 쏟아붓듯 노래한다. 그 노래를 들으면 그윈플렌의 흉측한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뮤지컬이기 때문에 가능한 무대의 기적이다. 이곡을 부르는 마지막 장면을 처음 연습할 때, 배우도 스태프도 다 울었다. ‘그럴까Can It be’의 멜로디는 한 번 들으면 계속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또 ‘세상을 바꿔 Change the world’도 기대해달라.

 

주인공 그윈플렌 역을 맡은 세 배우의 장점을 꼽는다면?

 

박효신의 목소리는 경이로운 악기 같다. 다른 누구도 못 내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음역이 넓고 기교와 음악에 대한 이해도 대단하다. 요즘은 번역가와 의논해 영어 원어를 완벽한 한국어 표현으로 미세 조정하는 데 열심이다. 박강현은 신선하다. 캐릭터의 순결함을 가장 잘 전달한다. 아주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냥 캐릭터 자체가 돼버린다. 수호는 정직하다. 과장 없이 간결한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 관객을 어떻게 사로잡을지 아는 배우다. 여배우와 키스할 때면 정말 사랑에 빠진 듯 보인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은 「파리의 노트르담」, 「레미제라블」 모두 뮤지컬로도 흥행했다. 부담되진 않나?

 

부담도 된다. 최근에 그가 죽음을 앞두고 쓴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웃는 남자>가 ‘빅토르 위고 뮤지컬 삼부작’으로 불린다면 정말 환상적이겠다. 뮤지컬은 액션 영화처럼 관객을 새로운 세상 속으로 이끌어야 한다. 위고의 작품은 성공적 뮤지컬의 핵심 요소를 두루 갖췄다. 감명 깊은 이야기, 음악적 영감, 대하소설의 스케일, 두 시간 반 동안 관객의 혼을 사로잡을 특별함까지!

기괴하게 웃는 이 남자 마음은 울고

robert johanson 로버트요한슨 © 주효상

좋은 뮤지컬은 관객에 행복한 눈물을 선물하는 것 “언젠가 브로드웨이 관객도 펑펑 울릴게요”

언젠가 브로드웨이에도 갈 수 있을까?

 

물론! 이전에 함께 일했던 브로드웨이 유명 제작자에게 뮤지컬 흥행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좋은 뮤지컬은 언제나 관객을 울리는 거야. 뮤지컬을 보고 운 관객은 반드시 또 보러 와.” 사람들은 슬플 때뿐 아니라 행복할 때,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눈물 흘린다. <웃는 남자>를 보면 당신도 펑펑 울게 될 거다. 내가 보장한다, 하하.

글 이태훈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사진 EMK인터내셔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7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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