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희극도 비극도 아닌 달콤한 마법

[컬처]by 예술의전당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Vs 워터하우스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랑, 희극도 비극도 아닌 달콤한 마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917). 캔버스에 유채. 81 x 109 cm. 개인소장.

낭만주의 예술에는 종종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이나 ‘죽어서 비로소 이루어진 사랑’이 등장한다. 사랑의 속성인 불같은 열정이 어떻게 길고 지루한 결혼생활 내내 불타오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낭만주의자들은 두 연인의 결혼보다는 죽음이 더욱 찬란한 사랑의 완성이라고 믿었다. 낭만주의가 인기를 얻던 1800년대 내내 ‘연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저주받은 사랑’에 대한 찬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켈트족의 전설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명사 같은 이름이다.

 

기사 트리스탄은 삼촌인 콘월(Cornwall, 영국의 남서부 해안 지역) 왕 미르케의 사신으로 그의 정혼자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모시러 간다. 사실 남몰래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아일랜드에서 출발한 배가 콘월에 도착하기 직전, 같이 죽기로 결심하고 독약을 나누어 마신다. 그러나 이들이 마신 독약은 사랑의 감정을 더욱 불타오르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두 사람은 더욱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사랑, 희극도 비극도 아닌 달콤한 마

에드먼드 블레어 레이턴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902). 캔버스에 유채. 128 x 147 cm. 개인소장.

미르케 왕은 아내와 조카 사이의 석연찮은 감정을 눈치 채고 트리스탄을 추방한다. 트리스탄은 브르타뉴 공작의 딸과 결혼하지만 두고 온 연인을 도저히 잊지 못한다. 모험 끝에 독이 든 칼에 찔린 트리스탄은 자신의 상처를 낫게 해줄 유일한 사람인 이졸데를 데려오라며 배를 보낸다. 이졸데를 데려오는 데 성공하면 배에 흰 돛을, 실패하면 검은 돛을 달고 오라고 명령한 트리스탄은 애타게 그를 기다리지만, 수평선 너머로 검은 돛을 단 배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기진한 트리스탄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데, 그때서야 이졸데가 뛰어 들어와 그를 안는다. 배는 흰 돛을 달고 왔으나 질투심에 불탄 트리스탄의 아내가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이졸데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란히 묻힌 그들의 무덤에서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났다. 두 나무는 서로 엉켜서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떼어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이 낳은 예술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이 오페라를 작곡하던 당시 바그너는 친구 리스트의 딸이자 자신의 제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였던 코지마와 불륜 관계에 빠져 있었다. 말하자면 작품 속 비련의 두 연인은 그 자신과 코지마였던 셈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적 결말과는 달리, 바그너와 코지마는 24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1870년 결혼에 성공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초연된 1865년에 코지마는 바그너의 딸을 낳았는데 이 딸에게 바그너는 ‘이졸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만큼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보는 이의 시선을 대번에 사로잡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푸른 파도가 일렁거리는 바다 위, 갑옷을 입은 트리스탄과 금박이 박힌 우아한 망토를 걸친 이졸데가 황금빛 잔을 꼭 맞잡고 있다. 트리스탄의 등 뒤로는 점차 가까워지는 콘월 성의 모습이 보인다. 두 사람은 지금 독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기 직전이다. 트리스탄의 표정은 그늘져 있고 이졸데는 절박하고도 슬퍼 보이는 눈길로 그런 연인을 바라본다. 그녀의 뒤에 놓여 있는 화려한 의자는 그녀가 앉게 될, 그러나 원하지 않는 왕비의 자리를 상기시킨다. 두 사람이 발을 딛고 있는 뱃전에는 널빤지로 표시된 금이 있다. 이 널빤지 사이의 선은 두 사람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트리스탄은 한 발로 그 선을 밟고 서 있다. 이제 곧 그는 자신이 충성을 바치고 있는 미르케 왕을 배반하게 될 것이다.

사랑, 희극도 비극도 아닌 달콤한 마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샬롯의 처녀'(1888). 캔버스에 유채. 200 x 153 cm. 테이트브리튼갤러리, 런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라파엘전파의 영향을 받은 유미주의 화가다. 고대 그리스신화나 영국의 전설을 담은 그의 그림들에서는 고답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테니슨의 시 ‘샬롯의 처녀’나 「햄릿」의 오필리어를 그린 그림들이 워터하우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워터하우스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이때의 기억으로 전설이나 신화 같은 주제에 집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화가가 사망하기 1년 전에 완성한 작품이다.

 

워터하우스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주목할 점은 두 사람이 맞잡은 잔에 담긴 약을 독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졸데의 초록빛 망토 뒤로 탁자 위에 놓인 유리병이 보인다. 두 사람은 이 병의 약을 따라 잔에 담았을 것이다. 투명한 유리병에 반쯤 담긴 액체는 포도주빛을 띠고 있다. 어쩌면 이들이 마신 약은 독약도 미약도 아닌, 연인의 마음을 부드럽게 뒤흔드는 포도주가 아니었을까?

포도주일까? 사랑의 묘약일까?

사랑, 희극도 비극도 아닌 달콤한 마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의 '사랑의 묘약을 나눠 마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1862~1863). 유리에 채색. 브래드포드미술관, 브래드포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은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의 명랑한 희극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도 등장한다. 이 오페라에서는 정말로 포도주가 사랑의 묘약으로 둔갑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얼뜨기 시골 청년 네모리노는 마을에서 최고 인기 있는 아가씨 아디나를 사랑하지만, 아디나는 네모리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네모리노는 아디나가 동네 처녀들에게 읽어주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로 사랑의 묘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때마침 나타난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는 네모리노에게 자신이 사랑의 묘약을 판다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네모리노는 얼른 사랑의 묘약을 사는데 사실 그 약은 싸구려 포도주였다. 그러나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순진한 열정에 조금씩 끌리게 되고 마침내 거만한 장교 벨코레가 아닌 착한 청년 네모리노를 선택한다. 이 모든 변화가 사랑의 묘약 덕분이라고 굳게 믿는 네모리노의 환송을 받으며 약장수 둘카마라는 의기양양하게 마을을 떠난다.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을 즈음 탄생한 작품이다.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로시니가 1829년 30대 중반의 이른 나이로 은퇴를 선언한 후, 도니제티는 벨리니와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기를 이끄는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안나 볼레나> 같은 역사극을 주로 작곡했지만 도니제티의 강점은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 같은 명랑한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 오페라)에 있었다. <사랑의 묘약>을 불과 6주 만에 완성했다는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니제티는 비극보다 희극에 더 적합한 작곡가였다. <사랑의 묘약>은 1832년 로마 초연부터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고 1838년부터 1848년 사이 전 유럽 오페라극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공연된 오페라로 기록되어 있다. 도니제티는 <사랑의 묘약>의 성공에 힘입어 1835년에 심혈을 기울인 비극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내놓았지만 이 작품은 주역인 루치아 역할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이유로 초연 이후 170여 년이나 제대로 공연되지 못하는 비운의 오페라가 되고 말았다.

사랑, 희극도 비극도 아닌 달콤한 마

191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된 <사랑의 묘약>에 출연한 엔리코 카루소와 프리에다 헴펠.

<사랑의 묘약>은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부파로 손꼽히는데 여기에는 네모리노의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인기도 분명 한몫을 담당하고 있을 듯싶다. 바순과 하프의 서글픈 멜로디로 시작되는 이 아리아는 흔히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의 슬픈 심경을 담은 곡으로 여겨지지만 여기서 눈물을 흘리는 이는 네모리노가 아닌 아디나다. 도도하기만 했던 아디나가 몰래 흘리는 눈물을 보고 네모리노가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는 것이 이 아리아의 내용이다. 사실 이 아리아는 시종 떠들썩하게 진행되는 이 작품의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2막 후반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전주가 흘러나오면 청중은 일순 숨을 죽인다. 네모리노를 맡은 테너가 이 애절한 아리아를 어떻게 소화해내는가가 <사랑의 묘약> 공연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루소, 스테파노, 비욜링 같은 전설적인 명가수들을 비롯해서 롤란도 비야손, 로베르토 알라냐, 요나스 카우프만 등 최근의 테너들도 한결같이 이 아리아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네모리노의 순진무구한 열정과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애절한 아름다움을 최고로 표현한 테너는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황금의 목소리,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아닐까 싶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등장하는 사랑의 묘약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참 많은 사람들이 연인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애태웠다는 사실을 말하는 듯싶다. 그런 마법의 묘약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어떻게 피어나고 어떻게 사그라드는지 그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사랑 그 자체가 마법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의 묘약>은 가벼운 내용을 담은 희극이지만 여기에는 일말의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선의와 진정함이 느껴질 때 연인의 마음은 움직이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진실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함이 한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그때의 효력은 그 어떤 수단보다 더 강력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나눈, 그리고 네모리노가 사용한 마법의 약은 다름 아닌 ‘착한 마음씨’와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전원경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시티대학교 런던에서 예술경영 및 비평 전공으로 석사를, 글라스고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산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객석」과 「주간동아」 문화팀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 예술의 전당 인문아카데미와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예술과 역사,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수원SK아트리움의 마티네콘서트 <미술관 옆 음악당>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 「런던 미술관 산책」,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클림트」등의 책을 썼다.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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