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울림과 어울림 그 떨림과 설렘

[컬처]by 예술의전당

3.16(수), 3.30(수), 3.31(목) 콘서트홀 

 

우리나라에서는 새해가 되면 새로 시작하는 기분을 세 번 느끼는 것 같다. 1월 1일에 처음 한 해를 시작하고, 양력보다는 음력을 설로 쇠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인지 음력설에 덕담을 주고받으며 또 한 번 새해의 기분을 만끽하는 것이다. 3월 역시 시작의 의미가 강한 달이다. 겨울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3월은 사계절의 시작인 봄이며, 3월 2일은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에게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늘 우리를 설레게 한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변화를 꿈꾸며 희망을 품는 3월, 예술의전당에서는 눈여겨볼 만한 보컬의 향연이 세 차례나 열린다.

살아 있는 음악의 역사를 들려줄 성 토마스 합창단

목소리의 울림과 어울림 그 떨림과 설

성 토마스 합창단 THOMANERCHOR LEIPZIG

봄의 시작과 함께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면 3월 16일 오후 7시 30분에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바흐 <마태수난곡>을 권하고 싶다.

 

2012년 내한공연 때도 프리뷰를 썼는데 4년 만에 다시 이들을 소개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 사이에 칸토르(합창장 또는 음악감독)가 바뀌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고톨트 슈바르츠는 작년에 취임한 17대 토마스 칸토르이다. 그는 지휘자, 성악가, 오르가니스트로서 오랫동안 성 토마스 합창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성 토마스 합창단의 칸토르는 바흐가 26년 동안 실제로 일한 자리이다. 바흐는 매주 미사에 필요한 작품을 작곡하고 합창단원을 훈련했으며 미사 때는 지휘를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때 무리를 해서인지 1750년 그의 눈에 문제가 생겼고, 여러 차례 수술을 했지만 결국 시력을 잃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성 토마스 교회에 묻혔다.

 

바흐가 칸토르로 취임한 지 7년째인 1729년에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한 <마태수난곡>은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난 1829년 3월, 약관의 멘델스존에 의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시 연주되었다. 그러니까 성 토마스 합창단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단체이다.

 

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마태수난곡>은 목소리의 울림과 어울림을 매우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해설가이자 화자로 등장하는 복음사가는 맑고 또렷한 테너로 레치타티보를 들려주며, 예수를 맡은 베이스는 저음으로 비통함을 표현한다. 이 밖에 여러 등장인물이 때로는 솔로로 때로는 중창으로 노래하는데, 독주 바이올린과 콘트랄토(또는 메조소프라노)가 연주하는 ‘erbarme dich’ 같은 곡은 기악과 성악의 또 다른 울림과 어울림을 선사한다.

 

독창자들의 솔로나 중창에서 목소리의 섬세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면 합창에서는 웅장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바흐는 이 합창을 두 개로 쪼개 양쪽으로 배치했다. 이런 구성은 일종의 스테레오 효과를 증폭시킨다. 합창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혼성 4부로 울림의 어울림을 선사하면서도 코랄에서는 멜로디의 울림 자체를 그대로 밀어붙인다.

 

수난을 뜻하는 ‘passion’은 ‘열정’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예수는 죄 많은 중생衆生들에게 사랑을 열정적으로 실천하느라 수난을 겪은 것 아닐까? 한편, 평생을 성실하게 작곡과 연주와 음악교육에 매진한 바흐가 겪었을 인간적 고뇌는 어느 정도였을까? 바흐는 더 좋은 환경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음악 활동을 하고자 끊임없이 모색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좋은 대우를 해줄 것 같은 왕족과 귀족에게 편지를 쓰고 작품을 헌정하고 직접 찾아가 연주도 했다. 그러나 바흐는 어떤 경우에도 현실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이라는 발판에서 더 나은 것을 모색하는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깊은 신앙심은 고뇌를 이겨내고 열정을 다해 음악에 헌신하게 한 다른 축이기도 했다. <마태수난곡>을 통해 바흐 내면의 울림까지 느껴보고 싶다.

생기 넘치는 소년합창단들의 첫 내한공연

성 토마스 합창단이 노래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차분하고 성찰적이라면, 3월의 끄트머리에서 만나게 될 두 합창 공연은 신선하고 생기 넘친다. 두 합창단은 모두 소년합창단이다. 보통 소년합창단 하면 빈 소년합창단을 많이들 떠올릴 것이다. 어린이합창단으로는 지금은 자주 볼 수 없지만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하던 리틀엔젤스도 생각난다.

 

합창의 역사에서 여성은 늘 소외된 존재였다. 유럽에서는 미사에서 여성이 노래 부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17-18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는 오스페달레ospedale라는 고아원 및 교육기관 기능을 하는 자선단체가 있었다. 오스페달레는 영어의 ‘hospital’과 비슷하다. 전근대 유럽에서 병원은 치료기관이라기보다는 감금기관의 성격이 강했다.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는 고아 여학생들이 악기를 다루고 합창을 했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실제로 안토니오 비발디는 피에타 오스페달레에서 30년 이상을 악장으로 봉직했다. 규모가 큰 오스페달레 합창단은 여성만으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4성부 합창까지 했다고 한다. 안나 크라모나라는 여성 베이스 단원은 당시 명성이 아주 높았는데, 그녀의 죽음에 관한 기록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과거에 여성이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한 이유에서 종교적인 부분을 빼면 우리가 현재 소년합창단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유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변성기 전 소년의 목소리와 여성의 목소리는 음역에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고음역에서 떨림이 강한 성인 여성의 목소리보다는 상대적으로 맑게 소리 나는 소년의 목소리가 투명한 울림을 빚어내는 데 더 적합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위적으로 변성기를 막는 카스트라토가 존재했던 데에도 이러한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풍부하게 울려 퍼지는 여성 소프라노가 독창에서 빛을 발한다면, 비브라토 없이 곧게 뻗는 소년의 고음은 중창과 합창에서 여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다.

목소리의 울림과 어울림 그 떨림과 설

뮌헨 소년합창단 MÜNCHNER KNABENCHOR

3월 30일 오후 8시에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하는 뮌헨 소년합창단과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는 리베라 소년합창단의 연주는 활력 충전과 정화淨化라는 키워드로 접근하고 싶다.

 

두 합창단은 신생 연주단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리베라 소년합창단은 기존 성 필립스 교회에서 활동하던 합창단을 ‘리베라’라는 이름으로 1999년 재창단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뮌헨 소년합창단은 2011년에 창단했다. 새로운 기운으로 성장하는 신생 단체들의 싱그러운 연주 또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뮌헨 소년합창단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인 랄프 루드비흐의 카리스마는 짧은 기간 동안 이 합창단이 정상급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어려서 퇼처 소년합창단에서 활동한 그는 성악과 지휘는 물론 가창 음성학 및 언어장애 병리사 학위까지 취득했으며, 퇼처 소년합창단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뮌헨 시는 소년합창단을 창단하며 루드비흐를 초빙했다. 뮌헨 소년합창단은 뮌헨 시의 풍요로운 지원과 랄프 루드비흐의 능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기대되는 연주단체이다. 이번 첫 내한공연에서는 비발디와 베르디, 카치니, 프랑크와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클래식 레퍼토리와 함께 마이클 잭슨, 퀸, 비틀스, 아바의 팝 음악과 더불어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 등을 두루 선보인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을 소년들의 맑은 목소리로 들으면 무척 새로울 것이다.

목소리의 울림과 어울림 그 떨림과 설

리베라 소년합창단 LIBERA BOYS CHOIR

리베라 소년합창단은 단체 이름인 ‘리베라(자유)’가 상징하듯이 형식과 장르, 무대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적 잠재력을 무대에서 표출하고 있다. 리베라는 특히 대표곡들을 고음역으로 편곡하여 노래하는데, 이렇게 하면 연주의 난도가 높아진다는 부담을 가지는 대신 개성 강한 목소리로 청중의 몰입도를 강하게 해 감동의 진폭을 고조시켜주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고 한다.

 

리베라 소년합창단의 연주가 유명 CF와 영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건 고음역에서도 깨끗하고 투명하게 뻗어 나가는 빛과 같은 울림의 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하는 대중적 인기도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화려한 조명과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영상으로 구현한 멀티미디어식의 콘서트 무대, 치밀하게 연출된 합창 대형과 안무 등은 청중들을 무대로 집중시켜 큰 감동을 주리라 기대한다.

 

인간의 목소리가 울리고 또 그 울림이 어울려 그걸 듣는 인간은 떨리고 설렌다. 3월에, 합창음악과 함께 봄이 온다.

 

글 김인겸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빈체로, 브라보컴, 서울예술기획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3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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