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컬처]by 예술의전당

3.1운동은 거대한 퍼포먼스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공원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비록 일제의 냉혹한 진압으로 실패했으나 전국을 넘어 해외로 퍼진 만세운동의 물결은 우리 민족에게 애국·항일 정신을 드높였다.

 

공연예술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퍼포먼스로 관객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펼쳐지는 공연들은 이러한 정신의 엔진을 마음껏 장착한다. 공연예술의 중심지인 예술의전당에서는 합창,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100년 전 그날의 기운과 독립·애국·승화 정신을 더욱 뜨겁게 전할 예정이다.

세계와 공유하는 우리 민족의 흥과 신명

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국립합창단 기획 제99주년 3.1절 기념공연 '한국의 혼'

국립합창단이 3월 3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치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창작칸타타 <동방의 빛>은 3.1운동이 뼈아픈 역사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매년 빌린 극장이나 교회당을 태극기와 만국기로 꾸미고 군악대를 초청해 독립군가와 애국가를 부르며 3.1절을 경축했다. 식이 끝나면 농악대를 앞세우고 퍼레이드와 함께 연희·공연·폭죽놀이까지 벌였다고 한다.

 

창작칸타타 <동방의 빛>은 우리 민족의 탄생을 표현한 1부 건(建), 한국인의 정신을 표현한 2부 혼(魂), 자주독립을 축하하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는 3부 판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인 단군세기를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색채로 풀어냈고 2부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흥(興), 한(恨), 기(氣), 정(情), 비(悲) 다섯 가지로 소개한다. 3부의 주제 ‘판’은 순수 우리말로 ‘구경꾼들이 보는 가운데 여러 가지 놀이가 벌어지는 마당’을 가리키며, 우리 민족의 흥겨운 노래들을 통해 3.1절이 축제의 날임을 노래한다. 시작곡 ‘함성’에서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합창이 이어져 청중에게 감동을 전할 것이다.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흥과 신명을 세계와 공유하기 위한 구성이다.

 

창작칸타타 <동방의 빛>은 작가 탁계석이 대본을, 작곡가 오병희가 곡을 썼다. 서양 관현악을 기본으로 하되 국악기와 소리꾼의 목소리 등 우리 민요의 선율을 모티브로 한국적인 색채를 더했다. 여기에 내레이션과 어린이 합창이 더해진다. 윤의중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들고 시흥시립합창단, 안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뮤지컬로 만나는 윤동주와 안중근

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촌 송몽규를 본 뒤 반가움, 안도감, 그리움, 두려움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오열하는 장면.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동주는 마치 달이 차오르듯 감정의 부피를 키우더니 이 장면에서 모든 것을 내지르듯 폭발시켰다. 서울예술단이 3월 5~17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선보이는 <윤동주, 달을 쏘다.>는 비극의 역사에 맞서 고뇌하던 시인 윤동주와 뜨거웠던 청년들의 이야기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유려한 시어를 사용해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편들을 남긴 ‘서시’의 시인이다. 이런 윤동주를 내세운 <윤동주, 달을 쏘다.>는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2012년 초연부터 2013년과 2016년 공연까지 관객과 평단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지난 2017년 공연은 객석점유율 100%를 찍었다. 대사로 절묘하게 옮긴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독백을 비롯해 윤동주가 형무소에서 의문의 주사를 맞고 쓰러져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환상 장면을 거쳐 마지막 넘버 ‘달을 쏘다’를 부르는 부분까지 15분 가량 힘겨운 감정 신을 이어가니, 관객들이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이번 다섯 번째 시즌의 윤동주는 초연부터 4번의 공연 모두 이 역을 맡아 ‘윤동주 장인’으로 불리는 배우 박영수가 다시 한번 연기한다. 서울예술단 신예 신상언도 윤동주를 연기한다. 윤동주와 청춘을 함께한 친구들 송몽규 역과 강처중 역에는 박영수와 함께 서울예술단의 ‘슈또풍’ 삼총사로 불리는 김도빈·조풍래가 각각 캐스팅됐다.

3.1운동의 정신을 소개하는 무대들

뮤지컬 '영웅'

올해 10주년을 맞은 대표 창작 뮤지컬 <영웅>은 7월 28일부터 8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영웅>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이다.

 

안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조명해 조국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면모와 운명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으며, 2009년 10월 26일 초연 이래 작품성과 흥행성을 검증받았다. 특히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감옥에 갇혀서도 동양평화를 고민한 안중근의 모습은 울림을 안긴다.

 

‘그날을 기약하며’, ‘오늘의 이 함성이’ 등 국산 창작 뮤지컬 중 손에 꼽히는 넘버는 감동을 더 한다. 특히 <영웅>의 하이라이트인 ‘누가 죄인인가’가 빛을 발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사과하면서도 그를 살해할 수밖에 없던 15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하는 장면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안중근 의사의 진심은 관객들을 무대 위뿐만 아니라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오페라로 생각해 보는 3.1운동의 정신

국립오페라단은 두 편의 오페라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린다. 우선 로시니의 <윌리엄 텔>이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한다.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선구자인 로시니의 <윌리엄 텔>은 13세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스위스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탕이다. 독일 극작가 겸 시인 실러의 「빌헬름 텔」이 원작으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신뢰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윌리엄 텔의 사과’ 등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대항하는 스위스 민중의 저항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저항하던 3.1운동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관객들의 심장을 절로 두근거리게 만든다.

 

1829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지 190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는 <윌리엄 텔>은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유려한 선율과 고난도 기교가 필요한 벨칸토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음악이 주는 감동 역시 크다. 무엇보다 강요셉이 주역인 아놀드를 맡아 눈길을 끈다. 이 역은 테너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인 하이 C가 20번 이상 나오는 등 난도가 높으며,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테너의 캐스팅이 어려워 자주 공연하기 힘든 작품 중 하나다. 강요셉은 아놀드 역으로 2016년 오스트리아 음악극장시상식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는 등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아놀드 역 섭외 0순위로 통한다. 아울러 이번 공연은 합창단, 오케스트라, 무용단 등 출연진만 250여 명에 달하는 대작이다. 지난 2018년 국립오페라단 <마농>으로 호평을 들은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 지휘하고,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서 카라얀의 <발퀴레>를 재연출한 베라 네미로바가 연출을 맡는다.

 

이어 국립오페라단은 9월 27~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창작 오페라 <1945>를 선보일 예정이다. 2017년 국립극단이 선보인 배삼식 원작의 연극을 오페라로 재탄생시켰다. 연극·뮤지컬·창극을 오가는 스타 연출가 고선웅이 연출을 맡고, 작곡가 최우정이 곡을 만든다. 지휘에는 정치용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나선다.

 

연극의 배경은 1945년 광복 직후의 만주다. 이곳에 살다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에 머물며 기차를 타고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조선 사람들은 광복으로 이른바 다시 ‘영점지대’가 된 그 시대의 혼란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일제강점기는 그 누구도 원죄에서 피해 갈 수 없게 만들었다. 위안소를 탈출한 ‘명숙’ 그리고 그녀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미즈코’뿐만 아니라 명숙과 미즈코를 위안소에서 괴롭힌 포주이지만 서글서글한 ‘장수봉’과 착하게 새 삶을 꿈꾸는 ‘선녀’, 생각 속에서는 실행력이 넘치는 지식을 지녔지만 중요한 일 앞에서는 우유부단한 ‘구원창’ 등 극중 인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올가미에 걸려 있고 선함과 악함을 시시때때로 오간다.

 

결국 관객은 이런 양면적인 캐릭터 앞에서 섣부른 가치 판단을 하기 전에 망설이거나 머뭇거리게 된다. 이처럼 관객이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는 점은 작품 자체와 그 시대, 나아가 광복 전후와 다를 것 없는 ‘지금’에 대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음악이 깃든 오페라는 이 이야기에 좀 더 입체감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사진 국립합창단, 서울예술단, 에이콤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3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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