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에 간 추사, 북경에서 만나다

[컬처]by 예술의전당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秋史金正喜与清朝文人的对话>

6.18(화)-8.23(금) 중국미술관

"내가 완당(阮堂) 김정희를 폴 세잔에 비교한 것은 그의 글씨를 대할 때마다 큐비즘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세잔의 회화는 그렸다기보다는 축조했다 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완당이 일반의 통념을 완전히 벗어나 작자(作字)와 획을 해체하여 극히 높은 경지에서 재구성하는 태도며 공간을 처리하는 예술적 구성이며 하는 것은 그의 탁월한 지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 한국 현대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1915~1982)

중국미술관에서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

24세가 되던 1809년, 생원시(生員試) 에 초시입격(初試入格)한 추사 김정희(이하 추사)는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동지겸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인 아버지 김노경을 수행하여 12월에 연경(燕京)에 도착한다. 연경은 베이징(北京)의 옛 이름이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청동기나 비석에 새겨진 문자로 실증적인 고전 연구를 하는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이 유행했고, 이런 실사구시의 정신은 성리학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조선 문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추사는 약 2개월간 연경에 머물면서 여러 문인들과 직접 교류하며 학문적 소통과 업적을 쌓게 된다. 특히 청나라 석학인 담계(覃溪) 옹방강(1733~1818)과 운대(芸臺) 완원(1764~1849)을 스승으로 모시고, 귀국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업연구에 지도를 받았다. 청나라 금석학을 조선 금석학에 반영하여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낸 추사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이를 토대로 독보적인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하여 학자이자 예술가로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다.

서화작품을 통한 한중 예술 교류

예술의전당과 중국미술관은 '한중 예술 교류 협력 프로젝트'의 두 번째로 지난 6월 18일에 개막한〈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를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2018년에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렸던 중국미술관 소장 걸작〈같고도 다른 : 치바이스와 대화〉에 이은 것이다. 19세기에 추사 김정희와 청나라 문인들의 실질적인 학문과 예술교류가 그러했듯, 21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과 중국이 여전히 교류의 장을 지속하고 있음을 그들의 서화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 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정벽후손가, 그리고 개인 등 총 30여 곳에서 출품된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들과 청대문인들의 글씨, 연구자료, 편지 등 1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학문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학예일치(學藝一致)', 유불선(儒佛仙)을 아우르는 '해동통유(海東通儒)', 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름을 보여주는 '유희삼매(遊戱三昧)' 등 총 세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막식에는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과 중국미술관 우웨이산(吳爲山) 관장의 인사말, 장하성 주중대한민국대사와 권창륜 원로서예가의 축사가 있었고,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한재혁 주중한국문화원장, 김일용 중앙미술학원(中央美术学院) 교수, 친즈강(覃志剛) 중국문화예술연합회(中國文联原) 부주석, 최정화 예술가, 안상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장 등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설명되어 있는 이번 전시는 8월 23일까지 선보이며, 내년 2020년에는 한국에서도 전시를 열 계획이다.


글 이소연 예술의전당 서예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8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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