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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새로운 음악적 지향과 감각적인 지성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by예술의전당

12.4(일) 오후 5시, 12.5(월) 오후 8시 콘서트홀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

마리스 얀손스 MARISS JANSONS / © Peter Meisel BR

2014년 11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들뜬 분위기였다. 2012년에도 같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내한했고,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은 관객들의 기대와 록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한국 팬들의 환호를 익히 아는 연주자들의 기대가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설렘의 하이라이트는 지휘자일 것이다. 마에스트로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마에스트로의 등장과 함께 박수뿐 아니라 함성까지 터져 나왔다. 이미 관객들은 잠시 뒤의 연주가 가져다줄 감격을 직감하고 있었다. 지휘봉을 들기 전 단원들에게 보내는 마리스 얀손스의 미소. 연주 직전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완화하는 그만의 방법이다. 지휘자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무언의 위압감을 받는 다른 공연들과 달리, 푸근한 얀손스의 인상은 관객들이 편안하게 연주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얀손스의 눈매는 날카로워지고 그의 압도적인 에너지가 콘서트홀 전체를 덮었다. 그리고 2016년 12월, 우리는 그때의 감동을 다시 기다리고 있다.

포용과 리더십의 결정체, 마리스 얀손스

한 음악평론가는 자신의 칼럼에 이렇게 썼다. 1997년 게오르그 솔티의 타계 이후 거장의 시대는 끝났다고. 묵직한 인상을 주는 카라얀과 번스타인, 클라이버 등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던 이들의 서거 이후 세계 지휘계의 판도가 바뀐 것만은 분명하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통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쏟아내던 시대는 지났다. 2000년대 이후의 지휘자들은 단원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견해를 강요하기보다는 설득하고 타협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관객들이 원하는 지휘자의 카리스마를 과감하게 보여줄 능력도 갖춰야 했다. 그 모든 것을 이루어낸 지휘자만이 ‘대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깐깐해진 현대의 음악 애호가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휘자를 꼽자면, 단연 마리스 얀손스가 아닐까 한다.

 

마리스 얀손스는 1943년 라트비아 공화국 리가에서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토양은 러시아라고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운 마리스 얀손스는 레닌그라드 콘서바토리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음악적인 대결 구도로 볼 때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스타일이나 음악을 다루는 태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러시아의 색깔을 고스란히 지닌 오랜 역사의 모스크바와는 달리, 레닌그라드는 서유럽을 모방하고 러시아와 유럽의 가교 역할을 위해 탄생한 역사가 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와 서유럽의 스타일이 잘 융합되어 자신들만의 독특한 예술적 어법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얀손스가 그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얀손스의 음악에는 러시아적인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서유럽의 섬세하면서도 반짝거리는 음색들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만족감이 있다. 또한 러시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와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대의 한스 스바로프스키 그리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이르는 대가들의 가르침을 통해 틀에 박히지 않은 포용성 있는 음악을 보여주는 것이 얀손스의 특징이다.

 

그래서일까. 마리스 얀손스가 오케스트라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가 어떤 지휘자인지 알 수 있다. 동유럽과 서유럽을 아우르는 그의 지휘 스타일은 강제성보다는 친절한 리드에 있다. 평소 그를 자주 인터뷰하는 기자들에 따르면 숨 막히는 엄숙함을 주는 다른 지휘자들과는 달리, 얀손스는 자주 웃어주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지휘자의 성향이 고스란히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관계로 나타나고 심지어 개인의 지휘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카리스마는 독재적인 것이 아니에요.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도 친근함을 줄 수 있죠. 강력한 리더십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저는 친근함이 있는 카리스마를 추구하는 편이죠. 그리고 그것은 음악에도 간접적으로 반영이 되겠죠.”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지휘자들은 젊은 시절 아카데믹했던 자신의 지휘에 변화를 주고 고유한 지휘법을 구사한다. 추구하는 음악을 더욱 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딱딱 떨어지는 보기 좋은 지휘보다는 전체 흐름을 위한 비팅이 모호한 지휘를 보여주기도 한다. 보통 이런 지휘는 아직 그 지휘자에게 익숙해지지 못한 연주자들을 피곤하게 만들곤 한다. 심지어 ‘지휘자가 단원들에 대한 배려 없이 독단적이다’라는 비난까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마리스 얀손스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13년을 함께했지만, 항상 박이 떨어지는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지휘해준다. 유연한 진행을 필요로 하는 느린 악장에서조차도 그의 비팅은 정확하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마리스 얀손스라는 사람은 굉장히 친절한 지휘자인 것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어떻게 지휘하든 너희는 날 따라와야 해’가 아니라 ‘당신이 갈 방향을 정확히 안내할 테니 절 믿고 따라오세요’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음악적 뉘앙스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그의 지휘는 어느 연주자에게나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음악을 듣는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

혼연일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콤비, 우리는 음악으로 말한다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하 BRSO)의 역사는 그 명성에 비해서 짧은 편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같은 오케스트라가 더욱 익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음악계에서 BRSO의 위치는 이미 최고 수준이다.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주관하는 세계 오케스트라 평가에서 항상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고,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이 보여주지 못하는 남독일 특유의 음색을 보여주기도 한다. BRSO는 뮌헨에 본거지를 둔 바이에른 방송국Bayerischen Rundfunk의 전속 오케스트라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각지에서 방송교향악단 설립이 붐처럼 일었고, BRSO는 1949년에 설립되었다. 초대 지휘자는 바이에른 출신의 오이겐 요훔으로, 그의 장인정신이 깃든 노력으로 짧은 시간 안에 상당히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요훔의 체계 아래에서 BRSO는 독일의 고전과 낭만을 어느 오케스트라보다 깊게 파고들었으며, 현대음악에 대한 집요한 탐구까지 보여주며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요훔 이후에는 체코 출신의 라파엘 쿠벨릭을 영입함으로써 악단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기존의 레퍼토리를 유지하면서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마르티누 등 동유럽 작품들을 BRSO의 레퍼토리에 추가시켰다. 그리고 쿠벨릭과 함께 악단 최초의 전집을 출반하게 되는데, 바로 말러 전집이다. 이 전집으로 인해 구스타프 말러는 세계 음악계에서 재평가받게 되었고,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 작곡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쿠벨릭이 사임한 후에는 콜린 데이비스, 로린 마젤 등이 수석지휘자로 BRSO를 이끌었다. 그리고 2003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마리스 얀손스와 함께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고 있다.

 

마리스 얀손스와 BRSO의 관계는 역대 지휘자 중에서도 가장 미래지향적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레퍼토리의 접근과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를 위한 미디어와 영상의 활용이 예전보다 더욱 많아졌다. 인터넷이나 티브이를 통한 대중들과의 만남이 잦아졌고, 무게감 있는 공연뿐만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연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결과들은 얀손스 개인이 가진 철학과도 연결된다. 얀손스는 클래식 음악교육의 필요성을 늘 강조해왔고, 그의 취임 이후 BRSO는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회나 리허설 참관, 학교로 찾아가는 연주회 등을 부쩍 늘렸다. 이것은 얀손스가 느끼는 클래식 음악의 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모적인 문화상품들에 치중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이 클래식이나 전통예술에 대한 외면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을 많이 접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음악가들은 클래식을 좀더 쉽게 대중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 결과적으로 예술가의 위상을 올리는 일입니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의 열린 생각은 BRSO와 잘 절충되었고, 이들은 매해 뛰어난 연주력과 호흡으로 멋진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그들이 2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아 자신들의 결정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는 것이다. 이번 내한공연의 레퍼토리 역시 돋보인다. 먼저 마리스 얀손스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소개해본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적 토양은 러시아이지만, 그는 당대 각 나라 작곡가들의 다양한 음악적 어법들을 모아 ‘불새’에 적용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스크랴빈, 드뷔시, 라벨에게서 볼 수 있는 당대 고도의 음악적 기술들이 모여있고, 서구식 어법과 민속음악, 발레의 결합을 통해 장르를 넘어선 세계음악으로의 진입을 보여주는 곡이다. 그 곡을 마리스 얀손스의 지휘로 경험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스트라빈스키가 태어나서 공부한 곳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이고, 둘 다 러시아를 떠나 각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주목을 받으며 활동했다는 점에서 스트라빈스키와 얀손스의 행보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얀손스가 지휘하는 ‘불새’에 기대가 더욱 큰 이유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또한 얀손스와 BRSO에게 특별하다. 슈트라우스의 고향이 BRSO의 거점인 뮌헨인 데다, 알프스 교향곡을 작곡한 곳이 뮌헨 근처에 있는 그의 개인 산장이기 때문이다. 또 열네 살의 슈트라우스가 뮌헨 근처의 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고 헤맨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곡인 만큼, 뮌헨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해석해볼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음악이라는 예술이 공교롭게도 작곡가가 살던 곳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을 생각하면, 얀손스와 BRSO의 이번 알프스 교향곡 연주 또한 기대해볼 만하다. 하이든 교향곡 100번 ‘군대’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마리스 얀손스의 주요 레퍼토리가 바로 하이든 교향곡이다. 특히 하이든의 두 번째 ‘런던 교향곡 세트’로 일컬어지는 99번부터 104번까지의 런던 교향곡은 얀손스의 주특기로 유명하다. BRSO와의 하이든은 세련되면서도 감각적인 연주를 선보임으로써, 현대적인 해석이 가미된 하이든이 어떤 식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

길 샤함 GIL SHAHAM / © Luke Ratray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한국의 클래식 팬들에게도 익숙한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이 협연한다. 굳이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그의 실력은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바다. 어릴 적부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던 그는 지금까지도 뛰어난 표현력과 비르투오소적인 테크닉을 동시에 보여주며 자신의 건재를 입증하고 있다. 그런 길 샤함이 이번 내한에서 선택한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수십 장이 넘는 음반을 녹음한 길 샤함이지만,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녹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길 샤함이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기 위해서는 이번 연주회가 필수 코스라는 뜻이기도 하다. 거기에 마리스 얀손스와 BRSO의 연주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무대의 가치는 더욱 커지는 듯하다.

 

마리스 얀손스의 스승인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말했다. 강력한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음악은 죽은 음악이라고. 얀손스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강렬함만이 아니라 극한의 서정성에서도 그런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휘자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휘봉을 드는 얀손스와 그의 지휘봉 끝에 자신들의 악기를 내맡기며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완벽한 연주를 보여줄 거라는 기대를 넘어 2016년에 느끼는 감동 중 최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

 

글 안두현 (지휘자, 음악 해설가,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빈체로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