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성폭력이 "초등생 장난"?…취재기자도 당황한 교육기관의 답변

[이슈]by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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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중요 신체 부위'를 보여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지난 15일, 강원도의 한 초등학생 6학년 여학생 A 양의 휴대폰에는 하루 종일 카카오톡 알람이 울렸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남학생으로부터 온 메시지, 신체 부위를 보여달라는 집요한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이 남학생은 심지어 본인의 신체 부위를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A 양은 이날 저녁 담임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알고 보니, 동급생 B 군이 다른 학생의 아이디를 도용해 A양을 포함한 3명의 여학생들에게 문제의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 양 어머니가 이 사실을 자세히 알게 된 건, 가해 아동으로 지목된 B 군 부모님의 연락을 받고 난 후입니다. 그전에 학교로부터 연락은 받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아이가 동급생에게 성적인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고 학교폭력위원회가 곧 열릴 것이라 안내했던 겁니다. 가해 아동의 부모님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지 A 양이 누구에게 메시지를 받은 건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모르고 있었던 A 양의 어머니. 그 누구도 A 양의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지, 아이는 어떻게 정신적 상담을 받으면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학교는 물론 교육지원청까지 전화를 해 관련 내용을 물어봐도 '담당자가 출장을 가셨다'라는 말만 이틀 내리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상담센터에서는 'A 양이 씩씩해서 문제가 없다'라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상태는 악화됐다고 합니다. A 양은 엘리베이터에 낯선 남성과 단둘이 있으면 극도의 불안을 호소했고, 출석까지 거부했습니다. 내 아이를 어떻게 정상 궤도에 올려놔야 할지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초등생의 장난일 뿐, 성폭력은 아니다? 교육기관의 황당한 대응

해당 학교와 교육지원청을 찾아가 취재 요청을 하자 제게 돌아온 답변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성희롱도 성폭력도 아닌, 초등생의 장난일 뿐"이라는 겁니다. 순간 잘못 들은 건가,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이번 기회가 A 양과 A 양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을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며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성폭력 예방에 대한 교육계의 문제의식이 높아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일선 교육 현장에서 '성폭력'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안일한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교육지원청에서는 A 양의 신고 접수 후 5일이 지나서야 전문 상담 기관의 존재에 대해서 안내했습니다. 강원도 교육감이 지정한 전문 기관을 통하면 국가 지원을 받아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말입니다. A 양의 어머니는 그 5일 동안 악화되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인터넷 검색과 지인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사설 전문 상담 기관의 비싼 상담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청 측에서는 5일 사이에 주말이 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빠른 대처였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교 내 성희롱,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보호자와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피해 학생 및 보호자가 요구할 경우 외부 전문 기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학교를 비롯한 교육 기관에서는 "매뉴얼대로 절차를 밟았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서 문제 되는 점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네, 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학교는 가해 아동을 긴급 출석 정지 처분했고, 신고 접수 다음 날 48시간 이내에 교육청 보고 및 경찰서 신고까지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매뉴얼'에는 성폭력 사안의 경우 피해자 중심으로 사안이 처리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정말 '매뉴얼'에 맞게 피해자 중심으로 이 사건이 처리된 걸까요? 오히려, 피해 아동 A 양과 어머니를 소외시킨 채, 절차에만 집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늘어만 가는 초등학생 성폭력…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와 교육청은 '초등생의 장난'이라고 했지만 원치 않는 성적 메시지를 보낸 것은 엄연한 '성폭력'입니다. 이렇게 아이들 성장이 빨라지고 인터넷 사이트, SNS를 통해 음란물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 속에서 호기심과 뒤섞인 성폭력 사례도 점점 늘고 있는데요. 최근 5년 새 초등학교 성폭력 건수는 7배, 피해 학생 수는 9배나 늘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보신 것처럼, 정작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자들의 대처는 아직도 아이들 성 문제라면 쉬쉬하던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도 시대와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성과 건강을 다루는 초등학교 6학년 보건 교과서에는 최근 문제가 되는 디지털 성폭력에 관한 내용은 아예 없습니다. 또, 학내 성교육의 토대가 되는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은 4년 전인 지난 2015년에 개정된 게 마지막입니다.


지난 2월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교 내 성희롱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는 '신고 접수 후 48시간 내 교육청 보고', '학교폭력자치위원회 구성' 등과 같은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들이 빽빽하게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어른들이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구시대적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런 절차 마련이 무슨 소용일까요? 피해 아동에 대한 '피해자 중심'의 보호가 이뤄지지 않았던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물리적으로 이뤄져야만 성폭력인 건가요? 한 번 학교와 교육청 측에 물어보고 싶네요."


A 양의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교육기관을 향해 되물었습니다. 취재기자인 저 역시도 기사를 통해 같은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사이버 성폭력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답하는 학교의 어른들에게 말입니다.

2019.05.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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