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끝나자 '프랙탈 거북선' 수난...우여곡절 끝 정박항 찾아

[컬처]by 서울경제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

미테랑도 감탄한 대전엑스포 '슈퍼스타'

행사 끝나자 백남준도 거북선도 잊혀져

재생조형관에 7년간 쓰레기 처럼 방치

대전지역언론 보도로 다시 세상에 알려져

천신만고 끝에 수리 끝냈지만 갈곳 없어

대전시립미술관 셋방살이 하며 또 찬밥

2017년말 개방형 수장고 건립 결정으로

물·추위·바람 고난 끝내고 다시 불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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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보존처리 완료 후 301대의 모니터 전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 /사진제공=대전시립미술관

기세등등한 백남준의 ‘거북선’과 함께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는 대성공을 거뒀다. 외국 국가 원수로는 첫 번째로 대전엑스포를 방문한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유독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빈 병을 이용해 만든 ‘재생조형관’을 찾아갔고, 백남준이 300대 이상의 고물 TV와 못 쓰는 라디오, 토스터기 등을 이용해 설치한 ‘거북선’ 앞에서 한참을 감상에 집중했다.


대전엑스포는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딱 석 달 동안 열렸다. 전시관 하나를 보기 위해 2시간에서 많게는 7시간씩 기다렸을 정도로 인기였다. 공식 집계로는 총 1,450만 명이 다녀갔다. 행사가 막을 내리자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세간의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빈 병 5만 개로 제작한 ‘재생조형관’은 물론, 백남준의 ‘거북선’도 잊혔다.


버려진 것들은 쉽게 부서진다. 재생조형관을 해자(垓字)처럼 에워싼 물길은 비만 왔다 하면 불어나 건물 안으로 물을 밀어 넣기 일쑤였다. 물은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들어 지하 2층의 ‘거북선’ 방을 적셨다. 물은 전자제품에 치명적이다. 옛날식 앤틱 TV의 나무케이스와 ‘거북선’에 사용된 각종 잡동사니들도 습기를 버텨내기 어려웠다. 여름 한낮이면 유리로 만든 건물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냉탕과 열탕을 들락거리며 작품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보통 엑스포가 끝나면 전시관을 없애지만 정부는 이곳을 과학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관리기관으로 ‘대전엑스포기념재단’이 설립됐고 이후 전시장 위탁운영권은 민간기업에 넘어갔다. 이미 가볼 만한 사람은 다 가본 곳이라 수익성은 저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겹쳐 결국 운영권을 가지고 있던 기업이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문화강국의 상징이 졸지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엑스포 과학공원의 소유권은 1999년 대전광역시청으로 옮겨갔다.


이 무렵 박영덕갤러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대전의 한 신문사 기자였다. 대전엑스포장의 재생조형관에, 7년째 쓰레기처럼 방치된 것이 백남준 작품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 젊은 기자는 이런 작품이 왜 그곳에 방치됐는지를 되짚어가던 중 관련 서류에서 작품 제작에 관해 백남준을 대리해 계약한 박영덕의 이름을 찾아냈다고 했다. 박영덕 대표는 재생조형관 전시 도록으로 자신이 갖고 있던 마지막 책자를 그 기자에게 취재자료로 보냈다.


대전 지역 언론의 보도로 처참하게 사라질 뻔한 ‘거북선’이 다시금 세상에 알려졌다. 여론이 들끓었다.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두고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듯 ‘거북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도 갈렸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 해체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폐기비용만 1억 원에 달했다. 이러나저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보존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마침내 ‘거북선’이 지상으로 나왔다. 대전시 측은 ‘거북선’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엔지니어 이정성에게 연락했다. 물 찬 공간에 방치된 탓에 전자 시스템 대부분은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겨우 전원을 켰으나 화려한 영상 대신 우중충한 빛이 껌뻑거릴 뿐이었다.


십수 년간 백남준 곁에서 별의별 작품을 다 손봤지만 이렇게 수년간 물에 잠긴 작품은 이정성 자신도 처음이었다. 가망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버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살리려고 작정하고 달라붙었더니 부품 교체 등 1억8,000만원 정도가 들었다.


마침내 거북선이 원래의 빛을 되찾았다. 이번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2001년 당시 대전시립미술관 관장이던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가 대전시 산하 지방공사로 이양된 ‘거북선’을 관리 이전받았다. 작품의 보존과 전시라는 본래 취지에 딱 맞았다. 문제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대전시립미술관의 2층 중앙홀이 그나마 제일 넓었지만 날개 펼친 거북선의 폭이 10m인지라 좁았다. 결국 TV 4대씩 총 10줄인 날개를 각각 1줄씩 잘라내야 했다. 높이도 조금씩 줄였고, 원래 349대이던 모니터는 현재 301대만 설치돼 있다.


섣불리 ‘안착’을 얘기할 수 없었다. 작품이 공간에 꽉 끼듯 자리 잡은 터라 전체를 조망할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다. 관람객은 코끼리 다리를 더듬듯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거북선’이 과도하게 시선을 압도하고, 다른 전시작을 가리는 것도 문제였다. 기획전이라도 열릴라치면 다른 작가들이 “‘거북선’을 가려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셋방살이 찬밥신세로 또 몇 년을 버텼다.


2009년 말,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서 빛과 미디어아트를 주제로 한 ‘서울 빛 축제’를 기획하면서 ‘프랙탈 거북선’을 빌려갔다. (백남준의 ‘거북선’은 대전엑스포 재생조형관에서 대전시립미술관으로 옮겨가면서 ‘프랙탈 거북선’이라 불리기 시작한다. 백남준이 작품을 설명하는 글에서 ‘생물과 컴퓨터의 중간’이라는 뜻으로 ‘프랙탈(fractal)’이라 적은 것이 제목에 옮겨 붙었다. 1993년 이후 제작된 다른 ‘거북’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갖는 이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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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성(윗줄 오른쪽) 아트마스타 대표가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의 복원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대전시립미술관

작품 대여 요청을 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거북선’을 설치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가 10억5,000만원으로 책정된 작품을 위해 제작비만 3억원을 들여 전용 유리전시관을 만들었다. 그해 12월 초부터 이전작업이 시작됐다. 19일 개막식에서 ‘프랙탈 거북선’이 불을 밝혔다. 백남준 생전에도 그랬듯,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는 최적이었다. 문제는 한파였다. 일종의 천재지변이다. 외부 온도가 낮아 유리 구조물에 습기와 성에가 끼었다. 밖에서 작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내부 유리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가 더 큰 문제였다. 습기와 결빙은 작품 훼손의 치명적 요소다. 작품 관리를 맡은 서울문화재단 측은 난방기기를 가동하고 수시로 환기를 시켰다. 50% 정도의 습도를 맞추기 위해 습도조절 보조제, 제습기 등을 투입해 하루하루를 버텼다.


해를 넘겨 2010년 1월 24일 ‘서울 빛 축제’가 끝났고 ‘프랙탈 거북선’은 대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금 해체됐다. 서울 나들이는 소장처에 시사점을 던져줬다. 비좁은 실내공간보다는 광화문광장처럼 야외 유리전시장에 설치하는 게 작품의 취지를 살리는 데 더 효율적이라는 깨달음이다. 나중에 알려진 얘기지만, 광화문에 전시된 프랙탈 거북선을 본 당시 대전 시의회 의원들이 “저 좋은 ‘우리’ 작품을 왜 빌려줬느냐”고 문책했다고 한다. 돌아온 거북선을 위한 ‘전용전시관’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마침 대전시립미술관 2층 전시장 리모델링이 예정된 터라 대전시는 ‘프랙탈 거북선’의 전용전시관 조성에 예산 8억 여원을 책정했다.


희망이 보였으나 잠시였다. 2010년 6월 치러진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시의원 대부분이 ‘물갈이’됐다. 이듬해 열린 예산안 사전심의에서 프랙탈 거북선 전시관 조성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다시 원점이다. 오갈 데 없게 된 작품은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로 인한 분진과 진동이 가득한 곳에서 묵묵히 견뎌야 했다.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이 갖는 문화 브랜드적 가치부터 작품의 특수성과 관람 효과 극대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론에 힘입어 미술관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사이의 야외 잔디공원으로 위치를 옮기자는 잠정안이 채택됐다.


2012년 4월, 기계실을 포함한 특수 전시관 착공 계획이 발표됐다. 계획은 한 달을 못 넘기고 엎어졌다. 시민공청회를 열었더니 이전 장소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에 걸쳐 옛 충남도청, 옛 충남경찰청사, 신축 빌딩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수년째 고민거리이던 거북선은 지난 2017년 말, 마침내 정박항을 찾았다. 대전시립미술관이 야외광장에 개방형 수장고를 건립하고 이 중 일부를 ‘프랙탈 거북선’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이듬해 예산이 확보됐고 지금은 설계 용역이 완료된 상황이다.


이대로 잘 버티면 될 줄 알았다. 지난해 7월 17일 대전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하루 9시간씩 가동하는 ‘강행군’ 끝에 모니터 오작동이 발생했다. 작품 보존 문제로 기존의 하루 평균 가동 시간은 4시간 정도였다. 무리한 탓에 결국 모니터 20여 대가 완전히 꺼졌다. 지난해 초 ‘다다익선’의 가동 중단 이후, 11월부터 ‘프랙탈 거북선’까지 꺼지니 백남준의 작품 보존과 복원에 이목이 집중됐다. 또다시 이정성이 대전으로 내려갔다. 병석에 있던 백남준 선생을 생각하며 복원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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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의 날개 부분. 원래 TV가 4개씩 총 10줄이었으나 공간 문제로 한 줄을 잘라냈고 일부 모니터는 완전히 꺼진 상태였다. /사진제공=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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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의 날개 부분. 고장난 모니터를 수리, 복원해 현재는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대전시립미술관

지난 1월29일, 백남준 서거 13주기이던 날 ‘프랙탈 거북선’이 다시 깨어났다. 예술과 기술, 과학과 미술이 만나 이뤄낸 걸작이 되살아났다. 김환주 대전시립미술관 작품보존 전문 학예연구사는 “‘프랙탈 거북선’을 비롯한 뉴미디어 작품들은 사용된 전자부품의 내구연한에 따라 손상이 발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작품의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보존처리를 통해 작품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원형을 회복시켜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매일 오후 2~4시만 작품이 가동된다.


이변이 없는 한 ‘프랙탈 거북선’은 오는 2021년 완공 예정인 개방형 수장고의 전용전시관으로 옮겨간다. 새 보금자리를 찾으면, 잘려나갔던 양쪽 날개 끝자락 각 4개씩 8개의 모니터도 다시 붙일 계획이다. 현재 공간이 좁아서 제거해 둔 빔 프로젝션을 다시 설치하면, 그 끝에서 대형 영상 송출도 가능하다. 물과 추위와 먼지와 수모를 모두 참아낸 덕이다. 다행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2019.07.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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