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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알기

한국문화 사랑한 벽안의 신부들…애써 모은 문화재 '조건없는 반환'

by세계일보

獨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두 신부

한국문화 사랑한 벽안의 신부들…애써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파스의 책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실린 1911년 경기도 안성 석남사의 대웅전 모습. 불상 불화 등이 여러 점 보이는 데, 이 중에는 현재는 전하지 않는 것도 담고 있어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1884∼1974)와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1870∼1956)’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 두 이름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마음 한켠에라도 담아두었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다. 110여년 전 일제강점기의 서울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독일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신부들로, 한국과 한국문화를 이방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에카르트 신부는 1909년부터 1928년까지 한반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재를 연구하여 최초의 한국미술사 통사인 ‘조선미술사’를 1929년에 독문과 영문판으로 출간했다. 베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총아파스는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의 한국 선교 여행에서 관찰한 내용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 독일에서 출판했고, 두 번째 여행에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무성영화를 만들어 유럽에서 상영했다.


한국 문화를 깊이 사랑했고, 그것을 유럽에 알리는 데 앞장섰던 두 신부의 정신과 태도는 지금도 수도원에 이어져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의 조건 없는 반환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겸재정선화첩’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베버 총아파스가 1925년 한국 여행을 하며 구입해 간 겸재정선화첩을 2005년 영구대여 형식으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수도원으로 돌려주며 예레미아스 슈뢰더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총재 아파스가 했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이후로도 에카르트 신부가 수집한 식물표본 420점(2014년 국립수목원 기탁), ‘곤여전도병풍’ 배접지로 사용된 17세기 익산 호적(2016년 문화재청 기증), 조선시대 갑옷(2018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기증) 등이 수도원의 선의에 따라 고국으로 돌아왔다.

사라진 문화재의 모습을 전하는 한 장의 기록 사진

이제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실에 간직되어 있는 베버 총아파스가 찍은 사진을 소개하려 한다. 한 이방인의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사랑을 증언하는 이 사진은 우리에게 묵직한 과제를 던지기도 한다.


베버 총아파스의 저술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5년 초판, 1923년 재판)에 1911년 4월 20일 안성 근처에 있는 한 사찰을 방문했을 당시 거친 손길에 훼손되어 머지않아 사라질 지경에 이른 그곳의 모습을 사진에라도 담아 전하고자 한다는 내용과 함께 실려 있다.

한국문화 사랑한 벽안의 신부들…애써

안성 석남사 대웅전의 아미타여래삼존상.

지금까지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경기도 안성 석남사의 대웅전을 담은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2016년 방영돼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절이다. 드라마의 부제처럼 베버 총아파스가 방문했던 봄날의 석남사는 “찬란하고 쓸쓸했다.”


주목되는 것은 사진 속 대웅전에 있는 문화재들이다. 불단에는 승려와 신도들의 염원이 깃든 ‘아미타여래좌상’, ‘관세음보살입상’, ‘지장보살입상’으로 이뤄진 ‘아미타여래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후불벽에는 ‘아미타불회도’가 걸려 있었으며, 삼존불상 좌우에 ‘명경대’와 황제, 황비, 황세자를 축원하는 ‘전비’(殿牌), ‘소통’(疏筒)이 놓여 있다. 사진 왼편은 전각의 서벽으로 ‘현왕도’가 걸려 있고, 그 중앙에는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선재동자와 용왕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또 ‘금강도’가 보인다.


사진 속 사찰이 석남사이며, 법당에 있던 ‘아미타불회도’(1827년)와 ‘소통’이 현재 화성 용주사의 효행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용윤 조계종 총무원 문화재팀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현전하는 ‘소통’은 베버의 책에 실린 사진과 비교해 보니 하단에 있는 사자는 없어진 상태다.


정은우 동아대 교수는 불단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삼존상’은 고려시대 경기도 지방에서 유행했던 불상 유형이며 현재 국내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매우 귀한 불상이라고 하였다. 본존불은 화성시 봉림사에 있는 ‘목조아미타불좌상’(보물 제980호)과 전체 모습은 유사한데 인상이 더 부드럽고 어깨의 옷주름, 배의 띠매듭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훼손의 현장을 담은 이 두 장의 사진은 문화재보다 더 귀하게 앞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베버 총아파스의 애정과 통찰이 없었으면 우리는 석남사에서 잃어버린 문화재가 있는지조차도 몰랐을 뻔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조계종과 힘을 모아 사라진 이 문화재들의 소재를 파악해야 할 과제가 생겼다.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한국문화재 이야기

우리 문화재를 소장한 기관 혹은 개인의 협조를 얻어 국외문화재의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물을 국문과 외국어판으로 출판하여 세계인과 공유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작업이다. 실태조사는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문화재의 정확한 가치를 확인하고, 소장기관 혹은 소장자가 입수하게 된 경위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점에서 긴 시간이 필요하고 고단한 작업이다. 그러나 고국을 떠난 문화재가 어떤 게 있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고, 환수의 가능성까지 타진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재단의 핵심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은 소장 중인 한국 문화재가 많을 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환수사례를 보여주어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재단은 2013년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돌아온 문화재’ 총서의 첫 대상으로 ‘겸재정선화첩’을 선정, 대중교양서를 발간했다. 관련 전시 및 강연회도 열었다. 또 화첩 복제본을 제작해 수도원에 전달했다. 2015년에는 수도원 선교박물관 한국실 재개관을 지원하고 전시도록을 제작했다. 재단과 함께한 사업들이 계기가 되어 2016년 실태조사에 착수해 올해 7월에 마무리했다. 내년에는 소장품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보고서를 출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파스와 선지훈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 김영자 전 수도원 선교박물관 특별자문위원의 역할이 컸음을 밝혀 둔다.


수도원 선교박물관은 1896년에 설립되었으며, 1911년에 새로 별도의 건물을 지어 현재의 선교박물관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의 수집품으로 구성된 한국 컬렉션은 1610여점으로 각종 민속품과 복식류가 중심을 이룬다. 이 중 293점은 베버 총아파스가 향후 한국에 파견될 독일 선교사의 한국문화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한국 선교 여행 중에 수집한 것들이다. 민속품들은 고유의 신앙, 혼인, 장례 등과 관련된 것들이며 복식유물은 일상복식, 상복과 혼례복, 갑옷 등이 골고루 수집되어 있다.


베버 총아파스가 1925년 한국 방문 시 찍었던 무성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잔치’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나오는 복식과 민속품들을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에서 유물을 수집할 당시에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 남아 있는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문화 사랑한 벽안의 신부들…애써

도연명, 임포 등 8명과 관련된 고사를 담은 ‘고사인물팔폭자수병풍’은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신부의 ‘조선미술사’에 실린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수공예품이다.

수도원 아카이브실에 보관된 사진 속의 독일인 신부가 입고 있는 ‘단령’과 주인공 주변에 놓인 ‘머릿장’, ‘고사인물팔폭자수병풍’ 등은 선교박물관 수장고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진은 성 루드비히 수도원 플라치두스 포겔(1871∼1943) 원장 신부가 1911년 베버 총아파스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기념사진으로 추정된다. ‘고사인물팔폭자수병풍’은 도연명, 맹호연, 임포 등 여덟 명의 고사를 다룬 작품으로 에카르트 신부의 ‘조선미술사’에 실린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수공예품이다. 병풍이 무성영화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도 등장한 것을 보면, 이 필름을 촬영한 후에 독일로 가져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독일에서 한 차례 개장된 이 병풍은 영상이 남아 있어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역사 담은 소중한 기록물도 보관

선교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테오필 가우스 신부는 유물 수납, 조사에 필요한 장비 제공 등 조사 기간 전반에 걸쳐 헌신적으로 협조하였으며, 탄야 홀트하우젠 부관장은 조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모은 예쁜 책을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 실태조사가 진행 중이던 올해 1월 조선 후기 보군(步軍)이 입었던 면피갑(綿皮甲)에 해당되는 갑옷 한 벌을 반환하여 감동을 더했다.


수도원에는 이것 말고도 많은 한국 문화재와 관련된 자료들이 있다. 특히 아카이브실에 보관 중인 한국 관련 1400여점의 유리건판, 5400여점의 사진·엽서, 무성기록영화 등이 눈길을 끈다. 2015년 박물관 재개관 때 수도원의 특별한 배려로 자료 전반을 검토할 기회가 있었는데, 110년간의 한국의 역사가 담겨 있는 소중한 기록물이었다.

 

한국문화 사랑한 벽안의 신부들…애써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1팀장

재단은 올해 볼프강 왝슬러 수도원 총아파스와 한국과 관련된 아카이브 전수조사 사업에 대해 일차적인 협의를 마쳤으며, 2020년부터 왜관수도원의 협조하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