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 사랑한다… 하얗게 피어나는 막걸리 순정

[푸드]by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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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1909년 주세법 제정이 공포되고, 1934년 자가용 면허가 폐지되면서 집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서서히 사라지게 됐다. 특히 1965년 술을 빚을 때 쌀 사용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이 생기면서 더욱 더 우리 술 제조가 힘들어지고, 술맛이 획일화됐다. 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고,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당진에 있는 한 양조장은 1933년부터 한결같은 맛과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스물한번째 목적지는 충청남도 당진이다.

양조장 안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예쁘다, 잘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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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개조해서 만든 당진의 신평양조장에 가면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린다. 김용세 명인이 술이 익어가고 있는 항아리 옆에 기대어 탄산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예쁘다, 잘한다, 사랑한다”고 연신 칭찬을 하고 있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술도 칭찬을 들어야 잘 익는다는 명인의 말씀이다. 신평양조장은 1933년부터 당진의 해나루쌀로 같은 자리에서 3대째 술을 빚는 당진의 명물이자 살아있는 전통주 역사의 산물이다. 1대 김순식 대표는 24세의 젊은 나이로 신평양조장의 전신인 화신양조장을 창업했는데, 주세법 공포와 한국전쟁, 전후 혼란기와 같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 시련 속에서 멈추지 않고 성장을 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국가 재건 운동이 전개됐고, 신평양조장은 이때 신평면에 시내전화 개설과 우체국 도입을 주도하는 등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며 당진 지역사회의 중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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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식품명인으로 선정된 김용세 명인은 아버지로부터 전수한 2대 생산자로서 양조장에서 익힌 기술과 경험을 발전시켜 양조기술의 전성기를 일구어냈다. 신평양조장에서는 당진의 해나루쌀과 하얀 연잎 백련을 원료로 백련막걸리와 백련맑은술을 만들고 있는데, 백련막걸리는 2009년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될 정도로 그 맛과 품질이 일관적이고 뛰어나다. 현재의 양조장은 1933년부터 살고 있던 고택으로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오래된 고서, 문헌, 주모를 만드는 항아리와 심지어 그 시대의 영수증까지 볼 수 있어 마치 전통주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다.


2013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돼 양조장 바로 옆에 전통주 문화 체험장인 백련양조문화원이 있는데, 전통주 역사에 대한 전시와 막걸리 빚기 체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막걸리 소믈리에 코스, 증류주 체험, 누룩전 빚기 등을 할 수 있다. 달큰한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두밥을 면포 위에 펼치고, 넓게 펼쳐 식힌다. 어느 정도 온기가 빠져나가면 고두밥을 둥글려서 항아리에 넣고, 누룩과 물을 넣어 막걸리를 만들면 되는데 섞는 과정에서 무작정 주먹으로 으깨지 말고, “예쁘다, 사랑한다, 감사한다” 말을 하며 조심스럽게 섞으니 더 맛있는 술이 만들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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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빚기가 끝나면 집에 가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항아리를 가져갈 수 있고,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백련 막걸리와 맑은 술을 구입할 수 있어 당진에 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현재는 김동교 대표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대기업 출신의 사업가로서 120평 규모의 셰막이라는 막걸리바도 서울 강남역에서 운영해 젊은 사람들의 입맛도 사로잡고 있다.

당진의 지역성과 푸짐함을 담은 우렁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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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는 풀을 아주 좋아하는 대식가다. 그런데 물속의 풀만 먹는 습성이 있어서 논에 풀어두면 벼는 먹지 않고, 잡초를 뜯어먹는 천연 제초제 역할을 한다. 당진에 오면 우렁이쌈밥집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는데, 당진에 드넓게 펼쳐진 논을 보면 왜 우렁이가 많은지 이해가 될 것이다. 당진에 와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을 꼽는다면 바로 우렁이쌈밥인데, 우렁이쌈밥은 당진의 향토음식이자 9미 중 하나로 칼로리는 낮고 단백질이 풍부한 요리다.


양조장 투어를 마친 뒤 우렁이쌈밥을 먹으러 신평면에 가니 도로 하나를 가운데 두고 모두 우렁이쌈밥만 팔고 있다. 그중에서 간판조차 우렁차게 큰 옛날우렁이식당을 찾았는데 평일 점심부터 문전성시다. 대표 메뉴는 옛날우렁이정식으로 우렁쌈밥, 우렁초무침, 우렁된장찌개와 더불어 굴비, 제육볶음까지 모두 맛볼 수 있는 푸짐한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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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렁초무침부터 먹으면 되는데 우렁이와 새콤한 파무침을 깻잎 위에 올려 싸먹으면 없던 식욕마저 생겨난다. 우렁이는 본래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단백질을 제공해주는 귀중한 식재료로 쫀득한 맛만 보면 고기보다 더 훌륭하다.


우렁초무침을 적당히 먹고 나면 본론으로 들어간다. 우렁쌈밥은 두 가지 맛으로 즐길 수 있는데, 두부의 포슬포슬함을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맛의 쌈장과 감칠맛이 뛰어난 진한 맛의 쌈장이 한꺼번에 같이 나온다. 둘 다 고온의 뚝배기에 쌈장을 되직하게 끓여 나오기 때문에 아랫부분이 그을려서 나오는데 숟가락으로 깊게 떠서 먹으면 복합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신선한 상추 위에 하얀 밥 한 숟가락, 우렁이쌈밥 한 숟가락을 얹어 큼지막하게 싸먹으면 상추의 아삭함과 밥의 따뜻한 온기, 쌈장의 감칠맛, 그리고 쫀득한 우렁이가 이루는 앙상블이 입안을 가득 채워준다. 서울에서 우렁이쌈밥을 간혹가다 먹은 적이 있는데, 당진의 우렁이쌈밥은 비교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신선하고, 푸짐해 당진 9미로 선정된 이유가 이해된다. 이 맛이 그립지만 당진까지 오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택배로 우렁쌈장을 배송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니, 집에서도 현지의 맛을 느껴보자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

2020.04.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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