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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죽음은 다른 세계로의 여행”… 고대인들 사후관을 훑어보다

by세계일보

국립중앙박물관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 / 두툼한 뱃살에 한손에 술잔을 들고 / 여유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남자 / 호화로운 마차 타고 저승 가는 부부 / 화려한 연회복 차림의 관능적 여성 등 / 석관 뚜껑·유골함에 ‘유쾌한 죽음’ 새겨 / 내세의 희망 믿은 당시 생각 잘 드러나


역설적이게도 죽음은 삶의 중요한 테마다.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죽음을 예비하며 돌아보는 삶은 어떻게 기억될지, 죽음 이후엔 또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동서고금의 인류가 끊임없이 고민해 왔던 물음이고, 그럴싸한 대답들이 없지 않았으나 똑 부러지는 답은 없었다. 앞으로도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더 먼 옛날을 산 사람일수록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보는 태도가 강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삶과 죽음의 이분법에 익숙한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무지의 소산으로 치부할 수 있으나 그런 믿음이 분명하다면, 혹은 정말로 그러하다면, 죽음이란 좀 더 여유롭게 응시할 수 있는 대상일 것이다.


서기전 10∼2세기, 까마득히 먼 옛날 그리스와 경쟁하며 독자적 문화를 일궜고 로마에 큰 영향을 미친 에트루리아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었다고 한다. 이승에서의 쾌락과 풍요는 저승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0월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에는 별로 우울해 보이지 않은 죽음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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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전 4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석관의 뚜껑은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됐다. 뚜껑에 표현된 망자는 연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스듬한 자세로 오른손에는 잔을 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죽어서도 삶은 계속된다

서기전 4세기 말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관의 뚜껑에는 한 남자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누워 있다. 두툼한 뱃살과 오른손에 들고 있는 술잔 ‘파테라’는 석관의 주인이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았는지를 웅변한다. 죽음을 맞으며 감내했어야 할 육체적 고통,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 등은 에트루리아인들이라고 예외일 리 만무한데 이 석관 뚜껑에서 죽음에 따르는 슬픔이나 그 비슷한 정서를 찾기는 힘들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는 않았으나 빌라 줄리아 에트루리아 박물관 소장품 중 하나인 관의 덮개에는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머금은 부부의 조각”이 누워 있다고 한다.


사후에도 삶은 계속된다고 생각했던 에트루리아인들의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이승의 삶이 이어지는 사후세계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유골함에는 이런 생각이 보다 분명하게 표현돼 있다. 서기전 2세기 말의 유골함은 지붕이 달린 이륜마차를 탄 부부가 저승으로 떠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차 앞뒤로 작별인사를 하는 사람, 장례행렬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유골함 뚜껑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연회에서처럼 왼쪽으로 누워 있다.


박물관 노희숙 학예연구사는 “저승의 신 반트와 카룬이 이끄는 죽은 이의 마지막 여행은 작별인사를 하고 마차나 말을 타거나 혹은 걸어가는 모습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죽음에 대한 이런 인식은 돌고래로 표현되기도 한다. 관이나 유골함의 측면에는 돌고래를 조각한 것이 종종 보이는데 “사후세계를 향해 바다를 건너는 망자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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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탄 부부가 저승으로 떠나는 모습을 묘사한 유골함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죽은 자들의 도시’가 드러내는 희망과 유토피아

에트루리아의 존재감은 키아레나 타르퀴니아의 네크로폴리스에 남아 있는 무덤과 부장품을 통해 부각됐다. 특히 타르퀴니아에는 서기전 7세기 이후 조성된 6000여개의 무덤과 200여점의 프레스코화가 당대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무덤 공간의 시각적 담화는 ‘죽은 자들의 도시’에 담긴 내세에 대한 희망과 삶의 유토피아를 드러낸다”는 게 박물관의 설명이다.


무덤의 벽화는 내세와 연관된 신화적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연회와 사냥, 운동경기, 음악과 무용 관람 등 현세에서의 쾌락과 풍요를 다룬 소재 또한 많다. 성행위와 같은 관능적인 장면도 간혹 눈에 띄며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룬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서기전 4세기에 들어오면 바뀐다. 현세와의 이별, 내세에서의 처벌 등이 일반적인 주제가 되며 초기의 밝고 쾌활한 분위기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무덤 주인의 초상화가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부터다.


부장품 역시 에트루리아인들이 삶을 즐기는 주요한 방식이었던 연회를 표현한 것들이 많다. ‘피네스키 돌방무덤’의 양쪽 진열대 위에는 유골함 주변으로 컵, 접시 등 도기로 만든 그릇 세트가 놓여 있다. 철로 제작된 커다란 촛대도 놓여 있다. 이런 부장품 모두가 연회를 위한 것이다. “죽은 이가 사후세계에서도 살았을 때의 부유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원했던 것”이다. 키우시의 한 귀족 가문 무덤에서는 얇은 청동판으로 만든 둥근 형태의 유골단지가 청동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의자 앞에는 ‘트라페자’라는 탁자도 놓여 있었는데 연회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