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 신문선이 미술관장이 된 이유

[컬처]by 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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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 작가의 '독도' 앞에서 소회를 밝히는 신문선 관장 ⓒ한준 기자

"독일월드컵 때 그 일을 겪고 돌아와서,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었어요."


예술은 아픔과 맞닿아 있다. 가장 역동적인 스포츠인 축구 종목의 선수와 해설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문선에게, 여전히 가장 쓰린 기억은 2006년 FIFA 독일월드컵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판정에 대한 해설이다. 당시 누구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확인하고 온사이드라고 해설했지만, 오프사이드라고 믿고 싶은 국민 여론에는 반하는 해설을 한 뒤 귀국했고,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 속에 요동쳤던 마음을 홀로 문화생활로 다잡았다.


"매일 저는 한강을 뛰었어요. 진짜. 집에서 가까운 연세대 뒷산, 안산에 올라가고. 그리고 저녁에는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벌써 오래 전이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으면 힘들어 하잖아요. 지나간 일이지만 제게 문화적 감성이나 향유가 없었다면…. 오히려 저는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길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죠."

독일 월드컵의 아픔, 문화로 치유한 신문선

서울체육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를 거쳐 육군 축구팀, 대우, 프로 창단 후 유공에서 뛰며 한국 축구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신문선은 운동을 하면서도 학업과 제2의 진로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그와 더불어 운동을 하면서 내재된 폭력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축구인 신문선이 예술과 만나게 된 계기다.


"더 운동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은퇴했어요. 운동을 하다보니, 내 마음에 내재된 폭력성이 있는 거에요. 20년 동안 축구를 했는데, 이겨야 되잖아요. 지도자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상대방 7번, 9번이 잘하니까 걷어차. 받아버려. 어느 결인가 저뿐만 아니고 모든 운동 선수들이 그렇지만, 신체적 접촉이 있는 운동을 하면서 폭력성이 잠재 의식에 들어가요. 그걸 통제하지 못하면 일탈이 되는 거에요. 문제가 있던 운동선수 출신 사건을 전 그렇게 해석해요. 은퇴를 하고 나서 동적인 부분을 잡아줘야 해요.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봤어요. 정적인 활동으로 다스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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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정문 앞에 와우갤러리를 개관한 신문선 관장. 배경 그림은 권순철 작가의 작품 '얼굴' ⓒ한준 기자

연세대 축구부 숙소가 이대 후문에 자리잡고 있던 것은 신문선에게 행운이었다. 걸어서 신촌역으로 가는 길, 굴레방 다리에 고서화점과 골동품 가게가 신문선의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그림은 독일월드컵 이후 본격적으로 신문선의 관심사가 됐다.


"지나간 인생을 보면 저에겐 미술은 그런 존재에요. 인간은 기억한 것을 자기 마음에 담고 살잖아요. 기억에 여러가지 사건들이 기록되겠죠. 그 기억에 담기는 것은 그림이 가장 강해요. 지금도 모나리자를 보러 그 많은 사람들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가잖아요. 그게 그림의 힘이거든요.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최근 경매에서 400억 가까이에 팔렸어요."


"스포츠를 굴뚝 없는 산업이라 하지만, 펠레도 벌써 잊히잖아요. 우리 세대 최고 선수는 펠레라고 하고, 지금 세대는 호날두, 메시라고 하죠. 축구 선수의 세계적 족보로 이야기하면 연한은 얼마나 될까? 한 100년 가면 지금 미디어에 노출된 선수들이 각광받겠죠. 미술은 1800년대 반고흐의 해바라기를 논하고, 가격은 수백억원 하고, 그림 몇장이면 비행기를 살 정도의 힘이 되는 걸 우리가 보고 느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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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작가의 작품 '오대산 적멸보궁2'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문선 관장 ⓒ한준 기자

신문선이 말하는 그림의 힘, 돈 있는 사람의 특권이어선 안 된다

신문선이 말하는 그림의 힘은 단지 돈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힘을 가진 그림이 보다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본질이다.


"문화가 없는 거에요. 예전에는 홍대 미대 출신 작가들의 공방이 있었는데 프랜차이즈 음식점, 술집, 클럽이 들어오면서 이 지역이 완전히 옐로 문화로 뒤덮이고 임대료가 폭등하고, 홍대 앞은 문화가 실종된 거죠. 숨쉴 수 있는 숲이 없어진 거예요. 내가 이제 60세가 넘었는데,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홍대 앞에 처음 이 건물을 매입할 때부터 생각했어요. 갤러리를 하기 위해 발품을 엄청 팔았어요. 시간 나면 일본도 가고. 태국 짐 톰슨 하우스에도 가봤고. 일본에 가면 조그만 동네에도 미술관이 있고. 근데 한국은 제가 사는 마포구에 하나도 없어요. 창피한 이야기에요. 화가들도 몰랐어요."


건물 임대료 수입으로 화려한 컬렉터의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신문선은 직접 갤러리를 열고 대중이 쉽게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와우갤러리를 열었다. 지하 1층에서 초대전을 하고, 2,3층은 W스페이스로 대관해 전시를 원하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쓸 예정이다. 마음 같아선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싶지만 수지 타산을 위해 1층만 임대를 주고 있다.


9월 19일 개관한 와우갤러리의 첫 초대전은 권순철, 서용선, 주태석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화가들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이후에는 홍대 출신 대가들부터 미술계 손흥민 발굴을 위한 30대 작가 초대전 등 다채로운 전시 계획을 갖고 있다. 신문선은 선수들에게 운동장이 필요하듯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대중과 호흡할 문화 운동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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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선 와우갤러리 관장 ⓒ한준 기자

"그림이라는 것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별세계가 아니라, 스포츠도 문화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적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2002 월드컵 때 상암, 수원 등 10개의 경기장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제 홍대 앞에 제대로 스타디움을 하나 만든 거죠. 홍익대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최고의 미대인데, 화가들이 뛸 운동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관중이 있어야 해요. 그림이 돈 있는 사람의 전유물, 특권이라고 알려지는 것은 잘못된 거죠."


개관 후 하루에 50여 명이 방문하는 등 흥행 중인 와우갤러리는 축구 선수와 방송 해설가, 축구단 사장, 대학 교수에 이어 신문선이 걷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다. 체육인 최초 미술관장이 된 신문선은 그동안 역동적으로 살아왔지만, 조금 더 느긋하게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건 문화입니다. 치열하게 살면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바뀌죠. 바빠서 산에 가지 못하면 그림의 산을 보고, 작가의 인생을 보고, 작가가 그린 얼굴과 그 안의 삶을 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위안을 갖고 성찰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스포티비뉴스=상수동, 한준 기자

2019.10.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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