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만 뜯어먹어도 잘 살아요

[컬처]by SRT매거진

게임 회사에서 별 보고 퇴근하며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 좀 보고 싶은’ 게 꿈이던 남자와 그림은 못 그리지만 대학원에서 논문 쓰다 웹툰을 하고 싶어 남자를 꼬드긴 여자. 데면데면한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던 둘은 몰랐을 것이다. 14년 뒤, 같이 데뷔할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 같이 풀 뜯으며 두 딸과 알콩달콩 살게 될 줄은.

풀만 뜯어먹어도 잘 살아요

글피(주태희·김주영)

고교 만화동 아리에서 만나 14년 동안 얄팍하게 지내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뒤로 같이 웹툰을 그리고, 결혼하고, 딸 둘을 낳았다. 2010년 <매지컬>로 다음 웹툰에서 데뷔, <레이어즈>, <레이어즈 아나키>, <라임 오딧세이>, <the R:롯의 향수>를 그렸다. 2014년 충남 공주로 귀촌한 뒤 일상 에세이툰 <풀 뜯어먹는 소리>를 연재 중.

재테크

풀만 뜯어먹어도 잘 살아요

웹툰 '풀 뜯어먹는 소리'의 배경이자 보금자리인 통나무집

부부작가단 ‘글피’에서 스토리를 담당하는 김주영입니다. 웹툰 <풀 뜯어먹는 소리>에서는 아내 ‘치마요’로 등장해요. 귀촌을 결심한 제일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어요. 저희가 데뷔한 2010년 전후만 해도 웹툰 고료가 그렇게 높지 않았거든요. 알래스카로 신혼여행 갔을 때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인터넷만 있으면 일할 수 있으니, 필리핀이든 말레이시아든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으로 가서 살자. 그런데 알래스카에 사는 이모가 말리시는 거예요. 외국보단 말 통하는 한국이 낫다고, 한국에서 생활물가가 낮은 곳을 찾아보라고요. 그렇게 귀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고, 웹툰에 ‘포도알’로 등장하시는 시어머니와 쿵짝이 맞아(?) 일사천리로 여기 통나무집으로 이사한지 4년이 됐네요. 이사하고 초반에 진짜 돈이 없을 땐 정말 밖에서 풀 뜯어 먹었어요. 나물이 의외로 많더라고요(웃음). 이웃들을 보며 느낀 공통점은 이거예요. 일단 도시가 아니라도 일이 가능한 분들. 느려도 괜찮은 사람들. 조금 망가지더라도, 조금 불편해도 괜찮은 사람들. 조급증이 없어요. A/S오는 것부터 한참 걸리고 택배도 날을 걸러서 올 때가 많거든요. 저희도 얼마 전에 날파리를 잡다가 화장실 유리가 조금 깨졌는데 그냥 살아요(웃음). 최대한 저축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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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가족과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꾸려지는 귀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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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눌러앉아 대가족을 이룬 고양이들

제가 원래 계획적인 성격이 절대 아닌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먼 미래까지 안 내다볼 수가 없더라고요. 웹툰 연재를 기획하듯이 계획을 세워놨어요. 유치원과 병원이 조금 더 가까운 언덕가 마을에 땅을 산 것도 그 때문이죠. 작금의 목표는 이사 갈 집 지을 자금을 마련하는 것!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테크를 하고 있는데(웃음), 아무래도 가장 큰 재테크는 저희 역량이 커져서 좋은 작품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거겠죠? <풀 뜯어먹는 소리> 소재는 전부 저희 일상에서 찾고 있어요. 시즌1 때야 워낙 에피소드가 쌓여 있었고, 지금은 시즌별로 20회씩 테마를 정해놓고 작업합니다. 시즌4의 테마는 ‘재테크’인데요, 다음 시즌 테마는 아마 ‘디지털 노마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디지털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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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2층에 마련한 작업 공간. 직업이 같은 부부는 멀리 떨어져봤자 7m다 (우) 만화책과 피규어, 게임 소프트, 레고 등 부부의 컬렉션. 아이들이 노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풀 뜯어먹는 소리>에서 ‘천도복’으로 등장하는 그림 담당 주태희입니다. 통나무집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서 참 좋은데 층간소음에 취약해요. 1층은 생활공간, 2층은 작업실로 나눠도 아이들이 심하게 울면 일하다 말고 내려가는 이유죠. 대신 목요일과 금요일은 애가 울건 세상이 무너지건 꼼짝없이 2층에 붙어 있어요. 매주 토요일 연재라 이때가 마감이거든요. 너무 어머니(포도알)께 의존하는 것 같아서 언제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도록 5화 때부터 모든 작업을 디지털로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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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이패드 프로로 채색하는 모습 (우) 출근을 안 해서 행복한 부부. 월요일의 나는 화요일의 나에게 맡길 뿐!

종이에 그려서 스캔하거나 신티크나 그라 파이어같이 모니터와 연결해서 쓰는 도구를 써왔는데 휴대가 힘들잖아요. 과감히 처분하고 아이패드 프로로 작업 환경을 바꿨죠. 요즘엔 ‘클립스튜디오’같은 좋은 드로잉 앱이 많거든요. 얼마 전 친구가 결혼했는데 하필 딱 마감날인 거예요. 물론 다 못 그렸죠(웃음). 정말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식장 가서 결혼식 시작 전까지 아이패드로 부랴부랴 그려서 전송했답니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이 가능은 해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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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저희끼리 ‘4시간 생산, 4시간 소비’라는 비장의 수를 씁니다. 4시간 동안 뭐든 할 수 있되 커뮤니티와 채팅앱만 쓰지않는 거예요. 운동을 해도 좋고 일을 해도 좋고 공부를 해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다! 선택권을 제한하고 자유를 주면 저는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글을 쓰게 되더라고요. 육아하면서 자기계발을 거의 못했는데 이렇게 하면서 많이 리프레시가 돼요. 나머지 4시간요? 신나게 노는거죠. 이렇게 하면 1시간만 소비해도 충분히 논 것 같은 포만감이 들거든요. 나 오늘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했으니 이제 내려가서 아이들이랑 놀아줄까? 이렇게 연결되는 거죠.

탈(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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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자란 오이와 방울토마토

예나는 4살이에요. 3살 미나랑 엄마랑 아빠랑 기니피그랑 고양이랑 통나무집에 살아요. 밤에 코 자기 싫어서 나가자고 하면 아빠는 마당에서 별을 보여줘요. 엄마는 불꽃놀이를 해주고요. 마당에서 치는 물장구랑 가끔 보는 반딧불이도 좋지만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건 택배 아저씨! 맨발로 뛰어가서 반겨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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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넓은 마당에서 흙을 만지고 신나게 뛰어놀 자유 (우) 미나가 없는 틈을 타 미끄럼틀을 점령한 예나

예나랑 미나는 ‘여자답다’가 뭔지 몰라요. 아는 오빠 옷도 물려 입고 트럭 장난감도 갖고 놀아요.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고 늘 강조해요. 남과 경쟁할 필요도 없대요. 4차 산업 시대에서 살아갈 우리에게 엄마 아빠의 체험에 근거한 지식을 강요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면서요. 그저 신나게 놀고 행복하게 자라라고요. 시골이라서 가능한 걸까요? 엄마는 메르스나 수족구병처럼 유행병이 돌 때 우리가 안전한 게 가장 안심인가 봐요. 그런데 우리가 열이 심하게 나면 소아과가 멀어서 힘들어해요. 아마 언덕가 마을에 새집을 지으려는 것도 예나랑 미나 때문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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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은닉 중인 개구리. 벌레는 많지만 의외로 집안으로 들어오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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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씻으랬더니 물장난 중인 막내 미나. 지하수라 꽤 차갑다

우리가 잠들면 엄마 아빠는 공룡을 잡아요. 닌텐도3DS랑 플스로 ‘몬스터헌터 4G’랑 ‘몬스터 헌터월드’를 하거든요. 크레마카르타랑 스마트폰으로 책을 보기도 해요. 종이책은 우리가 자꾸 찢어서 이제 전자책을 더 많이 보실 거래요. 요즘은 자꾸 집 없이 크루즈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크루즈 여행 갈까?’ 물어봐요. 크루즈나 오리엔트 특급열차 같은 기차 안에서 마감을 하고 싶대요. 엄마 아빠의 꿈이 이루어질까요? 통나무집의 시간은 오늘도 천천히 흘러갑니다.

 

글 이현화 사진 문덕관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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