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불꽃 지포

[비즈]by SRT매거진

‘딸깍’ 경쾌한 소리를 내며 세계인의 가슴을 설레게한 라이터의 대명사, 지포. 올해로 87주년을 맞이한 지포의 인기는 평생 AS 정책과 생동감 넘치는 마케팅이 이뤄낸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포의 제품은 결코 흡연자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기에.

잘 작동되거나, 무료로 수리해주거나

대중이 브랜드를 생각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의 제품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구축하는 기업의 숙원사업. 예를 들면 시계는 롤렉스, 햄버거 하면 맥도날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듯, ‘도구’ 자체가 브랜드만으로 불리는 건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포(라이터)는 수많은 기업이 부러워할 대상이다.


지포는 지난 193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도시인 브래드퍼드에서 탄생했다. 당시 지포의 창시자인 블레이즈델은 양손으로 사용해야 했던 호주산 방풍 라이터(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기능)의 불편함과 약한 충격에도 쉽게 찌그러지는 내구성을 보완해 직사각형 외형에 한 손으로 여닫을 수 있는 지포라이터를 개발한다. 지포의 경첩을 외부에 달아 상·하부를 여닫을 수 있는 놀라운 아이디어는 1936년 경첩을 내부로 숨겨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지포의 방풍라이터는 출시 당시 세계인을 놀라게 한 혁명에 가까운 제품이었다

그러나 지포의 ‘진가’는 예기치 못한 전쟁 중 드러났다. 제작 당시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물에도 강한 화이트 가솔린을 원료로 사용한 탓에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거친 환경에서도 역할에 충실한 지포는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군납품으로 거듭났다. 이처럼 군에서도 인정받은 견고함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육군 소속 안드레즈 중사가 적의 공격 중 맞은 총알이 지포 라이터에 박혀 생명을 구해 유명세를 얻었다. 이 사연은 미국의 대표 시사 매거진 <라이프>에 실린 바 있다.


또한 “작동하지 않으면 무료로 고쳐준다”라는 평생 AS 정책은 초창기 부터 이어진 지포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판매된 제품은 5억 개 이상으로 이중 약 1.6%만이 수리를 받았을 만큼 지포는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소비자가 발송비만 부담하면 수리가 불가능할 것 같은 제품의 품질 보증 서비스도 제공하니 진정 고객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 줄아는 기업이다.

라이프스타일러를 위한 아이템으로 변신한 라이터

2000년대에 들어서며 세계적으로 금연 열풍이 불기 시작하자 지포는 ‘불’이 지닌 핵심을 변주하기에 이른다. 바로 ‘핸드 워머’(손난로)였다. 많은 이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며 주말이면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인구가 늘자 지포는 2010년 손난로를 제작해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2011년에는 극한 환경에서 불을 지필 수 있는 ‘Fire Starter Kit’(불꽃을 내어 불을 지피는 도구)와 ‘토치’를 출시해 다양한 캠핑 기어 및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라이터 못지않은 관심을 끈 지포는 부탄가스 라이터, 시계, 향수 등 빛과 열기를 제공하는 제품 확대 에도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는 지포가 자신들의 기술력이 급변하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꿰뚫은 영리한 전략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 뮤즈가 되다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한 한정판 지포는 하나쯤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시크한 디자인을 갖췄다

“불꽃은 내 예술에 진정한 영감을 주는 존재다.” 지난 2017년 캐나다의 천재 화가 스티븐 스파주크는 불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며 지포를 향한 애정을 밝혔다. 이렇듯 지포는 수십 년간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는 소품으로 사용됐다. 이는 전부터 지포가 실시한 프로젝트였고 장르의 한계는 없었다. 롤링스톤스, 할리데이비슨, 짐빔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까지 음악, 주류, 기업의 정체 성을 수놓은 ‘작품’을 출시하며 대중의 소장 욕구를 높였다.

(좌)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와도 협업한 한정판 지포는 브랜드를 향한 국내 마니아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ASMR 콘텐츠 개발에도 힘쓰는 지포의 마케팅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한 놀라운 마케팅 중 하나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 (주)로보트태권브이와 협업해 10대부터 60대까지 아우르는 ‘태권브이’ 헤드 엠블럼이 부착된 라이터를 선보였다. 끝이 아니다, 지포는 지난해 유튜브 영역에도 손길을 내밀었다. 지포 라이터를 열 때 들리는 ‘딸깍’ 소리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콘텐츠가 되어 수많은 유튜버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자발적인 지포 마니아들로부터 시작한 이 콘텐츠를 기념하기 위해 지포는 버즈피드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인류의 3대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불’ 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지포. 가장 원초적인 아이템일수록 변화는 어렵지만 지포는 친절함이 깃든 ‘공존’을 택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의 유통기한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글 유재기 협조 지포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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