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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봄날의 멸치 맛을 찾아
홀로 여행을 떠났다

bySRT매거진

봄날의 멸치 맛을 찾아 홀로 여행을

이번 멸치 미행(味行)은 우연히 본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어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림에서 보여주듯 어살은 어전(漁箭)이라고도 하는데 수심이 얕은 바닷물에 가는 나무 말뚝을 담처럼 빽빽이 둘러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이 어살 주변에 물고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물새들이 모여들고, 어살 안에 들어간 어부 두 사람이 채반에 담긴 물고기를 어살 너머로 건넨다. 배에 실린 항아리는 아마도 어살에서 건네받은 물고기를 보관하는 용도일 것이고, 또 한가운데 떠 있는 배도 항아리에서 뭔가를 작업 중이고 항아리 주변에는 솥 같은 것도 눈에 띈다. 멸치 같은 고기를 잡았다면 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불을 피워 조리를 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어살 같은 원시어업이 오늘날 멸치를 잡는 죽방렴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다. 지난 2010년 국가지정 명승 71호로 지정된 ‘죽방렴’이다. 죽방렴은 남해 지족해협에 대나무 그물망을 쳐놓고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그 속에 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어살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결국 죽방렴 멸치로 이어졌다. 마침 일 년 중 멸치가 가장 맛있는 봄이기도 하다.

 

멸치는 현재 우리나라 연근해 물고기 중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으로 봄 멸치를 으뜸으로 꼽는 이유가 있다. 어른 손가락만한 두께에 몸길이가 최대 15cm까지 성장해서 살코기가 먹을만하고 뼈도 연해서 발라내지 않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멸치 산지인 부산 기장을 비롯해 죽방렴 멸치로 유명한 남해와 여수에서는 멸치를 회나 회무침, 또는 통째로 구이를 해 먹는가 하면 쌈밥 위에 얹는다. 쌈밥도 가지가지라지만 봄 멸치를 쌈으로 입안 가득 넣으면 얼마나 호쾌할까? 혼자서 호쾌하게 멸치쌈밥을 먹기 위해 호기롭게 멸치 미행을 시작했다.

봄이 무르익으면 대변항의 멸치 맛도 무르익는다

멸치는 잡는 시기에 따라 봄 멸치와 가을 멸치로 나뉘고 크기에 따라 세멸ㆍ자멸ㆍ소멸ㆍ중멸ㆍ대멸로 구분한다. 봄철 부산 기장 연안을 비롯한 남해안 바다에서 잡는 멸치가 바로 대멸치이자 봄 멸치다. 부산 대변항 어선들은 인근 바다에서 유자망으로 멸치를 잡는데, 멸치를 수확한 다음 항구로 돌아와 멸치털이 작업을 벌인다. 작업자들에겐 고된 작업이지만 그물 위로 춤추듯 날아오르는 멸치는 봄철 대변항을 찾은 관광객에게는 눈길을 사로잡는 장관을 연출한다. 사진은 국내 최대 멸치 산지인 대변항의 멸치털이 작업이다. 대변항은 매년 봄 멸치 축제를 성대하게 치를 정도로 멸치가 유명하다. 이맘때면 멸치구이, 멸치회무침, 멸치찌개, 멸치쌈밥, 멸치젓갈 등을 찾는 손님들로 항구 전체가 북적인다.

단배추와 함께 끓인 용암할매횟집 멸치찌개

봄날의 멸치 맛을 찾아 홀로 여행을

봄 멸치를 크게 한 쌈 싸 먹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산 기장 대변항. 봄날 기장 대변항에 가면 유자망으로 잡은 멸치를 이불 털듯 털면 팔딱팔딱 그물 위로 날아오르는 봄멸치의 장관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이번 멸치 미행의 흥을 더욱 부추겼다.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멸치털이 작업을 둘러본 후 맛보는 멸치쌈밥은 얼마나 황홀할까? 이런 호기로운 기대에 잔뜩 부풀어 부산행 첫 SRT를 타고 부산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대변항에 이르니 바닷바람이 거셌다. 보통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면 새벽에 조업을 나갔던 멸치잡이배들이 항구로 돌아와 멸치털이를 시작한다고 했으 나, 이날은 어쩐 일인지 대변항이 한산했다. 해안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멸치젓갈집들마저 고요 했다. 멸치털이는 언제 볼 수 있는지 한 배를 찾아가 뱃사람에게 묻자, 오늘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 모두 멸치잡이를 나서지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에 담고 싶었던 멸치털이는 그렇게 좌절되었지만 멸치쌈밥은 언제라도 맛볼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대변항 주변의 많은 횟집 중 토박이 가게인 용암할매횟집을 찾았다. 황순분 할머니가 40년째 여전히 주방을 지키고 있다. 멸치찌개는 테이블에서 끓여 먹는다. 찌개 냄비 뚜껑을 열자 흥건한 국물 속에 집게손가락만한 멸치와 대파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먼저 찌개 국물을 맛보니 달큰하고 구수하다. 멸치 사이를 헤치니 부드럽게 익은 배추가 보인다. 보통 멸치찌개에 우거지나 시래기를 넣는데 이집은 단배추를 넣어 달큰하고 시원한 맛을 더했다. 상추 위에 밥과 배추를 얹고 멸치 두어 마리와 쌈장을 곁들여 한입 크게 쌈을 싸 먹으면 멸치 뼈가 전혀 거슬리지 않고 씹을수록 구수하다.

08:00~20:00, 부산 기장군 기장읍 기장해안로 615, 051-721-2483

남해 미조항에서 찾은 묵은지 멸치찌개

봄날의 멸치 맛을 찾아 홀로 여행을

부산 기장에서 구수한 국물의 멸치찌개와 쌈밥을 맛보고 다음 목적지인 남해로 향했다. 부산 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인 남해공용터미널에 도착해 먼저 미조항에 도착했다. 남해 멸치라고 해서 모두 죽방렴으로 잡는 것은 아니다. 남해군에 따르면 보통 4월에 시작해 6월까지 남해 근해에서 어망으로 멸치를 잡는데, 미조항이 남해 멸치의 대표적인 산지다. 매년 5월에는 멸치축제를 성황리에 열 정도로 미조멸치는 알아준다. 미조항 일대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멸치쌈밥을 먹었다. 횟집들이 즐비한 미조항 주변 식당 중에서 소영횟집을 찾았다. 시어머 니가 운영하던 식당을 며느리가 이어받아 2대째 운영하는 아주 작은 횟집이다. 이 집 멸치쌈밥은 시래기도 우거지도 아닌 곰삭은 묵은지가 나온다. 첫 맛은 크게 끌리지 않지만 시큼한 묵은지에 두툼한 멸치를 감싸 먹다 보면 알싸하고 개운하다. 멸치뼈가 억센 편이어서 물으니, 식당 주인은 5월에 잡은 멸치가 쌈에 싸 먹기엔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4월의 멸치는 여리고 작고 6월의 멸치는 뼈가 억세진다. 그래서 보통 제철에는 생물 멸치를 쓰고 이후에는 5월 멸치를 일년 내내 저장해 요리한다.

07:00~20:00,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송로 46, 055-867-1706

죽방렴 멸치로 차린 성찬, 우리식당의 멸치쌈밥

봄날의 멸치 맛을 찾아 홀로 여행을

이른 아침 남해군 창선면 창선대교를 건넜다. 창선대교 위에서 내려다 보니 물살이 거센 몇몇 지점에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죽방렴은 수심이 얕고 물살이 빠른 곳에 말뚝을 V자 모양으로 박는다. 그리고 V자 끝 부분에 둥근 모양의 대나무 그물(통발)을 설치해놓으면 밀물 때 통발문이 열리고 썰물때 닫히면서 멸치가 들어간다. 그러면 어부들이 하루 두세 번 통발에 들어가 뜰채로 멸치를 건진다. 이렇게 죽방렴에서 잡은 멸치는 거센 지족해협 물살에서 움직이던 멸치라 육질이 탄탄하고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다. 죽방렴 멸치가 최고급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해 지족마을에 자리한 우리식당은 남해 토박이들도 추천하는 집이다. 무엇보다 1인 메뉴로 구성되어 있어 혼밥러들도 마음 놓고 주문하기 좋다. 이른 아침부터 멸치쌈밥을 주문했다. 구수한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있으니 멸치쌈밥 한 상을 차려준다. 김치 세 가지, 마늘장아찌, 쌈채소와 고추, 멸치젓과 마른 멸치조림, 나물과 모자반 등 따라 나오는 반찬이 그득하다. 양념한 무시래기와 죽방렴 멸치를 넣고 자박하게 졸인 찌개에 올라온 죽방렴 멸치는 은빛을 뽐낸다. 그물로 잡은 멸치는 터는 과정에서 은빛 비늘이 상하기 쉽지만,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우리식당 멸치쌈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상추에 밥과 시래기와 멸치를 올리고 마늘장아찌를 넣어 먹거나 잘 곰삭은 멸치젓을 넣어 싸 먹는 방법이다. 크게 한입 넣으니 입안에서 고소한 봄이 밀려든다. 남해를 찾는다면 멸치쌈밥은 반드시 맛봐야 한다.

08:00~21:00,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7, 055-867-0070

고사리와 어우러진 여수 미소쌈밥의정어리쌈밥

봄날의 멸치 맛을 찾아 홀로 여행을

남해 우리식당 죽방렴 멸치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남해를 떠나 여수로 향했다. 4월의 여수는 아직 멸치 어획이 활발하지 않고, 멸치 살도 통통하게 오르지 않아 냉동멸치를 사용하지만 생물 멸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갓 잡은 생물 멸치가 아니면 어떠리, 남도의 멸치쌈밥에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여수에서는 멸치쌈을 정어리쌈이라고 부른다. 여수 미소쌈밥은 쌈밥 하나로 여서동에 쌈밥거리 부흥을 일으킨 집이다. 신은숙 대표는 매일 여수항에서 그날그날 들어오는 싱싱한 고등어와 멸치를 조려 쌈밥을 내는데 멸치는 5월부터 생물 멸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어리쌈밥이 나오기 전 등장하는 반찬들은 꽃게를 넣은 된장찌개를 비롯해 마늘장아찌, 깻잎장아찌, 자반, 콩나물무침 등 반찬이 10여 가지다. 남도의 후한 음식 인심이 느껴진다. 미소쌈밥의 멸치는 납작한 냄비에 우거지와 고사리를 넣어 바특하게 조린 조림 스타일이다. 살이 통통한 고사리가 봄조기만큼이나 봄멸치와 잘어울린다. 이 집의 멸치쌈은 대접에 멸치살과 양념을 비빈 후 싸 먹어도 좋고, 마늘장아찌를 얹어 먹어도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도 쌈 속에 갈치속젓을 살짝 곁들여보시라. 구수하고 달큰하고 칼칼한 멸치에 감칠맛이 폭발한다. 쌈밥을 먹다 보면 식당 이름처럼 미소가 절로 나온다.

 

글•사진 문경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