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여행작가 힐링 섬 기행

욕지도에서 해를 보며
새롭게 시작한다

by김선인

욕지도에서 해를 보며 새롭게 시작한다

욕지도의 한자어는 하고자할 욕(欲) 알 지(知) - ‘알고자 하거든’이다. 섬 이름이 범상치 않다. 단순히 들리는 소리로 판단하면 거슬릴 수도 있는 이름이 알고 보면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 불경에 ‘욕지연화장두미문세존 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 - “연화세계를 알려고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세존께 물어보라!” 라는 말이 있다. 통영 항에서 떠나는 이 뱃길에 욕지, 연화, 두미, 세존도가 있으니 불경의 오묘한 뜻이 섬 이름에 모두 담겨져 있다. 더해 미륵도와 반야도도 있다. 통영 앞 바다에 불교의 깊은 뜻이 담긴 이름을 가진 섬들이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연화세계는 이상향, 유토피아, 샹그리라, 파라다이스이니 욕지도로 가는 길은 연화세계라는 화두를 잡고 떠나는 여행이다. 섬은 육지에서의 생존경쟁, 억압, 차별을 피해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평화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땅이니 불국토요, 연화세계인 셈이다. 섬으로의 여행은 마음속에 자라잡고 있는 이상향 - 연화세계를 바라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욕지도로 가는 배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욕지도는 들쑥날쑥 해안선의 변화가 많고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부분도 있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다. 천황봉을 비롯해 여러 개의 봉우리가 어우러져 멋진 트레킹 코스를 만들면서 섬의 풍치를 올려준다. 섬이 크고 지형이 다양하니 볼 것도 많다. 북쪽의 대풍바우쉼터에 앉으면 통영 앞 바다에 떠 있는 여러 섬들의 조망이 활짝 펼쳐진다.

욕지도에서 해를 보며 새롭게 시작한다

남쪽 새천년기념공원은 기이한 바위들을 볼 수 있는 곳이며, 내외초도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의 명소다. 세 개의 바위로 된 삼여도가 보이는 곳이다. 서쪽의 도동 일대는 낙조의 풍경이 아름답다. 욕지도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한 섬에서 다 볼 수 있어 해돋이와 해넘이의 의미를 함께 새겨 볼 수 있다.


매일 뜨고 지는 해는 하나의 해이지만 보여주는 정경은 지역, 기후, 계절, 시간에 따라 천의 얼굴을 보여준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기에 항상 새로운 일출과 일몰을 맞으러 떠나는 맛이 특별하다. 망망대해 동해안에서의 해돋이가 단조로우면서 힘차 남성적이라면 서해안이나 남해안에서의 일출은 점점이 박혀 있는 섬 사이로 수줍게 떠오르니 여성적이다. 해가 뜨면서 만들어내는 역광의 무채색 선은 단아한 여인의 치맛자락의 선처럼 유려하다. 서해나 남해의 섬에서 맞는 낙조는 슬프게 아름다울 때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찬란함과 화려함으로 장관을 이룬다.


일출과 일몰은 세상이 생기고 억겁의 세월동안 매일 한 번씩 반복되어온 자연현상인데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새삼스러울 수가 있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동쪽으로 향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해는 나오고 사라지기 전, 하늘이란 종이에 색칠을 한다. 신비로워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림은 장소와 때에 따라 다르다. 그림은 기다림 속에서 볼 수 있다.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은 짧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지 않다. 해는 기다림의 의미를 생각하라고 뜨고 지면서 그림을 그리고 서곡을 연주한다.

욕지도에서 해를 보며 새롭게 시작한다
욕지도에서 해를 보며 새롭게 시작한다

수없이 좌절하고 실패하면서 사는 것이 삶이다. 그럴 때마다 몸과 마음은 졸아들고 숨고 싶어진다. 고통 속에서 방향을 잃고 깜깜한 곳을 헤맨다. 어둠 속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 해돋이를 바라보면 마음이 새로워진다. 밝고 붉은 해는 그 자체로 어둠 속에서 탈출하라는 자연의 강력한 주문이자 계시다. 떠오르는 해로부터 기운을 받으면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지친 삶에서 꽃이 다시 핀다.


해넘이 앞에 서면 끝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다른 의미로는 새로운 세계의 시작점이 된다. 쉼과 돌아봄이 시작되는 시간이며 내일 해가 뜨면 다시 뛰어오른다는 결심이 시작되는 때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장밋빛으로 싸여 있다. 긍정과 낙관의 세계 속에 머문다. 희망의 불을 밝힌다. 해는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매일 보여준다.


욕지도에서 뜨고 지는 해는 섬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장엄하고 경이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해를 바라보며 삶에서의 ‘한 생각’을 품으려고 하는 이는 일상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여행작가 2016년 1월-2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