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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모두에게 하나쯤은 간직된 첫 떨림의 기억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화, 플립(Flipped)

by디아티스트매거진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

영화 '플립(Flipped)'의 포스터

자그마치 이른바 ‘강제개봉’이라는 관객들의 성화로 7년 만에 국내에 정식 개봉된 영화가 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영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SF영화도 아닌 잔잔하고도 서정적이었던 모두의 어린 날을 추억한 영화, <플립(Flipped)>이다. 어린 소년, 소녀의 가슴 따뜻해지는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매료시킨 제작자는 로브 라이너, 우리에겐 영화 <미저리(Misery, 1990)>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1989)>로 더 친숙한 감독이다.

 

다름 아닌 7년 만에, 그것도 관객들의 개봉 요구로 당당하게 스크린을 차지한 영화 <플립>은 어느덧 보름 만에 30만 관객을 사로잡았고, 이는 재개봉된 명작 <이터널 선샤인>의 기록을 곧 깨뜨릴 전망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2010년 개봉된 영화가 2017년에 들어서야, 국내 극장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사랑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웠던 어린 시절 속의 영화 <플립>의 관전 요소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

영화 '플립(Flipped)'의 스틸컷 中

영화는 7살의 어린 두 주인공, 소년 브라이스와 소녀 줄리의 관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서사를 진행시킨다. 브라이스는 낯선 동네로 이사 오게 되면서, 앞집에 사는 호기심 왕성한 줄리를 처음 만난다. 두려움 반, 낯섦 반의 브라이스 앞에 줄리는 천연덕스럽게 친한 척을 하며 다가오고, 브라이스는 적극적이고 당돌한 줄리의 행동들에 오히려 아연실색한다. 줄리는 첫눈에 브라이스에게 반하고, 자신의 첫키스 상대임을 확신한 상태에서 들떠있지만 브라이스는 전혀 줄리에게서 그러한 첫인상을 느끼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정반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날카롭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주 완벽했던 첫인상을 간직한 채로, 브라이스와 줄리 두 집안의 가족들이 이웃을 형성하면서 줄리는 더욱 신이 나서 브라이스를 따라다닌다. 하필 처음 입학한 학교에서 같은 반이 된 줄리를 보며 브라이스는 자신의 학교생활이 끝났음을 직감한다. 워낙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브라이스에게 애정표현을 이어온 줄리 때문에 아이들은 두 사람을 놀리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는데, 브라이스는 이런 상황이 영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

영화 '플립(Flipped)'의 스틸컷 中

두 아이들이 같이 성장해오고 브라이스와 줄리가 함께 해 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브라이스는 줄리를 자신의 곁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한다. 브라이스는 가장 인기 있는 학교의 여자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서로가 사귀는 사이임을 줄리 앞에서 공표하기도 하고 줄곧 보란 듯이 피해 다니며 줄리를 속상하게 했지만, 줄리의 눈에는 이마저도 귀엽고 자신들의 사랑의 한 과정인 것처럼 행동하니 브라이스는 오히려 미칠 지경에 이른다. 가령 줄리가 수업시간에 브라이스에게서 수박 냄새가 느껴진다고 맡는 등의 행동을 할 때면 당장 학교를 뛰어나가고 싶은 심정이다.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

영화 '플립(Flipped)'의 스틸컷 中

모두 실패로 돌아간 온갖 브라이스의 계획들은, 의외로 다른 사건들을 통해 성과를 거두게 되는데, 그 중 먼저 겪게 되는 사건이 바로 학교 버스가 정차하는 ‘무화과나무’가 잘려버린 사건이다. 동네에 가장 큰 무화과나무는 어릴 때부터 줄리의 오롯한 놀이터이자, 자신의 가장 높은 친구였다. 나무에 올라가 마을을 한눈에 보는 것을 즐겼던 줄리는 땅이 팔려 어른들에 의해 무화과나무가 베일 위기에 처하자 학교 친구들에게 간곡하게 도움을 청하는데, 브라이스마저 자신의 부탁을 저버리고 학교버스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한다. 결국 줄리는 나무 위에서 홀로 버티며 외로운 시위를 하다가 마을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하는데, 이 사건으로 줄리는 브라이스에게 크게 상심하여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

영화 '플립(Flipped)'의 스틸컷 中

무화과나무 사건이 어린 소녀의 마음을 헤집어놓고 그 상처가 서서히 아물 때쯤, 둘 사이에 곧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계란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줄리는 과학 시간에 부화시킨 자신의 병아리들이 닭이 되어 알들을 낳게 되자, 여러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심지어 팔수도 있게 된다. 줄리는 신이 나서 가장 좋아하는 브라이스에게 자신의 신선한 달걀들을 매일 아침 선물하지만, 브라이스의 가족들이 줄리의 집에 ‘살모넬라’라는 병균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브라이스는 줄리의 달걀들을 받자마자 그대로 쓰레기통에 몰래 버린다. 하필 이 모습은 줄리의 눈에 목격되어 큰 충격을 주고, 브라이스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였음을, 줄리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변하고야 말았음을 그제야 자각한다.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

영화 '플립(Flipped)'의 스틸컷 中

자신에게 늘 퍼주기만 했던 순수한 소녀 줄리의 마음을 늦게 알아버린 브라이스는 과연 예전처럼 상황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이제 바뀌어버린 화살표의 방향은, 어린 남녀 주인공의 갑과 을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브라이스는 과연 남자아이들과의 도시락 데이트 기회를 주는 학교 자선 대회인 ‘베스킷 보이 선발대회’에서 줄리의 선택을 얻을 수 있을지, 그동안의 쌓인 앙금과 오해들을 풀고 다시 예전의 귀여운 동갑내기 커플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주목되는 영화, <플립>이다.

7년 만에 성사된 관객 강제개봉의 영

영화 '플립(Flipped)'의 스틸컷 中

이 영화는 두 아이들이 점점 커가게 되는 성장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 변화들에 가장 많은 부분들을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건, 같은 상황이더라도 줄리와 브라이스의 시점을 번갈아서 제시하고 있으며,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서로에게 도달하는 감정의 속도 차이를 아주 순수하고도 재치 있게 담아내고 있다. 사실 해당 영화는 <두근두근 첫사랑>이라는 웬들린 밴 드라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실로 소설만으로도 두 소년, 소녀의 풋풋한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되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성인이 되어버린 귀여운 아역 주인공들의 말랑말랑한 감정 연기는 올 여름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고, 옛 기억으로 회귀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다. 어느 누구라도 한 번쯤은 아주 어렸던 자신들의 기억 속에서, 소중히 잠들어 있던 이야기를 꺼내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쟁쟁한 최신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 영화는 강제 개봉이라는 타당한 이유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생영화'라고 기억되고 있는 이 영화를, 지금 바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디아티스트매거진=민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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