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인 듯 제목아닌 제목 같은 너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제목인 듯 제목아닌 제목 같은 너

무제전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우리가 미술관에 방문할 때 가장 많이 마주치는 제목을 꼽자면 단연 그 일 순위는 ‘무제’일 것이다. 한 전시 당 높은 확률로 하나 이상의 작품은 <무제>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단지 제목에 번호만을 붙여놓은 <무제>와 다를 바 없는 제목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다. 이런 제목인 듯 제목 아닌 제목 같은 너, 우리에게 아무정보도 주지 않는 <무제>라는 제목을 단 작품을 모아서 국립현대박물관 과천관은 전시를 열었다. 전시의 제목 또한 <무제>로 정확히는 소장품 특별전_무제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이런 전시의 제목은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불친절하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어떤 작가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단지 ‘무제’라는 제목을 가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모아서 전시를 열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흥미를 이끄는 제목을 가진 제목의 전시가 아닌 이 불친절하고 그리 흥미롭지 않은 제목의 <무제>전을 방문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화려한 제목의 유혹을 뚫고 <무제>전을 방문한다면 여태까지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장 많이 마주칠 제목 <무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을 만드는 이 전시의 특별한 점은 관객참여공간이다. 전시의 곳곳에는 작은 종이들이 잔뜩 꽂혀있는 벽면이 있다. 얼핏 보기에 지나치기 쉬운 그곳은 사실 제일 지나치면 안 되는 곳으로 관객들에게 ‘제목달기’를 요구한다. <무제>라는 제목 없는 작품들로만 이루어진 이 전시의 작품들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제목을 달고 그곳에 달아놓는 것이다. 이 작은 공간은 처음엔 장난처럼 아무 말이나 써놓고 지나가게 되지만 하나 둘 제목을 달다보면 어느새 작품을 더 유의 깊게 보고 각각의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게 만든다. 제목이 없기 때문에 제약도 선입견도 없다. 단지 내 느낌과 생각으로 나름의 제목을 짓는 과정은 또 한명의 작가가 되는 능동적 감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출구 쪽에 전시되어 있는 작가가 무제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가 나오는 영상 속의 말처럼 관람객은 각각의 생각을 발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제목인 듯 제목아닌 제목 같은 너

엄태정, 무제, 2004

하지만 <무제>전의 이 공간이 주는 가장 특별한 점은 따로 있다. 바로 다른 관람객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시를 볼 때 미리 감상을 찾아보고 갈 수 도 있고 다녀와서 후기를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전시장 밖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동행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소수이고 미술관의 특성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결국 전시장 안에서의 감상은 오롯이 작품과 이루어진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이 지은 제목이 걸려있는 이 공간은 전시장 내부에, 또 하나의 전시물로서 있는 만큼 작품과 마주하고 있는 ‘현재’에 기능한다. 앞서 다녀간 다른 관람객들이 달아놓은 제목을 보며 다들 생각은 비슷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잘 지은 제목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는 이 과정에서 관람객은 작품을 보다 풍부하고 재밌게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작가의 생각이 아니니 절대적이지 않고 또 나의 생각을 걸 수도 있으니 진정한 의미의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이다. 많은 미술에서 관객참여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지만 이렇게 전시구성의 하나로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 공간은 불친절한 ‘무제’라는 제목의 생각을 바꾼다. 불친절한 정보제공에 답답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생각하고 다른 관객과 소통하게 된다. 그럼 깨닫게 된다. 무제라는 이름 속의 ‘소통’을.

제목인 듯 제목아닌 제목 같은 너

정경연, 무제, 1986

*전시정보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2전시실, 2015.5.4-2015.7.26

 

[디아티스트매거진=최보영]

2015.07.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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