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나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나

Zoe Leonard, Strange Fruit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 -주인공인 현수(권상우 분)의 아버지(천호진 분)가 공부는 등한시한 채 팝송과 기타 치는데 빠져있는 아들을 야단치는 대목에서- '잉여'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너 이걸 성적이라고 받아온 거야?" (...) 잉여 인간이야,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 이 새끼야!"

 

무능한 탓에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도태되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떨거지를 일컫는 말 잉여인간. 그나마 영화가 재현하는 시대 배경에서는 대학만 들어가면 최소 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듯이 말하지만 필요한 수요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넘치는 요즘 같은 현실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아와도 먹고살기 요원하다.

 

얼마 전 한 똘똘한 동생이 귀띔해주길, 딱히 쓸모없는 존재를 두고 "이쁜 쓰레기"라고 부른다 했다. 잉여인간을 좀 더 은유적으로 부르는 말인 듯싶다. 어쩜... 사람들은 말도 참 잘 지어내지. 이쁜 쓰레기라니...! 나는 짧은 외마디 탄식과 함께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정녕 가슴에 콕- 박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차마 죽어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다고 하기엔 산송장과 다름없이 사는 내 꼴을, 누가 이쁜 쓰레기라고 굳이 불러주지 않을 들 내가 모를까.

 

그러나 나는 항변하고 싶다. 나의 잉여성은 단지 나의 무능함 탓만은 아니라고. 나의 역량과 상관없이 나를 원치 않는 나보다 몸집이 훨씬 더 큰 괴물의 힘에 밀린 거라고. 나는 이 괴물이 요구한 조건에 굴종하지 않은 대가로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거라고. 그러니 어디에 소속되기를 바라느니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앞으로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고. 이제 별수 없이 창조자이자 장인이 되게 생겼다고. 깔깔깔-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나

Zoe Leonard, Strange Fruit

여기 이상한 열매가 있다. 바싹 마른 열매의 껍질은 실로 꿰매 져 있고, 벌어진 입에는 지퍼와 단추가 달렸다. 조 레너드(Zoe Leonard)의 미술작품이다. 작가는 미국 출생으로 15세에 학업을 중퇴하였고 주로 뉴욕에서 사진과 설치미술을 선보인다.

 

"열매는 전쟁이 낳은 사물들이다, 그 제목은 남성 동성애자들, 이상한 산물,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가리키는 추악한 은어인 열매에서 따왔다."* 에이즈 질병에 따른 상실, 거부당한 존재의 고립, 배제, 침묵시키기, 예술가 워나로워츠의 죽음,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려다가 탈진한 것에 대한 반응.... 버려진 것들에는 조 레너드 자신도 포함된다. 그는 말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나 스스로를 다시 꿰매 붙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못했다. (...) 나는 물건을 낭비하는 데 지쳤다. 늘 내버리는 것들 말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오렌지 두 개를 먹었는데, 껍질을 그냥 내버리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냥 무심하게 그걸 꿰매어 복원했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나

Zoe Leonard, Strange FruitZoe Leonard, Strange Fruit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나

Zoe Leonard, Strange Fruit

헌데 이 기워진 열매에게서 이상하리 만큼 격렬한 힘이 느껴진다. 하얀 좌대위에 가만히 놓여 있을 뿐인데 법과 순리를 깨고자 하는 저항의지라고 할까 배제된 존재가 느끼는 울분의 토로라고 해야 할까... 여하간 열매를 보노라면 어떤 것에 대한 갈망과 상실된 고통이 그대로 몸에 전달된다. 왜소하고, 말이 없고, 혼자이고, 군데군데 균열과 상처가 있고, 곧 완전히 썩어서 없어져 버릴 사소한 존재... 아름답지도 않으며 하릴없이 남아도는 잉여인간의 아픔.

 

꼭 쓸모가 있어야 할까. 정녕 쓸모 있는 것이 아름다운 걸까?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테오필 고티에가 쓸모 없는 나를 품어 안고 위로한다. "아름다운 것이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성의 아름다운 용모, 음악과 그림의 아름다움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다. 유용한 것은 모두 흉측하다. 유용하다는 것은 필요가 있다는 것이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자체의 보잘것없고 나약한 본성처럼 비천하고 역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장 유용한 장소는 변소다."***

 

나는 버림받은 아이처럼 내쳐졌다. 하지만 나는 던져진 나를 다시 주워와 하염없는 사랑을 부어주고 싶다. 세상으로부터 열렬히 환영은 받지 못하더라도, 어느 편에 노골적으로 속하지 않아도,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나에게 정말이지 세상 제일 어여쁜 아이를 보듯이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모든 상처에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모든 흉터가 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참고문헌

* 올리비아 랭 지음,『외로운 도시』,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2017, p.362.
** 위의 책, p. 367.
*** Théophile Gautier, Mademoiselle de Maupin(1835-36), 피터 게이 지음, 정주연 옮김, <모더니즘>, 민음사, 2015, pp.100-101에서 재인용 함.

양효주 칼럼리스트

2017.11.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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