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여행]by 디아티스트매거진

6개월을 적도 부근에서 지내다 갑자기 남쪽으로 멀게 이동한 탓에 차가워진 공기로 잠들지 못했던 멜번을 뒤로 한 채 다시 노던 테리토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그간의 여행으로 새로운 곳을 향할 때의 설렘이 줄었음에도 유난히 두근거리는 이유는 아마 목적지가 울룰루였기 때문이었으리라. 호주에 도착한 이후로 항상 호주의 중심, 세상의 배꼽, 애보리진들의 성지,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과 색깔을 바꾸는 곳, 그 곳으로 가고 싶어 했으니까. 

 

멜번에서 에어즈 락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가 이륙한지 3시간이 조금 지난 뒤 나는 선 낮잠에서 깨었고 발 밑의 대지는 빅토리아 주의 푸르름에서 다시 낯익은 북호주의 붉고 노란 모래와 그 모래가 어지러이 얽어낸 무늬들로 바뀌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저 멀리 울룰루의 모습이 보였다. 큰 바위였다. 저 것이 전부인가도 싶었지만 어쨌든 에어즈 락 리조트 내에서 가장 저렴한 백팩커로 가는 버스가 있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옆 자리에는 비행기에서 내 뒷 자리에 앉아있던 여성이 있었다. 우리는 여느 여행자들이 항상 그렇듯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아웃백 파이어니어 백팩커까지 자신을 태우러 올 것인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 물었고 목적지가 같았던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미얀마 사람이었다. 호주에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고 시민권은 캄보디아 국적인데 호주에 오기 전에는 싱가폴에 잠깐 살았었다 했다. 남자의 부모님은 하와이에 살고 있는 미국 시민권자인데 지금 호주로 여행을 와있으며 그녀와 남자와 남자의 부모님은 그들이 나를 태워준 조그만 경차로 울룰루에서 애들레이드까지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잠깐의 자기소개에 5개국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사연이 많아보였고 그 사연은 미얀마의 현대사와 연관 있어보였지만 내가 미얀마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웅산 수치 뿐이었기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수치를 지지하지만 그녀가 정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고 여자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논쟁은 가벼웠고 그 사이 우리는 아웃백 파이어니어 백팩커에 도착했다. 

 

20인실 도미토리 룸이 38달러. 뜨악스러운 가격이었다. 나는 우선 결재는 나중에 하기로 마음먹고 짐을 리셉션 한 구석에 풀어놓은 다음 미얀마 부부의 차로 울룰루에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울룰루는 컸다. 당연히 작지는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사진으로 보아왔던 추정치보다 훨씬 거대했다. 에펠탑보다 높다는 사실이 무안하지 않았다. 세상의 배꼽이라는, 닳고 식상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부르도록 하는 힘이 울룰루에는 있었다. 울룰루의 주변에는 황량하고 평평한 사막뿐이었고 울룰루는 그 한 가운데에 우뚝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울룰루의 전경.

차로 울룰루를 한 바퀴 돌고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안녕을 고했다. 리셉션으로 돌아온 나는 내심 투덜대며 하룻밤에 38달러를 지불했고 방에 짐을 부려놓은 다음 리조트 내부를 순환하는 무료 버스를 타고 슈퍼마켓에 갔다. 울룰루에서 차로 20여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에어즈 락 리조트 단지에는 슈퍼마켓도 있고 은행도 있었다. 간단하게 장을 본 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렀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투어 프로그램은 가급적 많은 곳에서 가격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AAT 킹즈 투어로는 129달러이던 카타추타 투어 비용이 울룰루 익스프레스라는 곳을 이용하니 95달러이다. 모든 광고지를 찬찬히 읽어봐도 아무래도 이게 제일 저렴하지 싶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95달러를 결재하고 숙소에 돌아와 키친으로 갔더니 일본 여행객 두 명이 있다. 애들레이드에서 기차를 타고 엘리스 스프링스까지 올라와 그 곳에서 버스를 타고 울룰루까지 이른 이 일본 여행객들은 여기에서 일주일을 머물기로 했는데 듣는 나도 말하는 본인들도 그게 썩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울룰루의 장대함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볼 만큼은 아니었으니까. 함께 식사를 하고 나에게는 처음이지만 그들에게는 익숙해졌을 울룰루의 석양을 보러 우리는 울룰루 아웃룩으로 향했다.

 

울룰루에는 신비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햇빛에 따라 색깔을 바꿨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매 시간 울룰루 위에서 해는 움직였고 그에 따라 울룰루는 빛깔을 드러냈다 감추었다 했다. 낮에 보았던 울룰루는 해가 질 무렵의 울룰루와 달랐다. 울룰루에서 차로 20여분 가량 떨어진 카타추타의 너머로 아웃백의 해는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고 해가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빛을 받은 울룰루는 반은 어둡고 반은 밝은 야누스처럼 보였다. 

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호주 아웃백의 석양.

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울룰루는 햇빛에 따라 하루에도 수 십 번 그 모습을 바꾼다. 

이미 익숙한 장면일테지만 일본인들은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등장해 일본인들에게 유명해진 곳. 사쿠는 늘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울룰루에 가고 싶어했던 아키를 그곳에 데려가려 했지만 비행기는 태풍에 발이 묶이고 아키는 그만 공항에서 쓰러지고 만다. 누군가는 일생에 걸쳐 가기를 염원했지만 끝내 다다르지 못한 곳에서 그곳에 다다른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멍하니 넋을 놓고 울룰루를 바라보거나 가끔 번뜩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는 일이 전부였다. 만약 비행기가 태풍에 발이 묶이지 않았다면, 아키의 병세가 조금이라도 약했더라면, 그래서 사쿠와 아키가 이 곳에 올 수 있었더라면 그들이라고 이 말없이 오롯한 바위 앞에서 별다른 것을 할 수 있었을까. 

 

해는 카타추타의 동쪽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호주의 사막에는 밤이 찾아왔다. 아웃백의 밤은 나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6개월을 살았었고 소변을 보러 문 밖을 나설 때면 내 머리 위에는 도시의 그대들이 본 적 없을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운이 좋으면 별들이 부서져 내리며 별똥별을 만들어 내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웃백의 밤하늘은 다시 한 번 시선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었다. 별에 관해 그 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이 만들어진 이유를 충분히 알 게 해주었다. 밤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을 옛날 사람들이 하늘을 보며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카타추타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는 나와 프랑스에서 온 할아버지, 단 두 명 뿐. 시간과 일정을 맞춰야 하는 투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차가 없으니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할아버지는 프랑스의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본인이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지난 1년과 다가올 1년 사이 여행에 모두 써버릴 작정을 하고 있는 듯싶었는데 다니던 대학에 휴직계를 내고 가끔 노모를 돌보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가는 경우를 빼면 내내 여행 중인 할아버지였다. 내년 7월에 파리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이미 구입해두었다고 했는데 경주에 가보라는 말과 택시기사들을 조심하라는 말 말고는 자세히 해줄 말이 없었다. 자세히 해주었다 해도 내년 7월쯤이면 내가 해주었던 모든 말들은 이미 기억 저편에 있었을 테지만. 

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카타추타 국립공원

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호주의 애보리진 아이. 반 년을 호주 북부에서 보낸 나에게 익숙한 이들이다.

할아버지의 목표는 모든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수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다녀온 문화유산의 수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매년 그 목록이 업데이트 된다는 사실이었고 할아버지 스스로도 자신이 죽기 전에 그 모든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본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일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최대한 많이 보아두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나는 남한산성이 올해 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뉴스를 보아둔 터라 그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말해 줄 수 있어 기뻤다) 

 

할아버지는 카타추타를 걷기 시작한지 10분이 채 안되어 이곳이 울룰루보다 나은 것 같다 했고 나도 그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바람의 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영감을 얻었다. 카타추타는 정말 그랬다. 양 쪽으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 사이로 쉴 새 없이 바람이 드나드는 지점이 있었고 그 곳에서만 우리는 아웃백의 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웃백의 파리는 정말이지 끈질겼다. 끊임없이 사람의 얼굴 주위로 달라붙었고 이야기를 하다가 파리를 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귀 부근에 자주 모였는데 그 웅웅거리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때문에 카타추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양파 망처럼 생긴 그물을 사서 얼굴에 뒤집어쓰거나 내내 손을 좌우로 흔들어야만 했다. 

 

카타추타를 걷는 길은 험하지는 않았지만 목마른 길이었다. 자주 쉴 필요는 없었지만 자주 물을 마셔야했고 포인트마다 식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카타추타를 한 바퀴 도는데 약 3시간여를 소요하는 이 길의 양 옆으로 대도시의 빌딩만한 크기의 기암괴석들이 불쑥불쑥 솟아있었다. 어떤 바위 앞에서는 정말 그 기운에 짓눌리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암석들은 컸고 기운이 셌다.

 

카타추타를 한 바퀴 돈 다음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울룰루의 석양을 보는 것이었다. 울룰루의 석양을 보기 위한 장소는 여러 군데가 있고 그 모든 곳에서 울룰루는 다른 느낌을 준다. 전 세계에서 울룰루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호주의 한가운데로 끝없이 비행기를 타고 몰려 오는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해는 어제도 졌고 오늘도 지고 있으며 내일도 질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울룰루의 색과 모습은 항상 달랐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애보리진 아이 한 명이 다가와 울룰루를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어 달라 청하더니 찍어주자 마자 별 다른 말도 없이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석양을 보기 위해 간 곳에서 나는 또 다른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다. 울룰루에는 정말이지 많은 일본인들이 있었다. 그는 도쿄에서 택배 배달 일을 한다고 했다. 28살 이전에는 일본을 조금 다녀보았을 뿐 해외에 나가본 적은 없었다. 그의 친구 중에는 세계를 떠돌아본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그 친구로부터 베네수엘라에 대해 들었고 그래서 그는 베네수엘라로 떠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 그는 여행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게 되었고 계약직이었던 그의 직업을 이용해 두 달을 일하고 한 달 반 정도를 여행하는 인생을 2년 째 살고 있었다. 그렇게 26개국을 여행했다고 했다. 멋진 삶이었지만 그런 삶의 특성상 그가 두 달간 번 모든 돈을 한 달이 조금 넘는 해외여행에 모두 쏟아 붓는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역시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마 1년 정도 이렇게 더 여행을 다니고 정착해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이를 묻지는 않았지만 서른하나 둘 정도 되어보였다. 멜번에서 왔고 울룰루에 있으며 내일 모레 타즈메니아로 떠나 거기에 열흘을 머물다가 다시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나 역시 멜번에서 왔고 울룰루에 있었지만 타즈메니아가 아니라 시드니로 갈 것 이었고 한국으로 언제 돌아갈지는 기약이 없었으며 일을 구하고 정착을 생각해야하는 서른 한 둘의 나이에는 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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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쁘지는 않은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호주는 유난히 하늘과 가깝다. 느낄 수 있다.

울룰루-세상의 중심에서, 다시 한 번

넓은 평원 위에는 울룰루가 우직하게 서있었다. 

여행을 왜 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의 답은 인상 깊었다. 내가 일만을 하며 산다면 죽기 직전 내 인생은 어디에 있는 거냐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 항상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그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여행을 다닌 다고 했다. 이틀 뒤, 그는 나보다 한 시간 먼저 타즈메니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멜번으로 향했고 나는 그보다 한 시간 늦게 시드니로 향했다. 창가자리에 앉은 덕분에 비행기의 왼쪽 날개 너머로 울룰루가 보였다. 아키가 끝내 보지 못한 저 세상의 배꼽을 조금이라도 내 눈에 오래 담기 위해 나는 오래도록 뒤치락거렸다.

 

박웅 칼럼니스트 qkrdndwkd@naver.com 

2015.08.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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