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은 부자가 되고싶었다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앤디 워홀은 부자가 되고싶었다

전시회의 포스터

한 예술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작품을 많이 팔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을 많이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예술가는 그림 공장을 만들고 사람들을 고용해서 그림들을 찍어냈다. 결과적으로 그는 많은 작품을 생산해냈고 이에 따라 많은 작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예술가는 부자가 되었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명성을 누리게 된다. 그는 성공한 상업 예술가로 남았다. 이 예술가의 이름은 앤디 워홀이다.


팝 아트의 교황, 팝의 디바, 팝의 제왕 등등 20세기 가장 성공한 예술가 중 하나인 앤디 워홀을 부르는 수식어들이다. 팝 아트라는 새로운 미술장르를 개척하며 기존의 예술을 뒤엎은 워홀의 작품들은 미술 경매시장에서도 꾸준히 높은 가격을 유지하며 그 인기와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예술계의 패권을 잡기 위해 내세운 예술가, 철저하게 구축 된 신화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예술가라는 등의 이야기가 항상 워홀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의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사실이다. 미국내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갔고 그 여파는 한국까지 미치게 되었다. 앤디 워홀, 예술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들어봤을 이름이며 광고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워홀의 작품들을 접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익숙한 워홀의 작품들이 이번에 한국을 찾았고 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앤디 워홀은 부자가 되고싶었다

'캠벨수프' [출처]=Andy Warhol museum

앤디 워홀의 생애를 소개하는 첫 번째 파트를 포함하여 크게 5가지 파트로 나누어 워홀의 작품 세계를 전시를 구성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캠벨 수프>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하여 여러 유명인사들의 초상화들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전시장을 꾸몄다. 이에 더하여 4, 5 번째 전시장에서는 워홀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과 영화, 출판한 잡지 그리고 최근 발견된 워홀의 디지털 아트까지. 예술의 전 영역을 광범위하게 넘나들었던 워홀의 예술세계를 집대성 하였다.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두 가지 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캠벨 수프, 코카콜라와 같은 친숙한 소재들과 복제를 통한 대량생산, 이 두 가지 요소가 앤디 워홀의 작품들을 친근하면서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본다. 캠벨 수프를 보는 순간 ‘어! 캠벨 수프다’ 라고 인지하지만 그것은 캠벨 수프를 그린 ‘그림’이다. 그렇기에 진짜 내용물이 들어있는 캠벨 수프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캠벨 수프의 ‘이미지’를 복제하여 그림에 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림을 보자 마자 켐벨 수프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소득 수준 이나 지식 수준 혹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똑 같은 그림을 보며 똑 같은 맥락에서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이 많건 적건 똑 같은 맛의 콜라를 먹을 수 밖에 없다는 워홀의 말처럼 그림 앞에 모두 같아지게 되는 것이다. 캠벨 수프 앞에 모여있던 많은 관람객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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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출처]=Andy Warhol museum

워홀의 작품들 중 실크스크린이 가장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실크스크린이 워홀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찍은 다양한 폴라로이드 사진과 당시 창간한 <인터뷰>잡지들이 전시된 것은 물론 그가 만든 영화도 상영이 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 발견되어 최초로 한국에서 전시한다는 앤디 워홀의 디지털 아트였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넘나들던 앤디 워홀이 디지털 아트를 손댔을 것 이라는 추측은 무성하였지만 그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30년 만에 디지털 아트 작품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를 발견하였고 이를 미국의 한 대학 동아리에서 복원하였다고 한다. 사실 디지털 아트가 어떤 형식으로 전시될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워홀의 디지털 아트들은 과거의 모습으로 재현되어 컴퓨터의 화면에서 슬라이드 쇼로 재생되고 있었고 동시에 큰 스크린에도 그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픽셀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는, 과거 컴퓨터의 감성이 느껴지는 작품들 이었다. 얼핏 보면 모자이크의 효과를 내려고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디지털 아트에도 빠짐 없이 되어 있는 워홀의 서명을 보면 컴퓨터로 작품을 제작한 워홀이 새삼 신기하면서도 그래, 앤디 워홀이니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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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의 디지털아트작품 '비너스' [출처]=Andy Warhol museum

전체적으로 워홀의 생애와 다양한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전시였다고 본다. 실크스크린, 유화 등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비롯하여 앤디 워홀이 소장하고 있던 물건들까지 총 400 여 점이 전시장을 꾸며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들과 앤디 워홀을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동시에 전시되어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괜찮았다고 본다. 앤디 워홀의 이름을 건 전시이다 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워홀의 작품들을 만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이에 따라 전시장 동선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일정한 동선이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다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조금은 혼잡스럽다는 느낌도 주었다. 이에 더하여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의 특성상 작품 자체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할 공간이 잘 구축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에 전시를 보러 왔을 관객들에게 기존의 괴짜 앤디 워홀 이미지와 작품의 시각적인 효과, 그 이상으로 작용하여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아쉬운 점이 남는 다고 본다. 하지만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동시에 다양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괜찮았다고 본다. 20세기 미술계를 뒤집어 놓고 사라진 예술가 앤디 워홀. 생전 명성을 좋아하던 그는 죽어서도 명성을 누리고 있다. 본인의 전시회를 보기 위해 몇 십 년이 흐른 뒤에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저 세상에서도 워홀이 흡족해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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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있는 앤디워홀 [출처]=앤디워홀 뮤지엄

디아티스트매거진=김아름

2015.08.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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