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범 "새하얀 어둠이 세상을 덮쳤다."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국립현대미술관이 SBS문화재단과 공동주최로 개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이 2012년 개편안을 거쳐 4회째를 맞이했다. 올해 후보작가로 선정된 4명(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은 각 작가별로 나뉜 전시 공간에 최근작을 포함한 작품을 전시한 후 최종 심사를 거치게 되는데, 이 중 단 한명이 2015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다. 4명의 작가들은 차이가 생산적인 다름이 아니라, 억압과 갈등을 낳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름이 즉각 파악될 수 있을 만큼 조밀해진 세계 속에서 차이는 창조만큼이나 파괴를 야기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을 메운 작품들은 그러한 세계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착종된 도가니 속 열기를 뿜어내기에 충분했다.


필자가 평소 응원해 오던(사실 그가 최후의 1인에 선정되길 바라는 사심이 크다) 하태범(1974~)은 사진 이미지를 기반으로 영상 및 조각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사건 사고 현장을 전달하는 대중 매체와 이를 소비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재해석하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선보인다. 사진과 조각, 작업실을 재현한 설치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미디어에 노출된 재앙적인 사건, 자연재해, 전쟁 등 사고 현장들에 대한 보도사진을 수집하여 이를 흰색의 오브제로 재해석한 뒤, 미디어가 보도한 이미지와 같은 구도로 촬영하거나 특정 이미지를 클로즈업하여 작품으로 재생산한 것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사건의 실상을 전달하는 대중 매체가 아닌 일각의 정치적 태도와 그 결과물을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는 이 사회의 소비 주의적 단상을 지적한다.


주목할 점은 하태범의 모든 작품을 향한 시선의 무덤은 ‘새하얀 풍경’ 이라는 것이다. 완벽한 흰색으로 통제된 가상의 현장은 실제 사건의 현장에 남겨진 모든 부정적인 요소가 제거된 채 폭력의 잔해라고 하기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고요함이 느껴진다. 마치 초현실적인 영역에 맞닿아 있는 듯 한 사진들은 참혹한 이미지를 하얗게 정화시키고 의도적으로 생기는 여백을 통해 작가 본인의 방관적 시각을 극대화한다. 역설적이게도 작가가 흰색으로 표현한 것은 바로 어둠, 그것도 인간의 깊숙한 내면에 존재하는 불온한 무언가이다. 그래서 하태범의 작업에서 흰색은 이제껏 그것에 부여되어 온 편견들을 단번에 무색하게 만들며 건조한 냉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가 이렇게 색을 배제해버리는 것은 본래의 사건과의 관계를 끊고 그 사건이 보여준 잔혹함과 파괴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아야 했고, 그로 인해 작업 안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감정은 폭력성에 기반을 둔 것에만 집중될 수 있었다. 과연 희생자로부터 떨어져나온 폭력성이 주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늘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강하게 갖는 반면에, 만연한 그것에 대해 무감각하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더뎌지는 개인의 심성에 일격을 가하며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을 마치 게임처럼 즐기는 우리의 잠재된 모습을 대면하게 한다.

하태범 "새하얀 어둠이 세상을 덮쳤다

전시실 전경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하태범의 사진과 영상은 사건을 마주할 사람들이 느끼게 될 어떠한 걱정과 연민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스스로의 본성적 연민을 스스럼없이 하얗게 탈색해 버리는 것. 이것이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키워드 중 하나일 것이다. 구호단체는 한 달에 2만원이면 그 누군가의 생명을 수할 수 있다고 외친다. 작가 또한 소소한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구호의 손길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고 있고 우리의 삶은 점점 나아지는 것 같은데, 아직도 그들은 변함없이 배고픔과 죽음이란 공포에 떨고 있다. 다양한 매체와 커다란 전광판은 오히려 슬픔에 잠긴 어린이의 모습을 더욱 드리우고, 나날이 도움의 손길을 요구하는 광고가 늘어만 가는 것에 작가는 씁쓸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필자 또한 광고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얼굴은 단지 전쟁의 소용돌이에 희생당하는 어느 배고픈 나라에 사는 어린이들의 상징일 뿐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언뜻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전 조각을 연상시키는 인물상들은 이러한 생존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의 참담한 실상이 우리의 슬픔과 연민을 자극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물로 전락해버렸음을 표현한다.


이처럼 고도로 발단된 미디어 문명은 전 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줄 뿐 아니라 첨단 테크놀로지로 생생한 현장감까지 부여하고 있지만,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거리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하태범 작가의 전시장에서 장시간 머물면서 냉정함으로 점철된 그 ‘새하얀 어둠’이 주는 감정과 사고의 절제로 인해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온통 새하얀 작품들을 눈으로 쫒다 보면 목적과 이유를 찾던 맹목적인 시선은 이내 흩어지고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비장함만이 남았다. 시선을 거둔 그 곳에서 우리는 오롯이 진실을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태범 작가가 제시한 ‘세상의 문제를 읽는 시각’은 그렇게 베일을 벗게 될 것이다.  

하태범 "새하얀 어둠이 세상을 덮쳤다

전시실 전경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김정아 칼럼니스트  |  vivresavie66@naver.com

2015.09.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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