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피어나는 '국화꽃 향기'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온만 견딜 수 있다면 지금 가을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평화롭다고 느껴질 것이다. 무심코 올려다 보는 하늘이 이렇게 높고 파란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가을은 모두를 시인으로 만드는 절대미학의 산물이다. 괜시리 울고 싶어지는, 가슴 아프도록 절절한 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초대하는 가을의 영화는 사랑영화이다. 다들 가슴 아리는 사랑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텐데 궁상스럽지 않게 꺼내어 보며 눈물 한 조각 훔쳐낼 수 있는 절호의 계절. 그리하여 저 멀리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국화꽃 향기가 전해져 오는데... 그걸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가을이 찾아 온 것을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은 환절기 감기 같은 우연의 증상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오늘의 영화를 고르다가 <국화꽃 향기>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 영화가 끝나고 나니 가을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눈물 바람이 되어버린 한편의 이 영화는 벌써 12년 전의 영화이다. 김하인의 동명의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박해일과 장진영의 존재를 확고히 알리며 고인이 된 여배우 故장진영의 인생을 함께 하는 영화가 되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순백의 민희재(장진영)의 모습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녀를 옆에서 지켜주는 서인하(박해일)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 충분했다. 지금 세대와는 공감 할 수 없는 대학시절의 이야기들, 더 공감 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지극한 사랑, 그럼에도 공감 하고 싶어지는 저 남자와 여자의 마음.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영화 초반부터 인하는 희재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그들이 처음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희재 머리카락의 국화꽃 향기가 그의 코를 스쳐 지나갈 때도 인하는 희재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그의 그런 사랑은 그들이 성인이 되고 희재가 상처한 다음에도 계속된다.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마음을 떼어내지 못했던 것. 그런 인하는 결국 희재의 마음을 얻는다. 인하가 희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면 희재는 늘 인하를 품에 안고 있다. 희재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마음으로 품어주는 인하를, 희재는 그녀의 어른스러움(실제 선배역할이기도 하지만)으로 온몸으로 안아주고 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처럼...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그리고 그녀의 그런 어른스러움은 영화의 복선처럼 그녀를 떠나 보내게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뱃속의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부드러운 강인함.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희재를 이해하기 위해 아픔을 억누르고 혼신의 힘으로 사랑을 다하고, 사랑을 더 하는 인하.

 

인하의 이런 감정은 그녀를 사랑하는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 절절하게 표현되는데 이 영화의 OST였던 성시경의 <희재>는 인하의 그런 감정들을 배가시키며 영화의 절정을 순간을 함께 한다.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도 나를 걱정 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내 맘 앞에서 그댄 나를 떠나간다 해도 난 그댈 보낸 적 없죠 여전히 그댄 나를 살게 하는 이유일테니 

<국화꽃 향기>가 오랜 세월을 바탕으로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영원했으면 좋았을 찰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안타까운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어째 나는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의 사랑이 유난히 마음 속에 묻혀 몇 일 동안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플래시 백과 액자구조를 취하는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해 두 세대가 가진 생각들을 통일 시켜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믿을 수 없는 엄마의 외도와 그것을 부정하고 분노하다 그녀를 이해하며 자신의 인생을 회복하는 아들과 딸. 그런 영화적 시도는 외도의 미화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한 여자의, 한 남자의 인생으로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일생에 불결한 선택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그리고 로버트의 이 대사를 이해한다면...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오직 한 번만 오는 것이요”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단 나흘간의 사랑은 그들을 영원으로 인도했다. 중년의 사랑은, 찰나의 불같은 사랑은 시간이 지나서 퇴색되거나 흐려지지 않는, 애초에 선명한 사랑으로 새겨졌던 것이다. 끝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다 일생을 다하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만나게 되는... 그렇게 만나게 되는 것이 그들의 영원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여기며 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여전히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진실로 안타까운 그들의 이별장면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모두 눈물이라고 해도 믿었을, 거친 비로 흠뻑 젖은 로버트... 애타게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이별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애틋함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고,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잡으려 애쓰는 그의 차로 뛰어 들지 못하는 그녀의 불편한 마음은 차문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위험한 전율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저 문을 열고 저 빗속을 조금만 뛰어가면 그토록 사랑하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데... 과연 그들이 자신의 것을 지키고, 희생을 통해 강제 평화로 복귀했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했다면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안타까움은 계속해서 돌고 도는 나의 질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울컥해진다. 여전히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마음처럼...아리다.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가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끝을 아는 것 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국화꽃 향기>의 사랑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사랑도 모두 끝이 예고된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언가 해야만 하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프란체스카의 쏟아지는 질문에 냉정히 말문을 닫아버린 로버트. “더 이상 못하겠소. 금요일까지 내 인생 전부를 말하는 거”라고 말하며 끝이 예고된 사랑을 부정하고 싶은 그의 마음... 그럼에도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불안함.

 

끝이 예고된, 혹은 끝을 직감한 사랑을 한 적이 있다. 인하처럼 그럼에도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사랑했을 수도, 프란체스카처럼 지독한 말로 로버트의 마음을 다치게 했을 수도. 이 두 가지 상황 중에 나는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을지 모른다. 내가 조금 더 어른이었다면 인하처럼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테지만 나는 최대한 상대를 다치게 하며 상대와 이별했던 것 같다. 그래서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지리지리하게 영원으로 끌고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 가을의 사랑 타령은 영화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나보다. 나로 시작되었나보다. 어느새, 극심한 추억에 빠져 후회와 위로를 비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고 보니 가을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진아

 

[영화 스틸컷 출처 : 영화 ‘국화꽃향기’ , 제작사 : 태원엔터테인먼트, 배급사 : 시네마서비스 /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제작사 :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2015.10.25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No.1 예술채널 "디아티스트매거진"
채널명
디아티스트매거진
소개글
대한민국 No.1 예술채널 "디아티스트매거진"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