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속의 창조주, 히스레저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공상속의 창조주, 히스레저

배우 히스 레저

내가 아닌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어디에서든 시간약속을 칼같이 지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가 20분30분씩 약속장소에 늦는다거나, 지난 몇 년 동안 물건 하나 잃어버리지 않았던 내가 버스에 지갑이나 핸드폰을 놓고 내리는것 또한 결코 상상할 수 없다. 마치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악’을 걷어내려는 베트맨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온 세상을 ‘악’으로 덮어버리려는 조커가 될 수 없듯 내가 아닌 나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하지만 한 인격체로써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다른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배우’. 배우들은 많게는 10년 동안 6-7개의 인격체로써 자신의 삶 속에서 완벽하게 다른 인격체를 구현해낸다. 그 중에서 나에게 단연 충격을 주었던 배우는 아쉽게도 2008년 2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히스레저’. 사실 그를 처음 접한 건 2008년에 개봉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1>이다.

부정할 수 없는 논리의 ‘악’ 조커

공상속의 창조주, 히스레저

'조커'역의 히스 레저, '2005 영화 다크나이트'

두꺼운 조커의 분장,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정리되어있는 논리의 ‘악(惡)’들로 가득 차 있는 언변과 뭐라 형용하기 힘든 소름 끼치는 눈빛까지 영화<다크나이트1>의 조커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사람을 잔인하게 토막 내는 괴물 같은 살인범도 아니었고, 러닝타임 내내 등장할 때마다 양 손에 찔릴듯한 칼과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도끼를 들고 다니는 것 또한 아니었음에도, 영화<다크나이트1>속에 조커는 관객들로 하여금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공포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 조커가 등장하는 시퀀스마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위험 속에 처해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로 자신이 품고 있고, 행하는 악에 대한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이 그의 표정과 몸짓에 그대로 묻어져 나왔다. 

 

관객들에게 조커는 감당하거나 인정하기 힘든 공포였다. 심지어는 영화가 끝나갈 때쯤 베트맨과 조커의 대립장면에서 ‘정신병원에나 가라’라고 하는 베트맨의 대사가, 웃는 얼굴로 아찔한 높이의 빌딩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조커에 앞에서 베트맨은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믿고 있는 어린 아이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베트맨은 말한다. ‘고담시에는 아직도 선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베트맨의 그 말보다 ‘그 믿음은 얼마가지 못한다’라고 자신하며 말하는 조커의 말에 더 많은 관객들이 이상하게도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 조커는 혼란스럽게도 악했지만 반박할 수 없는 논리가 심어져 있었다.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나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악’이라는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단지 어느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그 악이 표출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보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조커는 그저 그러한 모든 사람들 속에 자리잡은 ‘악’의 존재를 공평하게 세상의 수평선위에 올려놓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든 아니든지간에. 영화<다크나이트1>에서는 조커에 대한 기본적인 조건들 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그가 사람들의 얼굴에 칼을 들이대면서 위협할 때마다 뱉는 ‘자신의 입이 찢어진 이유’는 그때그때 순간마다 달라지며 우리들은 아직도 <다크나이트1>안에서 조커의 입이 찢어진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창백한 분장에 내비치는 깊게 패인 주름들과 까맣게 칠해진 검은 눈두덩이 사이로 알 수 없게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길게 찢어진 입이 우리가 조커를 볼 때 알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이다. 그리고 그가 몇 살인지 가족은 있는지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정보들조차 알 수 없기에, 영화 속에서 그가 건물 아래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조커가 살아있다는 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커는 영화 내내 단 한번도 당황하거나 주춤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 조커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베트맨이 조커를 빌딩아래로 떨어뜨리는 순간, 그러니까 조커가 빌딩아래로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관객을 소름 끼치게 하는 웃음소리로 상영관을 가득 채운다. <다크나이트1>을 처음 봤을 때 조커에 대해 느꼈던 공포는 영화를 보고 거듭 또 보게 되면서 그가 세상에 덮어버리려고 했던 ‘악’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조커는 러닝타임 동안 베트맨에게, 그리고 가장 순수하다는 이유로 조커에게 선택 당한 하비 덴트에게도 여러 번 자신을 죽일 기회를 준다. 또 자신을 죽이라는 말 또한 서슴없이 내뱉고 그것들은 모두 진심이었다. 조커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커가 관객에게 또 세상에게 말하고자 했던 ‘악’은 무엇이었을까?

‘에니스 델마’와 ‘조커’ 그 만의 완벽했던 다중성

공상속의 창조주, 히스레저

'애니스 델마'역의 "히스 레저"<2006년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두 번째로 그를 만났던 건 2005년에 개봉했었던 ‘이안’감독의 <브로크백마운틴>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꽤 많은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찾아서 본 적도 꽤 있다. ‘브래드피트’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영화들은 거진 모두 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배우가 연기한 두 개의 영화만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앞서 처음 히스레저를 만났던 영화 <다크나이트1>에서는 이미 언급했듯, 짙은 조커의 분장으로 정확한 히스레저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고담시의 시장으로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하비 덴트를 죽이려 장병들 속에 숨어있던 조커가 나온 그 한 장면만이 유일하게 변장 없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장면이었으나, 긴장감을 극도로 표현하기 위해 연출된 계속적인 짧은 쇼트들의 반복과 그의 얼굴에 여전히 남아있는 찢어진 입의 흉터가 정확하게 배우 ‘히스 레저’의 얼굴을 인지하기는 힘들었던 사정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에니스 델마’와 <다크나이트1>에서의 ‘조커’간에 생긴 괴리는 외형적인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한 배우가 연기했다고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그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에니스 델마’는 아주 저음의 목소리에 외국인인 나에게 있어서는 더욱이 정확한 발음을 듣기 어려운 ‘그’ 만의 웅얼거림. 그리고 너무나도 부드러운 인상과 자상한 몸짓들까지 ‘조커’의 머리칼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상반되다 못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물론 많은 배우들은 악당의 역할을 도맡아 하다가도 전혀 다른 이미지를 담고 있는 인격체를 연기하는 것이 당연하고 우리들은 그렇게 한 사람이 보여주는 여러가지의 다양한 인격체들을 한 명의 배우를 통해서도 쉽게 만나봤다. 하지만 배우 ‘히스레저’는 나에게 ‘배우’라는 단어에 대해 여러 번 곱씹도록 만들었다. 영화 <다크나이트1>에서의 세상의 모든 악을 빨아들인 듯한 조커는 아주 날카로운 어투와 자극적인 언변들,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뱀처럼 낼름 거리는 혀에, 소름 끼치는 높은 톤의 웃음소리 그리고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8자걸음은 절대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가 보였던 굉장한 저음의 목소리에 부드러운 인상과 자상한 행동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잭 트위스트를 쳐다보는 사랑이 담긴 눈빛의 인격체를 연이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완벽하게 다른 인격체를 배우 ‘히스레저’는 완벽하게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히스레저에 관한 유명한 후 소문이 있다. ‘히스 레저’는 영화 <다크나이트1>의 ‘조커’라는 역할을 따내기 위해서 감독에게 자신이 ‘조커’가 될 수 있다는 의지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조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 ‘조커’라는 배역이 정해진 후에도 자신을 놓고 ‘조커’라는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 호텔에 6주가량을 투숙하며 ‘조커’를 연구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만큼 유명한 이야기이다. 또 영화 <다크나이트1>이 개봉된 2008년 그가 숨진 채 자택에서 발견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실에도 그의 사인이 ‘조커’라는 역할에 너무나도 몰입 한 나머지 ‘히스레저’ 라는 사람이 결코 안을 수 없는 거대한 악을 품고 있는 ‘조커’라는 인격체에 벗어나지 못한 채 과도한 약물중독으로 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사실 그 정황은 떠도는 기사들과 속설들뿐인 우리로서 알 도리가 없지만, 그의 안타까운 사인에 대한 소문조차 ‘조커’라는 인격체를 덧붙일 만큼 배우 ‘히스레저’는 ‘조커’이기도 했다.(물론 후에 그의 사인은 과도한 약물중독은 맞으나 자살이 아닌 잘못된 약물 복용으로 밝혀졌다.)

공상 속의 창조주

공상속의 창조주, 히스레저

배우 히스 레저 1979.4.4 - 2008.1.22

보통의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부터가 힘들다. 흔히 청소년기에 찾아오는 자아정체성 같은 것? 자아정체성은 나로써도 아직도 찾기 힘든 존재이고 넘기 힘든 산이다. 이쯤 되어서 나는 과연 ‘히스 레저’라는 ‘한 사람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없이 완전히 다른 인격체를 담고 있는 배역에 본래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배제시킨 채 연기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물론 배우라는 직업이 하는 일이란 빈 공간속에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나는 ‘히스레저’에게 감히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이처럼 상반된 역할에 대해서 완벽한 연기를 펼친 배우가 분명 어딘가에 또 있음에도 유독 많은 사람들이 ‘히스레저’에게 이러한 의문의 꼬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혼신을 다한것을 넘어설만큼 자신을 바쳐 연기했던 자신의 영화(다크나이트1)속 또 다른 자신을 끝내 보지 못한채 그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연기했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속에 ‘에니스 델마’와 <다크나이트1>속에 ‘조커’라는 역할 사이에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괴리감이 ‘히스레저’라는 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 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과연 그는 배우이전에 ‘히스레저’라는 사람으로써 괜찮았을까?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했을까? 히스레저는 그저 연기를 하는 직업인 ‘배우’라는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맡은바 맡게 된 역할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뿐만이 아니라, 그는 그냥 그 역할이 되었다. 그냥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냥 영화 속 나오는 한 사람으로 재탄생 했던 것이다. 마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 속 극장의 스크린 속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의 한 역할이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세계를 누볐던 것처럼, 히스레저는 한 인격체를 가진 ‘무언가’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배우 히스레저는 ‘에니스 델마’이면서 ‘조커’이다. 내가 아직 그에 관한 많은 것들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준 ‘조커’의 모습을,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왔고, 배우라는 이름 위에서 생을 마감한 ‘그’라고 담아두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히스레저는 그저 한 딸아이가 있는 평범한 아버지이자 헐리웃의 배우 ‘히스레저’이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조커’일 것이다. 배우이고 싶었고 배우로 살아가다가 배우라는 이름 위에서 생을 마감한 배우 히스레저에게 나는 감히 한마디 건네주고 싶다. 당신이 연기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의 ‘에니스 델마’와 <다크나이트1>의 희대의 악당 ‘조커’는 이제는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 하늘 아래에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있다고. 당신은 연기를 한 것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를 탄생시킨 공상 속의 창조주라고.

 

박민서 칼럼니스트  |  0222_ms@naver.com

2016.04.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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