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 예술가를 위한 변론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잉여인간' 예술가를 위한 변론

Henri Toulouse-Lautrec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잉여 인간이야,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


영화 대사에 따르면, 잉여인간이란 무능한 탓에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도태되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떨거지'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잉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이 한 줄의 대사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요즈음, '잉여로움'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전복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잉여롭고자 하는 잉여 세대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잉여성은 무능 탓이 아니다. 이들은 상당 수준의 문화적 역량을 가진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일자리가 허락되지 않았다. 성장주의 사회에서 비정규직을 원하는 자본의 힘에 밀린 결과다. 그러나 잉여 세대는 이러한 조건에 굴종하지 않았다. - 이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성의 것을 소비하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내는 활동 능력'이 곧 잉여력의 의미로 공감된다. '잉여력', '창잉력'(창조하는 잉여력),'장잉력'(장인 수준의 잉여력)등의 말로 변주된다. 비록 만든 결과물이 보잘 것 없을지라도 서로 아이디어를 봐주고 공감해주는 활동이 '잉여로움'이라는 어휘 아래 이루어지고 소통된다." (<철학, 문화를 읽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p.114)

사전적 정의로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네이버 국어사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적성과 소질이 있어 예술을 업으로 삼았으나 지속적으로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에 예술가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나? 밥벌이로 이어지지 않는 예술 활동은 사람들의 눈에 참 별 볼 일 없이 잉여로워 보인다.

'잉여인간' 예술가를 위한 변론

Vincent van Gogh,Self portrait, 1888

한국 사람들은 유달리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평생 가난하였고, 생전 한 작품도 팔아 보지 못했고, 종국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운한 화가. 우리는 그를 동정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현 예술가들에게 쉽게 대입시킨다. 마땅히 닮아야할 '순수 예술의 정수' 로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너무도 자명하지만 사람들이 치명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예술가의 작업은 노동행위라는 것이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무용이든, 미술이든 아무쪼록 예술을 한다는 것은 다른 기타 직업군처럼 치열한 노동력(공부, 수련, 행위자체) 이 요구되고 전문적인 기술 및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예술의 결과물(작품)은 '고도의 노동 소산물'이다. 다만 예술은 ‘예술 노동’이 곧장 생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 다른 직업군의 노동과 다른 점이다. 때문에 이 땅위에 이름 없는 예술가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숭고한 정신’ 이란 포장을 이불삼아 “돈 안 되는 일”에 골몰한다는 핀잔을 막는데 여념이 없다.

'잉여인간' 예술가를 위한 변론

Edgar Degas, The Dance Class (La Classe de Danse), 1873–1876

그러나 보통의 노동 생리가 타인의 취향에 맞춘,  고객에게서 일을 받아오거나 고객의 주문에 의지하는 시스템 혹은 집단에 소속되어 할당된 업무를 하는 것에 반해 예술은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내 생각과 스토리가 콘텐츠가 되는 독창적인 노동구조를 갖는다. 또한 예술은 이해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도 오픈되고 이들과 함께 공감, 소통, 해석을 나눈다. 어떤 수익성이나 대가가 보장된 일이 아님에도 –오히려 수익이 없을 때가 더 많은- 참으로 열심히 하는 ‘일’에 예술 보다 더 한 것이 있을까?

'잉여인간' 예술가를 위한 변론

Edgar Degas, Ballet Dancers in the Wings, 1900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생업을 갖고 있지 않는 관계로 잉여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예술가. 이왕에 이렇게 잉여인간 소리를 듣는 김에 보다 적극적이고 떳떳한 ‘잉여로운 예술가’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물론 사회가 이들의 성실성과 전문성을 외면하지 않고 정당하게 경제논리로 소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의 땀을 싼값으로 착취하려 하는 야만성을 버려야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서 끊임없이 예술을 지속해 나가는 밥벌이 못해 못난 예술가들에게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응원의 말을 남기고 싶다.

'잉여인간' 예술가를 위한 변론

Edgar Degas, The Cellist Pilet, 1868

“더 깊게 연구하고 더 꼼꼼히 관찰하고 더 치열하게 수련하고 더 높게 이상을 품어요 그대. 더 품격 있게 잉여롭기 위하여!”

 

[디아티스매거진=양효주]

2016.03.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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