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 끝나지 않는 일상의 바퀴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인사이드 르윈 , 끝나지 않는 일상의

인사이드 르윈 포스터

우리 때는 부모와 선생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꿈을 가져!’류의 설교를 자주 들었다. 반에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어다.’라는 진짜 촌스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는(결코 졸려서가 아니라) 급훈 같은 것들이 유행했고 7막 7장 같은 책들이 애들 인생을 막장으로 만들었다. 그런 자기계발서를 사다 주며 딴에는 자식들을 응원했던 것이 종내에는 자식들의 불행에 한 몫 했다는 것을 부모들은 알런지 모르겠다. 일단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었고 꿈을 가질 필요 따위도 없었고 ‘할 수 있을’ 필요도, 욕망도 없었다.

 

‘할 수 있어!’는 ‘해야 해!’보다 더 가혹하게 아이들을 몰아붙인다. ‘할 수 있어!’는 따스한 응원의 가면을 쓰고 있어 반항하기가 쉽지 않고, 심지어 실패한다고 해도 노력하지 않은 스스로를 탓할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멘트다. (1등을 해!라고 하면 삐뚤어질 수 있지만 1등을 할 수 있어!라고 하면 괜히 쑥스러워진다.) ‘할 수 있어!’의 폭력에 코피 터져가며 독서실을 다니고, 꼬부랑 글씨를 웅얼거리고, 막차 때까지 야근을 했지만 그래서 내가 행복했던가? 행복의 분자(현실)를 키우는 것이 녹록치 않다면 분모(기대)를 낮추는 것이 당연하건만 그런 이들에게 설국열차는 낙오자라느니 실패자라느니 꼬리표를 붙이고 덤으로 걱정까지 대신 해 준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바로 그 남 걱정)

인사이드 르윈 , 끝나지 않는 일상의

인사이드르윈 스틸컷

영화 소개를 하려다가 뜬금없이 ‘남 걱정 하는’ 남 걱정을 하고 말았다. ‘인사이드 르윈’은 포크 싱어 르윈 데이비스 삶의 한 단락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미덕은 르윈이 처음부터 끝까지 찌질하다는 점이다. 명색이 주인공인데 뭐 그럴듯한 장면 하나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고 인생 최대의 기회 같은 것 역시 있지 않으니 잡을 수도 없다.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최소한의 위로를 건네기 위해 좁쌀만한 희망의 암시를 줄 법도 한데 쥐뿔도 없다.

인사이드 르윈 , 끝나지 않는 일상의

인사이드르윈 스틸컷

르윈은 참으로 일관되고 성실하게 요즘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찌질한 젊은이다. 몇 년 전에 친구와 앨범 한 장을 낸 이력이 전부인데다 친구는 자살했고 르윈은 친구가 자살한 이유조차 모른다. 소속사에서 그의 망한 앨범을 내다 버린다기에 받아오기는 했으나 집 없이 전전하는 처지라 앨범 둘 곳도 없다. 친구의 여자친구를 임신시킨 것도 모자라 중절 수술비를 그 친구에게 빌리려 한다.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에 견줄만한 역대급 찌질이다. (하긴 어정쩡하게 찌질한 것보다 뭐든 ‘역대급’인 게 이 사회에서는 더 나을지도.)

인사이드 르윈 , 끝나지 않는 일상의

인사이드르윈 스틸컷

천재적인 싱어도 아닌데다 당장 하루 잘 곳도 없는데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역대급 찌질이가 시카고에 가서 오디션을 보고 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다른 로드무비와는 다르게 이 여정 동안 인생의 교훈을 얻거나 멘토를 만나는 일 따위는 없다. 오디션은 떨어진다. 클럽 사장은 르윈에게 2인조를 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충고만 전해줄 뿐이다. 시카고를 다녀오는 르윈의 로드에는 인생의 실패자인 것 같은 남자들과 불편한 시간을 보내거나 히치하이킹 한 차를 대신 운전해주면서 돌아오는 사건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 시카고에서도 르윈은 역사에서도 쫓겨나고 카페에서도 쫓겨난다. 어디 한 몸 둘 곳이 없다.

인사이드 르윈 , 끝나지 않는 일상의

인사이드르윈 스틸컷

이 영화에는 상징이 꽤 많고 촬영 기법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명확한 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상징이라던지, 르윈을 스쳐간 사람들을 통해 본 그의 미래와 과거들 같은 것을 찾는 재미도 있다.

 

우리 삶은 실상 여느 영화 같지 않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이르는 서사 같은 건 없이 내내 전개이기도 하고 내내 위기이기도 하다. 절정에서 뜬금없이 영화가 끝나버리기도 하고 발단을 내내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내면의 성장이나 운명을 바꿀 극적 만남 같은 것도 없다. 르윈처럼 자주 조금씩 좌절하고 게으르게 노력하며 무거운 책임에 등을 돌리지만 적당히 인간적이다. 르윈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하자 감동 받은 듯 보이던 아버지가 알고 보니 똥을 싼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다. 무엇하나 낭만적이지 않고 무엇 하나 기적이 없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 고양이가 르윈을 깨우는 장면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것처럼 르윈의 삶도 고만고만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포크송이 그 놈이 그 놈이죠."라는 대사처럼. 진짜. 우리. 삶처럼.

 

르윈이 잘 되는 일이 하나 없다 해서 이 영화를 세상을 비관하는 우울한 영화로 보는 건 곤란하다. (비록 영화가 'Hang me, Hane me'로 시작하긴 하지만.)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는 것만으로 영화를 넘어서 감독은 '살아 있다.'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일테니.

 

이런저런 것에 매달려 우리는 하루씩 살아낸다.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승진이나 외제차 같은 것으로 애써 그 불안을 잊으려 노력하며. 결국 내가 무엇을 잊으려고 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며.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이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맞이한다. 이 어쩔 수 없는 허무를 잊어버리는 것에 ‘할 수 있어!’ 프레임이 효과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 ‘할 수 있어!’에 ‘하고 싶어!’가 과연 포함되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디아티스트매거진=박초롱]

2018.06.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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