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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추적추적 비오는 날, 秋적한 신주쿠공원을 거닐어보자

by디아티스트매거진

이른 새벽부터 먹구름이 조금씩 몰려오더니 결국은 빗방울이 굵어지던 아침이었다. 혹자는 비오는 날을 굉장히 싫어할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비오는 날을 반기는 편이다. 비오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 느낌이 좋다. 그 기분을 이어가기 위해 비오는 날 아침부터 신주쿠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주쿠 공원은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유명한 작가, 신카이 마코토의 최신작 ‘언어의 정원’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영화 속 신주쿠 공원은 46분의 러닝타임 내내 비가 내린다. 오늘의 날씨도 비. 신주쿠 공원을 돌아보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다.   

 

추적추적 비오는 날, 秋적한 신주쿠공

낙엽이 떨어지며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신주쿠 공원

하지만, 신주쿠공원에 가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신주쿠 역을 찾아가야하기 때문이다. 신주쿠 역은 세계에서 지하철 이용자가 가장 많은 역으로 하루 평균 이용자가 370만 명이나 된다. 기네스북에 등재까지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는 곳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출근길로 바쁜 사람들이 향하는 곳과 반대로, 나는 신주쿠 역 동남쪽으로 나왔다. 신주쿠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애니메이션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신주쿠 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주쿠 공원을 들어가고 싶다면 입장권을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 도쿄의 다른 공원과는 다르게 200엔(원화 2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한낱 공원인데 무슨 입장료씩이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돈이 절대 아깝지 않은 곳이다. 그만큼 공원 내부의 관리가 철저하고 깨끗한 공원이기 때문. 신주쿠공원의 면적은 58만 3,000㎡에 이를 정도로 넓다. 원래는 에도 시대의 막부(12세기에서 19세기까지 쇼군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무사 정권)가문인 나이토 가문의 소유지였다가 1945년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재편되었다. 공원 내부에는 일본식 정원과 영국식 풍경정원, 프랑스식 정원이 있고 두 개의 인공 폭포와 연못이 있다. 이 외에도 대형 온실이 있는데, 온실 안 식물들의 가짓수가 꽤나 다양해서 볼만한 곳이다.  

추적추적 비오는 날, 秋적한 신주쿠공

드넓은 녹지와 깔끔하게 손질된 조경

도쿄 도심 한 가운데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공원의 잔디밭과 푸르른 녹음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신선한 풀내음과 비릿한 비내음이 섞여서 공원 전체를 감싸는 미묘한 공기가 나를 더 설레게 한다. 재잘재잘 지저귀는 참새소리,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톡톡 한 방울 한 방울 번져가는 빗방울은 고요한 협주곡을 이루며 울려 퍼진다. 줄곧 비가 내리는 풍경이지만 쓸쓸한 공원의 느낌이 아닌 생기가 느껴진다. 신주쿠 공원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팁 한 가지를 알려주자면, 영화 ‘언어의 정원’을 보고 비가 오는 날 일부러 공원을 찾아가보는 것이다. 영화 안의 배경과 실제 신주쿠 공원은 거의 100%의 싱크로율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서 순례하듯이 공원을 돌아본다면 그 재미는 아마 몇 배로 증폭될 것이다.

추적추적 비오는 날, 秋적한 신주쿠공

신주쿠 공원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대만각

만약 신주쿠 공원을 한 눈에 보고 싶다면 공원 중간에 위치한 타이완식 정자인 ‘대만각’을 가 볼 것. 개인적으로 이 곳 정자에서 보는 뷰를 가장 추천한다. 360도 전방이 다 뚫려있는 정자에서 파노라마처럼 신주쿠 공원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기 때문. 특히 정자 앞으로는 일본식 정원과 조경이 펼쳐지는데, 조경사가 굉장히 세심하게 신경을 쓴 티가 난다. 가능하다면 내 눈에 담긴 풍경을 액자의 프레임 안에 껴놓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10월 한 가을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신주쿠공원은 한마디로 秋(가을추)적하다.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