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컬처]by 디아티스트매거진
구스타브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서양 미술사에서 인기 있는 주제인 유디트. 그녀는 오랜 세월동안 그림 속에서 거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자랑스러운 영웅이나 사악한 요부의 모습으로. 이런 유디트를 새로운 모습으로 그려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키스로 유명한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이다. 그는 이전의 유디트들과는 다른 관능적인 유디트를 탄생시켰다. 그의 유디트는 영웅이기 보다는 사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한명의 ‘여성’ 같아 보이며 사악하기 보다는 관능적이고 에로틱해 보인다. 이것이 클림트의 그림의 핵심이다. 관능미와 에로티시즘 말이다. 클림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고 그는 자신만의 에로티시즘 화풍을 고수했다. 때문에 포르노 화가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고 거의 평생 동안 자신만의 스타일로 에로틱한 여성의 나체를 그렸다. 놀랍게도 클림트에게는 혹평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그렸던 에로틱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여자이자 오늘의 주인공인 에밀리 플뢰게이다.

 

배가 볼록 나온 통통한 몸과 벗겨진 머리, 클림트는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거기다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이었고 동생이 일찍 죽자 동생의 가족까지 부양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과연 이런 그에게 애인이 한명이라도 있었을까? 만약 이 질문을 받은 지금 당신이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면 그것은 매우 우스운 기우에 불과하다. 클림트는 독특한 성격과 엄청난 재능 덕분인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바람둥이로 유명했다. 그는 수많은 여자들과 만났고 그녀들을 모델로 삼아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녀들과 어떤 관계를 나누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받은 영감을 토대로 에로틱한 여성의 나체들을 그려냈다. 이렇게 탄생한 그림들은 비난을 받는 한편 관심을 끌기에도 좋았기 때문에 클림트에게 화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당시에는 에로티시즘이나 관능미가 생소한 것이었고 이를 표현한 그림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야한 그림, 포르노라는 혹평이 그를 계속 쫓아다녔지만 클림트에게 있어 그 그림들은 자신을 화가로서 성공하게 해준 작품이자 자신의 작품 세계와 화풍을 마음껏 펼쳐낸 재능의 결과물이었다.

 

구스타브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구스타프 클림트

이렇게 많은 여자들로부터 영감을 얻어가며 화가로서 자리잡아가던 도중 클림트는 동생 에른스트의 아내 헬레네 플뢰게의 동생인 에밀리 플뢰게를 만나고, 두 사람은 이후 클림트가 죽는 날까지 약 27년 동안을 함께 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둘의 관계가 정확히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없어 아직까지도 의문이자 논쟁거리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둘의 관계가 단순히 편한 가족이었는지, 끈끈한 우정으로 이루어진 친구였는지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웃기고 둘 사이에 친구나 가족 같은 정이 있었으리라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필자는 둘의 사이가 사랑에 더 가까웠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마 둘의 러브스토리와 클림트의 이야기에 대해마저 읽고 나면 필자의 의견에 공감할 이가 많을 것이다. 연인과 친구, 둘의 사이는 어느 쪽에 더 가까웠을까?

 

둘의 첫 만남에 대해서는 동생의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클림트가 에밀리의 그림선생으로 갔다가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첫 만남이 어떤 식이었든 간에 화가로 자리잡아가던 약 29살의 클림트는 어린 에밀리에게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는 에밀리에게 그림 모델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고 에밀리는 당돌하게도 에로티시즘 화가의 모델 제안을 받아들였다. 클림트는 에밀리를 모델로 관능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지만 번번이 잘 되지 않아 고전했다. 덕분에 둘은 자주 만나게 되었고 클림트는 에밀리를 특별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클림트는 독특한 성격에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구두로든 서면으로든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한 적이 없었으며 인터뷰는 물론이고 사생활을 공개한 적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에밀리만은 꾸준하게 만나려 했고 여름마다 그녀와 아티제 호수에 가서 휴가를 보냈다. 그녀를 위해서 뒷면에 ‘구스타브와 에밀리’라고 새겨진 키스 모양의 브로치를 주문하기도 했으며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그녀에게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시시콜콜한 것까지 적은 400통도 넘는 엽서를 보냈다고 하니 어찌 클림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또 그는 여느 사랑에 빠진 화가들이 그랬듯이 에밀리의 그림을 자주 그렸다. 재미있는 것은 수많은 여성들을 자신의 상상 속에서 에로틱하게 재탄생시켜 그렸던 희대의 에로티시즘 화가인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인 에밀리 만은 에로틱하게 그릴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에밀리의 초상화를 구상하면서 자신의 기존 스타일대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에로틱한 스타일을 포기하고 평범한 스타일로 에밀리의 초상화를 한 점 그렸는데 이 그림 속 에밀리는 누구보다도 청순하고 정숙해 보이는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클림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것이 클림트의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클림트는 왜 ‘에로틱한 에밀리’를 그릴 수 없었을까. 사랑하는 여인이라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구스타브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구스타브 클림트, 키스

안타깝게도 에로티시즘 화가였던 그에게 이런 사랑은 장애물이 되고 만다. 그에게 청순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에밀리 때문에 에로틱한 영감을 받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그는 다른 여자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다. 에밀리는 이런 클림트를 보고 실망하여 그의 곁을 떠났다. 사랑하는 에밀리가 곁을 떠나자 클림트는 괴로워하며 한동안 그림에만 몰두했는데 이 시기 그는 이전에 그려왔던 여인들의 에로틱한 나체가 아닌 야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마치 에밀리와 자신의 애처로운 상태를 표현하는 듯 두 연인이 애절하게 키스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오늘 날 만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클림트의 <키스>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에밀리의 소중함을 느낀 클림트는 다시 에밀리를 찾아가 함께 해줄 것을 부탁하고 에밀리도 이를 받아준다. 에밀리에게 있어서도 클림트는 떨어져 있으면 쓸쓸한 평생의 동반자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뒤로 그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죽기 전 클림트는 에밀리의 그림을 한 점 더 그린다. 이 때 그린 그림은 비교적 클림트의 화풍이나 느낌을 더 잘 반영하고 있지만 에밀리는 이 그림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림 속 의상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더러 그림의 배경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클림트는 화를 내며 그림을 팔아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시장에 내놓아 버린다. 하지만 에밀리의 그림을 남에게 팔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는 그림 가격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하고 그림을 사고자 하는 이가 나타날 때마다 그림가격을 계속 올려서 그림은 아주 오랫동안 팔리지 않았다.

 

에밀리 플뢰게는 다른 화가의 연인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녀를 그저 클림트의 그림자나 그의 수발을 든 여자라고 보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그녀는 의상학을 공부해서 의상실을 열었으며 의상디자이너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스스로 성공한 디자이너로서 클림트가 배신감을 느끼게 할 때는 자신을 위해 그 곁을 떠날 줄도 아는 여자였다. 그녀는 예술가인 클림트의 곁에 있으면 평범한 결혼과 가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온 그를 받아준 그녀는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평생을 그와 함께 했다. 그런 그녀는 클림트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홀로 그 곁을 지켜주었으며 클림트의 사후에는 그의 친자소송 문제와 유산 문제까지 현명하게 해결해주었다. 또 그의 명성에 해를 입힐까 걱정하며 엽서와 자료들을 정리하고 태워주는 일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스스로 설 줄 알고 의리를 알았던 그녀는 클림트의 예술적 뮤즈로서는 어려웠을지 몰라도 그의 버팀목으로서 그의 곁을 지켜주었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클림트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평생을 한 여자만을 진지하고 소중하게 바라봤던 클림트와 그런 그의 임종까지 평생을 지키며 의지가 되어준 에밀리. 아마도 클림크에게 에밀리는 어느 한 쪽에 국한된 관계라기보다는 계속 정을 쌓아가면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자 거의 유일무이하게 평생을 함께 하고픈 가족이고 친구이자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었을까. 그와 에밀리가 정확히 어떤 사이였는지 알 수 없고 사실은 알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사이는 단지 친구나 연인 같은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평생을 꾸준히 함께 할 만큼 특별한 사이였고 덕분에 클림트라는 화가의 명작들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THE ARTIST 매거진=송지원 에디터]

2017.02.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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