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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점

by어반폴리

젊은이들의 거리, 문화예술을 꿈꾸게 하는 곳, 대학로.

 

전국 27개 지역에서 대학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지만 가장 유명한 대학로는 마로니에 공원이 자리한 이곳, 서울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거리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경성제국대학이 경성대학으로, 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며 대학로가 형성되었다. 이후, 의과대학 외 모든 서울대학교 기관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으나, 대학로 상징인 마로니에 공원과 문화예술기관이 들어서며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예술 거리로 성장했다.

 

약 1.55㎞ 길이, 25~40m 너비의 대학로는 현재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 공연장, 전시장이 밀집해 연극·영화·음악·뮤지컬·전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예술 거리인 만큼 공연장과 전시장은 물론 아트숍과 카페, 편집숍 등이 즐비한 곳이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대학로의 동네서점지도 ⓒfunnyplan’

얄라북스 Yallabooks

소규모 복합서점 /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3길 11 B1 / 02-745-3330 / 월-토 11:00-19:00, 일 휴무

여기는 책방 '얄라북스'입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대학로에 갔다. 햇빛이 좋아 종로에서 일부러 버스로 갈아타고 성균관대 입구 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렸다. 오늘의 여행은 대학로, 귀여운 이름의 동네서점 '얄라북스'부터 시작한다.

 

사거리에서 성균관대 입구 방향으로 작은 블록 하나를 올라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밝은 노란색의 그림의 맛 카페가 보인다. 카페 바로 옆으로 작은 모임지붕과 흰색 벽을 가진 '얄라북스'가 있다. 카페와 색깔 맞춤이라도 한 듯 노란색 계단 통로가 여행자를 지하 서점 공간으로 이끈다.

‘아무 때나 편하게 들어와서 구경하세요. 여기는 책방 얄라북스입니다.’

‘얄라’란 아랍어로는 함께 가자, 우즈베크어로는 노래한다는 뜻이다. 책방을 공동 운영하는 세 명의 주인장이 의기투합해 ‘함께 가자’라는 의미일까, 독자 혹은 동네주민들과 소통하며 ‘함께 가자’라는 의미일까. 어쩌면 ‘함께 노래하며 가자.’일지도 모르겠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는 세 명의 주인장. 하고 싶은 일을 뜻 맞는 사람과 한다는 건 가히 축복일 것이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면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 제일 먼저 보인다. 액자에 넣은 사진이 아니라 프레임 없이 벽에 걸려 있었다. 짙은 녹색과 검은색 벽이 더 감각적으로 보였다. 벽면 앞에는 테이블을 두어 책을 비치했고, 한쪽 벽면은 전체가 책 얼굴이 보이도록 올려둘 수 있는 진열대가 있었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입구에서 바라 본 얄라북스 내부

주인장들은 매우 분주해 보였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 안쪽에서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방해 되지 않게 가방을 치켜 매고 살금 거리며 구경에 집중했다. 주인장의 동선에 최대한 걸리지 않게 돌아다니는 나에게 주인장이 먼저 말을 건네주었다.

 

“오늘 전시회 오프닝이 있어서 좀 분주해요. 죄송해요”

 

사진집과 느낌 있는 책들

 

'얄라북스'엔 일러스트와 프린트 관련 책, 그리고 유난히 사진집이 많다. 사진과 그래픽을 활용해 만든 엽서도 많았다. 책은 대중 서적보다 독립출판물이 많았고, 소량의 책이 자유분방하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내가 최근 좋아하게 된 유유출판사의 책도 나란히 꽂혀 있었고, 동물 관련 책, 여행 책이 한데 모여 있었다. 월간지와 사진, 그래픽 잡지도 다양했다. 그중 올해 3월 첫 발행을 시작한 주간지 「워커스」도 있었다. 「워커스」는 민중 언론을 내세운 참세상 콘텐츠와 디자인 그리고 사진그룹이 협업하여 제작하는 시사디자인주간지이다. 또한 간간이 인문교양, 사회분야 책도 보였다.

 

그리고 서점 한편에는 중고 책 판매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중고 책은 삼십 권 남짓, 많은 종류는 아니었지만, 중고 책으로 구하기 힘든 책이 꽂혀있어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중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골라 들었다. 지난 짧은 인연이 생각나 반가웠나 보다.

 

“이 책 사시는 거예요? 이 책 진짜 재밌어요.”

 

“정말요? 제가 잘 골랐네요.”

 

정호승 시인과의 첫 번째 만남은 십여 년 전, 화랑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였다. 그림과 그림에 어울리는 시를 함께 짝을 이루어 전시하는 시화전 오프닝 날이었다. 정호승 시인을 비롯하여 책에서나 뵈었던 몇몇 시인이 참석했고, 정호승 시인은 참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가지신 분이라 생각했다. 그 날 이후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사 읽었다.

 

두 번째 만남은 오 년여 전, 지방 출장 길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KTX 안에서 내 앞 좌석에 정호승 시인이 앉았다. 처음에는 너무 낯익은 얼굴이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었다. 누군지 얼굴을 기억해내고 나서는 팬이라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주변이 너무 조용해 혼자 끙끙거리다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던 기억이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진열되어 있는 독립출판물과 잡지, 단행본들

귀여운 카드에 도장 찍으러 오세요

 

'얄라북스'에서 책을 사면 책방을 상징하는 그래픽 문양이 박힌 카드에 도장을 찍어 준다. 카드가 도장으로 채워지면 채워진 칸에 따라 책값을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귀여운 카드 모양이라 직접 간직하고 싶었지만, 카드는 서점에서 보관·관리한다.

 

주인장은 결재하는 동안 주변을 기웃거리는 나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발간물과 엽서, 책갈피도 알뜰히 챙겨주었다. 동네서점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동네서점이기에 얻을 수 있는 무료 배포물의 질은 상상 이상이다. 살뜰히 챙기고 난 후, 새로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았다.

 

“오늘 7시가 전시 오프닝이에요. 시간 되시면 찾아주세요.”

 

동네서점에서 여는 전시회 오프닝은 어떨까 궁금했다. 오늘은 계획된 여행이 있으니 다음 전시 오프닝을 기약해야 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영화 상영도 한다고 하니, 영화를 함께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영화와 관련된 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들르면 좋을 것 같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바쁘신 얄라북스 주인장님

풀무질 Pulmuzil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19 B1 / 02-745-8891 / 평일 09:00-22:00, 주말 12:00-21:00 (추석, 설 연휴 휴무)

책으로 바람을 일으키다

 

'얄라북스'에서 성균관대학교 입구 방향으로 1분만 걸으면 오랜 시간, 성균관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명륜동을 지켜 온 서점이 있다. '얄라북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서점, 사회문화과학 서점 '풀무질'이다.

 

참 토속적인 이름, '풀무질'. 풀무질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하여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 넣는 기구’를 일컫는 ‘풀무에 바람을 일으키는 일’이란 뜻이다. 격동의 시기 1985년 여름, 책으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풀무질'이 생겼다. 이것이 벌써 삼십일 년 전의 일이다. 그 뜨거웠던 시절부터 오늘까지 풀무질의 주인장 아니, 일꾼은 세 번 바뀌었다.

 

지금은 네 번째 일꾼이 이십 년 넘게 운영하는 역사와 문화가 있는 서점이다. 2007년 5월 27일 비가 오던 날, '풀무질'은 지금의 자리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성균관대와 서울대 학생 스무 명의 도움으로 이사를 마쳤다.

 

'풀무질'은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서점이라 주인장이 따로 없다. 주인장의 책임과 의무를 하는 일꾼만이 있다. 이십 년 넘게 일하고 있는 네 번째 일꾼은 1994년 4월 1일 만우절 날, 거짓말같이 '풀무질'의 일꾼이 되었다.

 

‘딱 십 년만 해보자.’

 

십 년만 서점을 운영해보기로 하고 이십 대에 시작했다. 하지만 일꾼은 삼십 대를 지나 어느새 사십 대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명륜 골의 오아시스가 무너질까 그만둘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한다는 일꾼. 80년대 중후반 수많은 서점이 생겨났고, 어느 대학교 앞에나 사회문화과학 서점 하나씩은 있었던 시절. 하지만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서점은 몇 개 없다. 그나마도 수익이 아니라 빚이 점차 늘어 운영 자체를 고민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개인이나 한 서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일지도 모른다.

 

'풀무질'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조합원 약 100명에 후원자 20~30명이 매달 5천 원, 만 원씩 후원해주는 기금으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 운영되고, 때로는 지자체나 구청의 공모사업에 참여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가끔 조합원이나 학교 다닐 때 '풀무질'과 인연이 있었던 졸업생들이 몇 십만 원씩 통 큰 후원을 해주기도 한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새로 입고 된 책을 정리 중인 일꾼

책에 의한, 책을 위한 '풀무질'

 

'풀무질'은 쉬는 날이 없다. 일 년에 설날과 추석 연휴만 쉴 뿐,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닫는다. '풀무질'로 들어가는 건물 입구에는 ‘춤추고 싶어요’의 김대규 작가가 그린 코끼리 그림이 여행자를 반겨준다.

 

성균관대 학생들과 김대규 작가, 일꾼이 함께 그린 벽화 그림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풀무질'이 있다. 왼쪽에는 풀무질 놀이터, 오른쪽에는 서점으로 나뉜다. 처음 서점을 먼저 열고, 놀이터는 비어있던 공간을 고쳐 열었다.

 

서점은 꽤 넓었다. 족히 40평은 되어 보였다. 사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서점이라 하여 아주 작은 규모를 예상했다. 오랜 시간만큼이나 오래 전 발간된 책과 절판된 책이 많았다. 나는 '풀무질'에서만 중고 책이 아닌 새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절판도서가 가장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가엔 인문 서적과 사회 서적,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각 출판사의 신서들까지 5만여 권의 책이 가득했다. 또한 '풀무질' 책모임에서 읽는 책을 모아 별도로 배치해 두었고, 수험서와 나름 잘 나가는 인문 서적도 보기 좋게 구분되어 있었다.

 

서점에는 서가 외에 재미있는 공간이 두 개나 숨어 있다. 하나는 ‘풀방’이라는 이름의 1평 정도 되는 작은 방이다. ‘풀무질 놀이터’에서 다른 모임이 진행될 경우 독서모임이나 자체 진행하는 모임이 열리는 곳이다. 천정이 낮고 작아 아늑하다. 또 하나의 공간은 조합원들의 작품을 판매하고 물물교환이 가능한 ‘한 평 장터’다. 초등학생이 몇 달간 갈고 닦은 공예 실력으로 만든 공예품도 있었고, 몇 번 입지 않은 와이셔츠와 티셔츠도 있었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서점 속에 숨어 있는 공간, 풀방

서점 안에 걸린 큼지막한 '풀무질' 수 놓인 천은 베지테리언 모임에서 퀼트로 만들어준 것이었고, 서가 중간중간 붙어있는 시와 원고는 시 쓰기 모임의 시와 글을 붙여 둔 것이었다. 어떤 글은 누군가 쓴 자작시를 다른 누군가가 연필로 세심하게 교정을 봐 준 것도 있었다.

 

이렇듯 '풀무질'은 책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득한 곳이었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큼지막한 퀼트 사인이 걸려 있는 풀무질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네서점

 

일꾼과 함께 ‘풀무질 놀이터’를 구경하러 갔다.

 

“저건 무슨 동물 같아요?”

 

“얼.. 얼룩말 아니에요?”

 

“와. 맞아요. 한 번에 맞히는 사람 별로 없는데.”

 

일꾼은 소년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좋아했다.

 

“다들 기린인 줄 알아요.”

 

노란색이어서일까.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서는 얼룩말도 노랗게 보일텐데. 하늘은 파란색, 사과는 빨간색이 아니어도 된다. 아니 실제로 하늘은 노란색이기도, 보라색이기도, 검은색이 되기도 하고, 사과도 처음엔 녹색, 다홍색, 빨간색으로 변하는데. 우린 너무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 받는지도 모르겠다.

 

풀무질 놀이터는 4.5평 정도 되는 공간으로 동네의 각종 모임이 열린다. 처음에는 어린이를 위한 책 읽기 공간, 놀이 공간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성인까지 확대하여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논어 읽기 모임, 독서모임, 시민활동가 모임, 독립영화 보기 모임 등이 실제로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미리 일꾼에게 연락하여 일정만 맞는다면 무료로 모임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일꾼은, 사는 동네에 작은 어린이도서관도 꾸리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그곳에 가 아이들과 지낸다. 좋은 책을 많이 읽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동네 어디, 일상 어디에나 있는 책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히려고 애쓰기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아이들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해요.”

 

책방 놀이터도 작은 어린이도서관도 일꾼의 이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학교 공부와 관계된 책이 아니고선 볼 시간도 없는, 볼 이유도 없는, 시대가 만든 꿈을 좇기 위해서만 책을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이들이, 책을 읽으며 꿈을 키우는 시대가 다시 오길 바란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아이도 어른도 놀 수 있는 놀이터, 풀무질 놀이터

동양서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271-1 / 02-762-0715 / 매일 08:00-21:30

63년을 버텨온 '동양서림'

 

'풀무질'보다 더 오래 대학로 역사와 함께한 서점이 있다. 1953년, 서점 문을 처음 열고, 63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양서림'이다.

 

대학로가 형성되기 전, 혜화동 로터리에 고 이병도 국사학자 딸이자 고 장욱진 화백 부인이 서점을 열었다. 이병도 국사학자가 직접 이름도 지어 준 '동양서림'이다. 현재 '동양서림'은 2대 주인장을 거쳐 3대 주인장이 운영하고 있다.

 

나는 '동양서림'을 가 본 적은 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이었다. 이 기회에 제대로 6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보리라. 둘레가 한 아름 넘는 플라타너스 길을 따라 혜화동 로터리로 향했다. 나무는 바람에 흩날리며 바닥에 무늬를 만들고 있었고, 두툼한 나무 기둥이 까칠한 살갗을 햇볕에 태우는 중이었다.

 

비바람에 바라고 시간에 버텨준 '동양서림' 간판이 보였다. 서점 앞에는 ‘동양이 권하는 7월’이라고 적힌 칠판이 손님을 맞이했다. ‘여름날의 에세이’와 ‘여행의 기술’, 주제에 맞게 책을 큐레이션 하여 진열해 둔 모양이다. 입구 왼편엔 잡지를 오른편엔 베스트셀러를 책 표지가 보이게 진열되어 있었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플라타너스 길 위, 동양서림

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

 

오랜 시간 '동양서림'과 함께 버텨준 플라타너스를 뒤로하고 서점에 들어섰다. 60여 년의 시간은 어디 숨었는지, 서점은 매우 정갈했다. 오래된 고서와 절판된 책이 여기저기 쌓인 모습을 상상했던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책 진열대와 서가를 서성였다. 분야별, 테마별로 나뉜 책은 10개 정도의 아일랜드형 책 테이블과 벽면을 가득 메운 키 높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서점 중앙에 박힌 기둥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애물단지가 되었을지 모를 기둥에 투명 책꽂이를 달아 진열된 책이 더욱 돋보였다.

 

'동양서림'은 시·소설·에세이·경영·건강·취미·참고서 등 기본적인 분류 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책을 진열하고 있었다. 동네서점의 장점은 주인장의 취향과 시선 혹은 서점의 특성과 전문분야에 따라 책이 큐레이션 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서점 입구에 ‘화제의 신간’과 지난달 서점에서 많이 팔린 책을 별도로 구성한 ‘베스트셀러’ 코너를 두어 손님들의 시선을 잡는다. 그 뒤로 '동양서림' 7월의 테마인 ‘여름날의 에세이’와 ‘여행의 기술’ 코너가 보였다. 도시를 들여다보고 숨은 이야기를 찾고 주제가 있는 여행을 위함이라니. 동네서점을 여행하고 있는 나와 딱 들어맞는 주제였다. ‘공부합시다’와 ‘과학과 친해져요’, ‘인생에 관한 에세이’, 그리고 ‘책방 속 미술관’ 등 책장마다, 책꽂이마다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 가득했다.

 

어떤 주제로 책을 큐레이션 하고 진열하느냐에 따라 책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인장은 포스트잇과 메모지에 손 글씨로 주제와 추천이유를 적어 함께 진열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그날 사용한 펜에 따라 글씨는 달랐지만, 좋은 책을 선보이고픈 진심은 모두 같았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테마별로 책이 진열되어 있는 동양서림 서가

숨은 의자, 숨은 배려

 

'동양서림'은 손님이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든 별도의 공간은 없다. 하지만 서점 구석구석 주인장의 배려가 묻어 있었다. 서가 사이에서 빈티지한 의자를 찾아볼 수 있었다. 모두 다른 디자인과 형태를 가진 의자는 손때가 묻어 서점과 잘 어울렸다. 책을 들고 이동하지 않고 바로 걸터앉아 책을 펼쳐볼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책을 둘러보는 건지, 의자를 찾는 건지 서점을 살폈다. 그렇게 숨어 있는 책과 의자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던 중 보이지 않던 계단이 보였다. 철제 원형 계단이었다. 계단 앞에는 동화책이 꽂혀 있었고, 계단마다 어린이 수학책과 시리즈물이 놓여 있었다. 1층 서점과 2층 창고를 잇는 계단이었다. 서점이 시간의 무게를 벗어나 지금을 살아가는 비밀은 아무래도 저 2층 창고에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진짜 보물 같은 책이 아직 저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동양서림 서가 사이에 놓인 숨은 의자

오랜 시간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오랜 시간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동양서림'. 1953년 서점 문을 열어 1970~80년대 서점 부흥기와 도시 산업화를 거치며 서점은 쇠락했지만 지나온 시간 속에는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나는 서점에 숨은 이야기와 마주하고 싶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에 문을 연 서점은, 가난한 화가 부인의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지금에야 여성이 직업을 갖고 상점을 열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유별날 일이 아니지만, 그때를 생각해보면 고된 하루하루였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그 시절 열일곱 어린 소년이 얼굴에 주름이 생길 때까지 동료로 함께 해주어 힘을 덜었을 것이다.

 

1대 주인장이었던 이순경 여사가 점원에게 서점을 물려 준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젊은 날을 바쳐 서점에 온 힘을 다했던 점원의 성실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서점을 계속 유지해 달라.”

 

이 약속만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서점 경영을 맡겼고, 지금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3대 주인장이 2004년부터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오랜시간만큼이나 '동양서림'엔 단골 시인들이 많았다. 술에 취하면 늘 들렸다는 고 김수영 시인과 지금은 방이동에 있지만, 혜화동에 있었던 보성고등학교 교사 윤강로 시인,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서점을 찾는 시인들이 있다.

 

몇 십 년 동안 단골인 서점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나도 십 년 후, 아니 사십 년 후까지 드나들 단골 서점을 만날 수 있을까. 올 봄부터 이어진 동네서점 여행에서 만난 서점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최초의 100년 서점이 될 수 있도록 잘 지켜내야죠.”

 

'동양서림'이 1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서점이 되었을 때, 지금보다 더 가치 있는 장소가 되어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오후 햇살이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동양서림

학림다방

서울 종로구 대학로 119 2F / 02-742-2877 / 매일 10:00~23:00

모든 게 낡았지만, 모든 게 살아있다

 

서점을 나와 플라타너스 길을 따라 혜화역 방향으로 걸었다. 주변을 구경하다 창밖으로 책이 가득 진열된 모습이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서점처럼 보였지만, 서울연극센터였다. 공연정보와 예매 안내를 해왔던 연극센터가 대학로를 찾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잠시 구경을 하고, 대학로에 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향했다. 대학로도 이미 대형 커피전문점이 잠식해버렸지만 '동양서림' 만큼이나 오래도록 사랑받은 역사적 장소가 있다. 서울대 학생들에게 ‘제25 강의실’이라고도 불렸던 곳. 김지하·전혜린·천상병·김승옥·이청준·황지우 등 걸출한 서울대 출신 문인들이 드나들었던 '학림다방'이다.

 

'학림다방'은 지하철 혜화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다. 단골만 찾아오지만 매일 단골이 생겨나는 신기한 곳이기도 하다. 작고 구불 한 계단을 오르니 아주 오래된 나무문이 있었다. 나무틀 사이 유리창으로 희끄무레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잡았는지 나무가 벗겨진 철제손잡이를 밀고 들어갔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아주 오래된 나무 테이블과 얼룩진 소파, 낡은 피아노와 오래된 사진기와 찻잔이 있었다. 지난 세월만큼 시간을 머금은 마룻바닥과 복층 난간이 마치 60년대 말 어디쯤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마치 저 오래된 나무문이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이라도 되듯이.

 

대학로 큰길이 훤히 보이는 창가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한참을 서성이다 다방의 정중앙에 자리를 틀었다. 내가 앉은 자리 오른편엔 아주 오래된 나무 찬장에 커피 기계와 그릇이 진열되어 운치도 있었다.

 

'학림다방'의 인기 메뉴, 비엔나커피를 시켜 천천히 홀짝였다. 베토벤인지 슈베르트인지 어디선가 들어봤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공교롭게도 내 가방엔 조금 전 '동양서림'에서 산 「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이 들어 있었다.

 

그냥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오래된 냄새와 함께 그렇게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학림다방의 아주 오래된 나무문과 낡은 마루바닥

새로운 시간, 새로운 추억

 

1970년대 학림사건의 발원지 '학림다방', 예술인들의 아지트 '학림다방', 문화 가치를 드높이는 서울 미래유산 '학림다방'. 수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꾸준히 '학림다방'이 사랑받는 진짜 이유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은 안 잊었노라” – 홍세화

학림엔 유난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 손님이 많다. 창가에 앉은 세월에 허리가 굽은 어르신은 당신의 손자보다 어린 젊은이에게 글쓰기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 테이블엔 어르신 세분이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서로 당신의 이야기가 옳다 소리를 높이시다가 오래 전 젊음을 추억하며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한 테이블에서는 늙은 어머니와 함께 온 늙은 딸이 메뉴판을 열심히 보고 있었고, 구석엔 휴가를 나온듯한 젊은 군인과 힘든 군 생활에 위로가 돼 줄 친구들이 새로운 학림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여행 책자를 보고 왔는지 중국인 소녀 두 명은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낡은 소파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어르신과 젊은이

거리는 모두 변했지만, 추억 찾는 손님이 있는 한 학림은 그대로 있지요. – 학림다방

낡은 의자와 낡은 테이블과 낡은 찬장과 낡은 마룻바닥과 낡은 계단과 낡은 엘피판, 모든 것이 낡은 이곳, 나는 이곳이 낡아서 더욱 새롭다.

 

오늘도 학림은 새로운 시간,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청춘의 문화와 예술, 대학로의 동네서

오랜 추억이 묻은 학림다방의 오후

 

에디터 구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