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사춘기

[비즈]by 인문잡지 글월

나는 2005년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첫 직장에 입사했다. 그러니 ‘사회생활’을 시작 한지도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사회생활은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 사이에 섞여서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일하기도 어렵지만, 돈 벌기는 더더욱 어렵다. 게다가 사회생활은 경험이 쌓여도 결코 쉬워지질 않는다.

 

일은 반복하면 쉬워지는데 ‘사회생활’은 직무나 직급, 환경이 변할 때마다 난이도 레벨도 함께 올라간다. 직무나 직급이 바뀌면 다른 사람과 관계가 바뀐다. 바뀐 관계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된다. 그러고 보면 ‘사회생활’이란 말에는 늘 두 가지 관점이 뒤섞여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이고, 또 하나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서 돈을 벌 것인가?”이다.

 

그런데 내 지난 10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 관점 모두가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하는 것 같다. ‘사회생활’에 관해 나만의 정의를 내리자면 ‘나도 모르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한다. 어느정도 자신의 행동 패턴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법이다. 나는 학생 때만 해도 내가 인내심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한 직장을 평생 다니지는 못해도 진득하게 10년은 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첫 회사를 3년 다닌 후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더니 그동안 몸담은 회사만 6개다.

 

첫 회사에서는 시키는 일만 하면서 가끔 상사와 트러블이 있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출근할 때는 내가 아니라 다른 인간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편했다. 그러다 경력이 쌓이고 승진하면서,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나는 직접 기획하여 콘트롤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보니 능률도 오르지 않았다. 직장인이라면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스포츠 선수에게 슬럼프가 오듯, 일을 잘하다가도 갑자기 울컥울컥하고, 한참을 두드렸는데 보고서 한 장도 진도가 안 나가고, 업무가 바뀌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때 말이다. 보통은 이런 경우 버티기 마련이다. 난 내가 아주 잘 버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재미없는 일을 참아가며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회사를 한 번, 두 번 옮기다 보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일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경우는 개인적인 관심사보다는 주도적으로 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기업 문화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회사에 업무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갖추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관리자가 없다면 소통이란 무의미하다. 그저 말이 오가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고란 몇 차례 눈치를 주고받다 결국 상사의 입맛에 맞춰 추진하는 연극에 가깝다. 상사는 또 그 위의 상사의 입맛에, 위의 상사는 또 그 위의 상사의 눈치를 살핀다. 보고의 계단을 차례차례 밟아가며 소모되는 에너지와 낭비되는 리소스가 너무 아까웠다.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왜 이렇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을까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직원 수만 2천 명이 넘는 대기업에서 상장 직전의 중견기업, 1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에도 다니면서 제법 다양한 경험을 했다. 작은 회사에 다닐 때는 직급도 팀장, 편집장을 맡으며 작지만 리더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아쉽게도 리더로서의 나는 썩 유쾌한 발견은 아니었다. 나는 착한 사람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 따뜻하고 포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채근하거나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모자란 만큼 내가 직접 보충할 때가 많았다. 일일이 피드백하는 것도 꽤 피곤했다. 그런데 피드백을 미루면 그 순간은 편한 것 같지만 당사자도 성장하지 못하고 나도 더 피곤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또한, 나는 직장에서 정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 본래도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닌데, 회사에서 사람들과 개인적인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갈수록 할 일만 하고 그 이상은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친근함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사회생활’을 넘어 끈끈한 친구나 가족 같은 관계는 바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협업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아 협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솔직히 귀찮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회사 경험이 늘어날수록, 협업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관여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나는 협의하기보다 내가 전부 결정해 버리고 싶다는 통제 과다 욕구에 빠졌다. 협력, 팀워크 같은 아름다운 단어가 나와 별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제법 충격이었다.

 

나는 남에게 잘 맞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니 그저 갈등을 피하고 참으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일에는 갈수록 맞춰주기 힘들어졌다. 흔히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란 상대방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일을 원만하게 이끌어 가는 처세술을 말하지 않나. 그렇다면 나는 사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도리어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직장인이 되어서야 나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직장인이 되어서야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학창시절 겪었어야 할 사춘기가 뒤늦게 찾아온 것이다. 학창시절 나는 너무나 평범하고 고분고분한 학생이었고, 왜 해야 하는지 고민 없이 공부했다. 대학 전공도 그저 어렴풋한 느낌으로 선택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길과 다양한 직업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사실 그때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도덕 교과서였던가 사춘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고 하던데 나는 정작 10대 사춘기 시절에는 세상의 질서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내가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라는 사람과 세상 사이에는 넘기 힘든 벽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 매번 내가 원하는 걸 이 세계(회사)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겠다는 체념이 뒤따랐다. 이후에는 회사에 대한 소심한 반항과 회사를 떠나는 방황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10년간 6개의 회사를 다녔다. 어렸을 때 마땅히 겪었어야 할 자아 탐색과 사춘기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대가였던 셈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다. 나는 내 행복을 위해서 더이상 사회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나의 기준에 따라 내 일과 삶을 조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연봉과 복지보다는 내 전문성과 전문 영역을 키우길 원했고, 일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랐다. 멋지게 디자인된 대기업 사원증보다는 작더라도 나만의 비전을 추구하며 살고 싶었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하려면 회사로부터 독립이 필요했기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조금씩 시도했다.

 

이렇듯 나에게 사회생활은 나도 모르던 나라는 사람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찾는 과정이었고, 어른이 되어서야 찾아온 사춘기였다. 일과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히면서 비로소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꾸준히 탐색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의 지난 10년간의 사회생활 보고서이자 내가 생각하는 일과 꿈에 대한 고백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내가 어떤 커리어를 거쳐왔는지 한 번 이야기해 보겠다.

이 글이 공감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출근에서 탈출하다>를 읽어보세요.

글 박성표

2017.08.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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