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식인은 ‘해커’다

[테크]by 인문잡지 글월
모든 지식인은 ‘해커’다

구글에 폴 부케이트(Paul Buchheit)라는 유명한 개발자가 있었다. 그는 구글에 없어서는 안될 서비스인 애드센스와 지메일 설계에 참여한 뛰어난 개발자였다. 또한 구글의 비공식 슬로건(이었던) ‘Don’t be evil’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는 구글에서 퇴사한 후 프렌드피드라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게 페이스북에 인수된다. 자연스럽게 페이스북에 합류하게 된 그는, 이번에는 페이스북의 기업 문화에 임팩트를 주게 된다.


바로 블로그에 남긴 이 한편의 글을 통해서다. Applied Philosophy, a.k.a. “Hacking”. 그는 이 글에서 ‘해킹’과 ‘해커’를 완전히 재정의한다. 그가 내린 해킹에 대한 정의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

이 세상의 모든 시스템에는 2가지 규칙이 존재한다. 하나는 사람들이 보통 그러하다고 인식하는 규칙이고, 또 하나는 그 시스템이 실제로 돌아가게 만다는 규칙이다. 그리고 복잡한 시스템일 수록 그 둘 사이는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해킹”이라고 하면 컴퓨터를 이용해 남의 네트워크에 침투해 시스템을 교란하는 등의 행위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나쁜 행위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해킹”이란 사실은 시스템이 실제로 돌아가는 규칙에 곧바로 접근하는 행위다.


흔히 사람들은 성실하게 일하면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해커들의 관점은 다르다. 해커는 분명 시스템에는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이를 찾아낸다. 따라서 해킹이란 꼭 컴퓨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현실세계는 모든 것이 시스템이 아니던가. 

요컨데, 부케이트에게 ‘해킹’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스템의 이면에서 실제로 그 시스템이 동작하는 방식을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서 남들보다 빠르게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자면 해킹이라는 것은 어떤 가치 평가를 담고 있지 않다. 시스템의 실제 규칙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행위에는 가치 판단이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을 어떤 의도로 하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확인하고서야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해커와 지식인은 시스템의 본질에 바로 접근하는 사람

이러한 부케이트의 ‘해커’에 대한 재정의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이 세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룰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데 동의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인은 바로 ‘해커’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식인은 이 세상이 작동하는 숨겨진 원리를 지적 능력을 이용해서 파악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이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튼, 아인슈타인 등은 물리학적 지식과 관찰,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해 우주가 작동하는 원리를 해킹한 과학자들이다. 마르크스는 중세와는 완전히 달라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본 원리를 ‘해킹’한 사회철학자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해킹했고, 다윈은 생물의 진화를 해킹했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유교 사상체계의 모순을 해킹했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 뿐만 아니라 문학가, 음악가, 화가 등의 예술가들 또한 각자의 영역에서 아름다움의 원리를 해킹해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한 해커들이라 볼 수 있다. 예수, 공자, 석가모니 등과 같은 종교 지도자 역시 사랑, 예, 해탈 등의 관점으로 삶을 완전히 새롭게 해킹한 위대한 해커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커’가 여전히 부정적인 늬앙스를 띈다면, ‘지식인’은 반대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본질적으로 같다. 따라서 지식인 역시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어떤 의도로 세상을 공부하고, 또한 이를 어떻게 이용해서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보고 지식인을 판단해야 한다.

페이스북의 기업문화가 된 Hacker Way

부케이트는 오로지 수학적, 과학적 사고를 최고로 여기는 엔지니어 집단 구글에서도 우수한 개발자였지만, 놀라운 통찰력으로 해킹을 재정의했다. 사실 컴퓨터 소프트웨어만큼 명확하게 두 개의 룰로 나뉘어진 세상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다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쓰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은 그 이면에 숨겨진 코드에 의해 움직인다. 개발자는 이 코드를 쓰는 사람들이기에, 언제나 시스템 이면의 본질에 바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케이트가 이렇게 해커를 완전히 재정의하면서, 페이스북 내부에서도 해킹을 새롭게 바라보는 여론이 형성됐다. 기존에는 스스로를 해커라고 생각하면서도 부정적인 뉘앙스때문에 이를 꺼리던 사람들도 해킹과 해커가 페이스북의 방식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아예 자신들의 기업문화를 ‘Hacker Way’라고 부른다.


시스템의 본질을 추구하는 해커는, 인간과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인문학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궁극을 추구하는 것은 모두 통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나는 이렇게 자신의 일에서 본질을 추구하는 행위가 비즈니스와 인문학이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기업에서 표출되는 방식이 기업문화라고 생각한다.

 

글 박성표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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