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코 벽화

[컬처]by 인문잡지 글월
라스코 벽화

프랑스 남부 라스코(lascaux) 마을에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벽화가 있다. 지금부터 대략 17,000년 전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그림으로 추정된다. 세계사였는지, 미술이었는지 아무튼 어느 교과서에서 작은 사진으로 저 벽화에 그려진 (아마도) 소 그림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사실 이 사진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는 여지껏 교과서에서 보았던 조그만 사진 한 장의 기억을 가지고, 기껏해야 구석기 벽화가 겨우 손바닥만 한 소나 사슴, 늑대 같은 그림을 그려 놓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셔널 지오그래피가 찍은 라스코 벽화 사진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소 한 마리는 사람보다도 더 컸다. 동굴 한 켠에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낙서를 한 것이 아니다. 사람 손도 잘 닿지 않는 높이에 동굴 벽을 따라 이어진 거대한 그림의 행렬(stream)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동물 그림을 연결해 보면 어떤 스토리도 나올 것 같다.


그제야 17,000년이라는 시간이 거대하게 밀려 들어왔다. 1,700년이 아닌 17,000년이다. 대체 구석기인들이 무엇으로 벽화를 그렸을지도 나는 전혀 모른다. 제대로 된 집이나 짓고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떻게 소통하여 저토록 거대한 벽화를 그렸을까 가늠 조차 되지 않는다.


궁금해진 나는 라스코 벽화에 새겨진 황소를 따라 그려봤다. 그러나 17,000년 전 아마도 최고의 예술가를 따라 그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자연스러운 뿔의 곡선, 거대한 소의 몸통, 튼튼한 다리, 눈과 반점 등이 대단히 단순해 보이면서도 동물의 특징을 아주 생생하게 잡아 내고 있었다. 선 하나만 따라 그려봐도 결코 예사로운 솜씨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이건 벽화가 아닌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종이에 미리 스케치를 해보고 그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혹시 구석기시대 프로 예술가들의 솜씨가 아닐까?


나는 이전까지 예술이라는 건 인간의 ‘생존’에서 가장 거리가 먼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연기하는 것 따위는 아무리 멋지고 고결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더 생존이 급박한 문제였을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힘을 모아 장대한 벽화를 남긴 것을 보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예술도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본원적인 생존의 기술일지 모른다고. 무엇인가 자신을 뜻을 전하고 남겨서 타인과 소통하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시대를 훌쩍 넘어 SF 소설 마션을 보면,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는 수학과 과학 능력을 총동원해 화성에서 살아 남는다. 그런데 와트니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지겨워 죽겠다면서도 70년대 디스코를 듣고, 70년대 드라마를 보고, 아가사 크리스티를 읽는다. 그것이 단지 와트니의 유머 코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일까? 만약 와트니에게 아무런 음악도, TV드라마도, 책도 없이 화성에 홀로 남겨졌다면 그는 과연 그토록 끈질지게 생존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는 그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먹고 사는데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은 아마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엔 아무도 바위처럼 단단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자기 먹을 밥을 만들어내는 0.1%의 예술가를 예시로 들 수도 없다. 그들은 너무나 특출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먹고 사는 것과, 예술, 인문학을 연결 짓는 비슷한 류의 질문을 들을 때면 이제 라스코 벽화가 떠오른다. 1만 7천년 전 구석기 시대에 태어나, 화석으로나 남아있지 머나먼 선조들이 하루하루 생존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저런 거대한 벽화를 남긴 것은 분명 그에 걸맞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자신들의 꿈이건, 생존에 대한 염원이건, 풍요에 대한 기원이건, 저 벽화를 그리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구석기 시대에 조차 밥만으로는 살 수 없는게 ‘인간’이라는 존재 아니겠냐고.

 

글 박성표


라스코 벽화 웹사이트

이미지 출처 :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5.12.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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