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컬처]by 인문잡지 글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저자 라우라 에스키벨

1. 단 한 번의 실수가 빚어낸 비극, 그리고 극복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운명을 바꿔버릴 정도로 결정적인 순간이 하나 둘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러한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기 보다는 잘못된 선택인 경우가 더 많다. 류시화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지금 알고 있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한탄은 그 잘못된 선택이 운명을 비틀어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잘못된 선택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평탄하게 진행되는 인생에서 그 잘못된 선택이 바로 색다른 ‘체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을 보내도 사람마다 겪는 체험이 다른 것은 이러한 것들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체험이 기억으로 바뀌게 되고, 그 기억을 토대로 오히려 인생을 버티는 원동력, 혹은 인생을 바꾸는 계기로 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주인공 티타와 페드로가 대표적이다. 사실 그들의 선택이 무슨 악의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티타는 페드로와 결혼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페드로의 고백에 응했다. 페드로는 티타 옆에서 그녀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의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한다는 ‘선택’을 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티타와 페드로, 그리고 로사우라와 헤르투루디스, 존 브라운까지 주위 많은 이들의 운명까지 이 사랑 이야기에 휩쓸리게 된다. 더욱이 이 선택이 페드로 본인이나 티타에게 좋았던가 하면 그 반대라 할 수 있었다. 분명 서로의 곁에서 눈길이나 감정을 교환할 수 있었지만, 관습을 이기지 못하고 강제 이별을 당하거나 혹은 오해로 인해 결별의 위기도 겪게 된다.

 

그러나 비록 한 번의 선택이 잘못 되었더라도, 이를 견뎌내거나 극복할 수 있는 힘 또한 결국 그 선택에서 시작된다. 비록 예상치 못했던 끔찍한 경험들이 이어지곤 했지만, 그런 상황을 견뎌낸 것은 다름아닌 기억, 그리고 상상의 힘이었다. 처음 페드로와 티타가 만났을 때,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을 때, 그리고 집안 곳곳에서의 밀회 등의 기억, 더불어 (사실은 로사우라의) 아들이 자신과 페드로의 아들인 마냥 행동할 수 있었던 그 상상력이 티타의 일생을 지탱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그 선택으로 인해 자신에게 억압과 핍박을 주었던 마마 엘레나와 로사우라의 존재 또한 그녀에게 힘을 줬으리라 생각한다. 마마 엘레나에겐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끊임없는 마음 속 반항으로 증오를 이끌어냈고, 그것이 결국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해준다. 로사우라의 경우에는 더 성장해서 그녀와 직접 말다툼을 할 정도로 성장한다. 처음에는 관습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소녀가 이제 관습에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을 쌓았고, 그 결과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랑의 결합이 성사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2. 세상을 바꾸는 또 다른 방식, 마법사

판타지 소설에서 대부분의 주인공은 거의 용사이다. 이들은 칼을 들고 적에게 직접 맞서며, 마왕을 꺾고 세상에 정점에 오른다. 특히 거의 왕이 되는 이들은 용사가 대부분이며, 이들의 경우 저돌적일 정도로 세상에 도전해서 원하는 것을 쟁취해나가는 ‘엄친아’들에 가깝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왕이 될 수도 없고, 뭔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수군거림을 받는 마법사들이 존재한다. 편견일수도 있겠지만 용사가 왠지 모르게 사람들을 직접 설득하고 행동하는 편이라면, 마법사는 그 용사를 도와주거나 적어도 혼자서 무언가를 바꾸려고 직접 나서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칼과 방패, 창 등을 쓰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를 이용하여 파티를 돕는다.

 

티타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설득하거나 바꿔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얽매고 있는 족쇄가 너무 컸고, 이에 반발하면 돌아오는 것은 세상의 모진 매질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결코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요리라 는 ‘마나’를 통해 그녀의 감정을 표출한다.

 

사실 그녀에게 요리, 그리고 주방은 그녀의 아이덴티티이자 일종의 주박(呪博)이기도 했다. 태어난 곳부터 주방이었고, 그녀는 평생 집 밖에서 자신의 미모와 언변을 뽐내는 대신 주방에서 요리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녀는 마나의 신에게 사랑을 받은 축이었다. 그렇기에 티타는 마법사의 운명을 타고난 다른 이들에 비해 쉽게 대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그녀의 마법은 시전자의 마음과 감정을 요리를 먹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다만 그 마법은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한다. 즉 그녀의 마음과 감정이 격렬해질 때 비로소 그 효과를 발휘하게 된 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감정들은 사람들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감정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그저 행동할 뿐이다.

 

이렇게 티타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요리를 통 해 자신이 원하던 상황을 조성하고, 원하지 않은 상황은 파괴한다. 티타가 만든 음식이 사람들을 조정했다면, 티타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읽는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우리는 모르는 음식 재료 들이 하나하나 등장하여 조리되는 모습 속에서 독자들은 그녀가 어떤 감정에서 요리를 만드는지, 그리고 그 요리를 만들 때의 노고와 기쁨들을 낱낱이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남긴 요리책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마법서’로 작용한다. 티타의 이야기가 약 70~80년 전 정도의 이야기라 하면, 사실 그녀의 일대기는 단순히 ‘과거 이모할머니가 여기서 사랑을 하다가 돌아가셨단다’ 정도의 ‘먼 옛날의 추억’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요리를 통해 남겨둔 여러 이적들과 함께 남아있는 이 요리책은 티타와 ‘나’의 공통점의 ‘현실’ 과 ‘개연성’을 보여준다.

3. 희망의 요리책과 담요의 절망

이 소설에서 요리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재는 바로 ‘담요’이다. 요리가 주로 그녀의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담요는 그보다는 더 내밀한, 페드로와의 관계 속에서 쌓이는 그녀의 절망감을 상징한다. 특히 그녀가 쓰는 요리책이 “요리를 통해 다시 전처럼 둘만의 교감이 되살아니길 바라”는 그녀의 희망이 담겨 있다면, 담요는 절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 증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무엇보다도 티타의 감정을 가장 먼저 점령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커지게 된다. 티타의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요리책을 매일 밤 담요를 뜬 후에 적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담요는 그녀의 약혼이 파혼으로 파국을 맞는 순간 처음으로 완성된다. 처음에는 ‘버리느니 실이라도 쓰려고’ 완성했던 담요였지만, 그녀는 절망감을 버리기는커녕 더 크게 안고 살아가게 된다. 헤르투루디스가 가출할 때는 3번을 접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던 담요는 로베르토가 떠난 뒤 5배가 더 길어졌고, 마침내 농장을 떠날 때에는 1km에 이르게 된다. 한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담요는 마지막에 이르러 페드로의 죽음을 맞아 3헥타르의 농장을 덮을 정도로 자라나게 된다.

 

이러한 담요의 감정을 우리나라로 치면 한(恨)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담요는 결국 절망을 넘어 영혼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때 함께 불타게 된다. 더불어 그 화재는 마치 불꽃놀이와 같이 지속되었고, 남은 재는 비옥한 토양이 되어 채소 및 과일들을 키우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는 한의 승화라기보다는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에 더 가깝지 않나 본다. 최후에 이르러서야 영혼과 육체가 화해하고 이를 통해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절망 또한 후세에 남겨질 ‘양분’으로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글 A씨

편집 박성표

 

*이미지 출처 :  actitudfem.com

2016.02.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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