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

[컬처]by 인문잡지 글월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

올 여름 개봉한 영화 중 '아이 인 더 스카이' 처럼 한국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얼핏 보면 무인기(drone)를 소재로 한 전쟁스릴러물쯤으로 보일 법한 이 영화는, 적어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철저하게 어울리지 않는 영화다. 화려한 액션도 없고, 역동적인 카메라워크도 없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함도 없다. 정적이다 못해 지루하고 답답한 영화다. 적어도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은 그렇게 느낄 것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상황극이다. 테러리스트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지만, 여건상 생포 대신 사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돌변한다. 테러리스트들이 들어간 집에 미사일을 쏴서 정밀 타격을 시도하려 하나, 때마침 등장한 소녀 하나가 집 옆에서 빵을 팔기 시작한다. 소녀를 무시하고 미사일 공격을 가하면 이 무고한 소녀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소녀의 목숨을 위해 공격을 늦추거나 포기하면 이 테러리스트들은 어디선가 자살폭탄테러를 가해서 수십 명의 목숨을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위협받을 가능성이 큰 수십 명을 구하기 위해 지금 당장 경각에 달린 한 명의 목숨을 희생할 것인지, 아니면 수십 명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감내하면서라도 눈 앞의 한 명을 살릴 것인지, 이 간단하고도 대답하기 힘든 딜레마 앞에서 영국과 미국의 핵심 간부들이 고뇌에 빠진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객석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어이없음’에 대한 반응이었다. 산술계산으로 친다면 1:80,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수치다. 그런데 이 압도적인 수치 앞에서 양국의 작전 담당자들은 정확한 판단을 위해 법무적 지식을 묻고, 정무적 견해를 청취하며, 군사적 견해와의 의견 차이를 끊임없이 조율하려 든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문화교류에 나선 국무장관이 호출되고, 싱가폴의 무기박람회에 참석한 외무장관이 화장실에서조차 불려나오며, 심지어는 영국의 수상까지도 의견 제시를 강요당한다. 그 과정에서 작전 진행은 계속 미루어지고 말이다.


한국 관객들에게 이런 모습은 일종의 희극, 혹은 ‘무능력’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저들은 왜 저렇게 판단에 오랜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두고 있는가? 이미 수치적으로도 명백하게 가늠되는 ‘정의’를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면서 작전 전체를 실패로 몰고 갈 리스크를 키워나가는가?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멋진’ 리더라면 “책임은 전부 내가 진다, 쏴라!”라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며 스크린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구도 그런 ‘액션’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하고, 반박하며, 고뇌에 빠질 뿐이다.


때로는 관객들의 웃음까지 자아내는 이 비효율성의 극치란 의외로 간단한 사실을 시사한다. 누구도 ‘정의’는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세상에는 특정한 행동을 손쉽게 결정할 만큼의 명백한 정의가 존재하는 경우보다는, 끊임없는 질문과 고뇌를 거치더라도 명확한 해답을 얻어내기 힘든 딜레마적 정의가 훨씬 많다. 양국의 수뇌가 정무적, 법무적, 군사적 판단의 엇갈림 속에서 끊임없이 각 분야의 전문가와 책임자들을 호출하면서 의견 조율을 반복하는 과정은, 이 ‘의심스러운 정의’가 손쉽게 ‘불문율로서의 정의’로 둔갑하여 막강한 무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동장치인 셈이다.


말하자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작년 여름, 그리고 최근 며칠 사이, 나는 두 번에 걸쳐 메갈 관련 이슈를 접했다. 작년에 나는 메갈의 행위를 비판했고, 올해의 나는 메갈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 성우·웹툰작가 등을 압박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작년과 올해의 내가 메갈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메갈에 대해 비판적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미러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작년에 메갈의 행위를 비판했을 때, 내가 접했던 반응은 한국의 남성들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를 성토하는 메갈 옹호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올해 메갈 지지 성우·웹툰작가들에게 압박을 가한 이들을 비판했을 때 접한 반응은 그 ‘메갈’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사악하고 반사회적인 존재인가에 대한 성토였다. 내가 비판했던 지점은 자신이 정의라는 믿음이 그 모든 방법론적 오류를 정당화시켜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그에 대해 돌아오는 반응은 “상대방은 이만-큼 거대하고 사악한 존재이므로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억압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아이 인더 스카이'를 본다면 아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테러리스트를 처단해야 한다는 정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쉽게 합의할 만큼의 확고한 가치체계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 정의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왜 방법론에 대한 반문과 고민이 필요한가? 그런 비능률이 과연 테러리스트로부터 이 세상을 보호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네/아니오로 구분할 수 없다. 대답은 오히려 전혀 새로운 지점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테러리스트를 잡겠다는 명분 하에 우리가 테러리스트가 되는 일만큼은 막기 위해서다” 라고.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

글 박성호

* 이미지 출처: imdb.com

2016.07.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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