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는 공산주의자?

[컬처]by 인문잡지 글월
스머프는 공산주의자?

‘파파스머프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실험실은 폭발하고 파파 스머프는 정신을 잃게 된다. 약을 구하러 착한 마법사를 찾은 스머프들. 마법사는 파파스머프를 치료하려면 보리수(Linden) 떡잎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며 자신의 조수 올리버와 함께 재료를 구해 오라 한다. 스머프들은 재료를 구하러 다니면서 인간 세상의 시장 원리를 배우게 된다.

 

약을 들고 마을로 되돌아 온 스머프들. 하지만 파파 스머프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의식이 불분명하다. 스머프들은 인간들의 경제 시스템을 연습해서 파파 스머프가 깨어날 때 깜짝 놀래켜 주기로 한다. 그들은 ‘쓸모없는 노란 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동전을 만들고 각각 100개씩 나눠 가졌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농부 스머프나 만능이 스머프, 베이커 스머프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스머프들은 점점 부자가 되어 갔지만 시인 스머프나 하모니 스머프들은 점점 가난해졌다. 그들은 돈을 얻기 위해 할 수 없이 아끼는 물건을 팔아야 했다. 이제 스머프 마을에서 예전의 협동적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다리를 고치는 데도, 아기 스머프를 돌보는 데도 돈을 요구하고 지불해야 했다. 어느새 스머프 마을에서 행복해 하는 스머프는 아무도 없었다.’

– Le Schtroumpf Financier (The Finnance Smurf) 줄거리 (월간 그래픽노블 issue 9 인용)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형식인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을 소개하는 월간지 ‘그래픽 노블’ 9호에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만화가 등장한다. 바로 스머프(Smurf)다. 랄랄라랄랄라랄라랄라라 – 노래를 부르면서 항상 즐겁게 일하러 가는(잠깐? 즐겁게 일한다고?) 스머프들과 지혜로운 파파 스머프, 스머프를 잡아다가 황금을 만드려는 고약한 마법사 가가멜과 아즈라엘까지. 어렸을 적 TV 애니메이션으로 보며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예쁜 척하고, 허영 부리고, 늘 잘난체하고, 늘 투덜대고, 늘 졸리고, 늘 장난을 치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래픽 노블이 소개하는 스머프를 보면 잘 몰랐던 사실들이 많다. 우선 스머프는 페요(Peyo)라는 벨기에 만화가가 그렸다. 애니메이션 이전에 만화책으로 먼저 나왔고, 첫 시작은 무려 1958년이다. 1958년 ‘Johan et Pirlouit’라는 만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가 사람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자, 1959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하여 연재하기 시작한다. 오리지널 코믹스는 총 30여 편 정도이고, 파파 스머프의 나이는 적어도 542살이며, 아름다운 여성미를 뽐내는 스머페트는 사실 가가멜이 스머프 빌리지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만들어낸 스머프였다.

스머프는 공산주의자?

월간 그래픽노블 issue. 09

쓸모없는 노란 돌

그런데 처음에 인용한 스머프들의 경제 실험은 어딘가 묘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파파 스머프가 아프자 인간 세상에서 시장 경제를 배워온 스머프들이 스머프 빌리지에도 화폐를 도입한다. 화폐 이름이 ‘쓸모없는 노란 돌’이다. 금화를 상징하는게 분명하다. 그리고 스스로 결말을 알고 있듯 ‘쓸모없다’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는 잘 돌아가는 것 같은 시장 경제가 스머프 빌리지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전에는 모두가 함께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스머프들이 ‘화폐’라는 물물교환 수단을 도입하자 모두가 불행해졌다.

 

이 이야기는 누가봐도 시장 경제를 비판하거나 최소한 화폐라는 물물교환 수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드러난다. 하물며 스머프 빌리지는 공동생산과 협동으로 행복하게 사는 작은 마을을 묘사하고 있어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스머프는 이미 공산주의 이상향을 그리는 만화라며 수차례 비난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이유로 방송이 불가능할 뻔 했다. 지도자인 파파 스머프가 마크르스를 닮았고, 빨간 모자와 빨간 옷(붉은 색은 공산주의 혁명의 색이다.)을 입었다는 사실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물론 만화가 페요는 이 사실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행복한 스머프 세상을 그렸을 뿐이며 오직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캐릭터에 즐거운 상상력을 발휘했을 뿐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는 반론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작가인 페요가 자신의 정치적 이상향을 이런 어린이들 타겟의 작고 귀여운 캐릭터 마을에 투영하고, 그 뜻을 아이들이 보고 배워 사회주의 이샹향을 세우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진지하게 정치적 메시지를 배후에 깔고자 했다면 좀 더 성인 취향의 만화를 그렸거나, 아니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상징성을 이야기 속에 다양하게 녹여내며 부각 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스머프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작은 친구들의 행복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스머프에 결코 정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스머프에 사회주의가 담겨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공동생산과 협동과 분배, 그리고 인용한 에피소드에서 화폐 도입으로 붕괴되는 스머프 마을의 경제 이야기는 적어도 작가 자신이 바라보는 경제적 지향점은 확실히 대변하고 있다. 게다가 스머프를 노리는 고약한 가가멜의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스머프를 납치해 연금술의 재료로 써서 황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노동과 협업으로 실질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황금이나 화폐와 같은 ‘교환수단’을 추구하는 것을 분명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스머프가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했고 애니메이션과 피규어 등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사회주의가 익숙한 벨기에

여기서 작가인 페요가 ‘벨기에’인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겨우 인구 1천만 남짓한 벨기에는 19세기 초반 독립한 이후로 사회주의와 노동조합, 협동조합 들이 서로 맞물려 발전하면서 이 작은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이들은 마을마다 ‘민중의 집’을 짓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빵집 등을 운영했다. 실제로 노동자 탄압이 이루어질 때 면 이 민중의 집에서 운영하는 빵집이 노동자들에게 빵을 대주며 노동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즉 벨기에는 이미 19세기부터 사회주의가 국가 경제와 민중의 삶에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벨기에에서 태어난 페요는 어렸을 때 부터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의 운영 방식 등을 체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자신에게 익숙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경제적, 사회적 모델을 스머프 빌리지에 반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스머프 빌리지나 경제 실험 에피소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묘사하지는 않았더라도, 분명 작가의 경제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것이 소비에트식 독재 공산주의가 아니라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모델에 기반한 벨기에식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파파 스머프는 리더지만 결코 지배자는 아니다. 파파 스머프의 권력은 폭력이나 선동, 선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스머프들의 자연스러운 존경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함께 노동하지만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고, 똑같이 배급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는 스머프 빌리지는 분명 공산주의 모델과는 다르다. 이런 점을 무시하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까지 정치적 이데올로기 도그마를 씌우게 되는 것이다.

 

글 박성표

2017.02.1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